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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가르타 Apr 17. 2016

나의 이별을 관망하기 까지

나의 이별을 가장 정확하게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은 ‘나’

오늘처럼 아무런 약속도 외출 계획도 없는 일요일, 늦잠을 자고 일어나 아침 겸 점심을 먹고 믹스커피에 얼음을 동동 띄어 책상 앞에 앉아 노트북을 열거나, 책을 읽거나 하는 소소한 행복.


그 사람은 나에게 그런 종류의 행복이었다. 누리고 있을 때엔 너무도 평범하고 특별할 것이 없어서 무감각했다가 잃고 난 뒤에 아쉬워하는.


그 사람과 재회 가능한 시점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도, 내가 소중한 그 사람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줬는지를 깨닫게 된 것도 너무 많은 시간이 지나서였다.

하지만 내가 깨닫게 되었을 때에야 그 사람과의 재회는 의미 있는 것이 된다. 달라지지 않은 나와 그 사람과의 재결합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러나 그 사람과 재회가 가능했던 시점은 내가 깨닫고 달라지기에는 너무 이른 시간이었다. 모든 것은 처음부터 어긋나 있었다.


모든 진실은 멀찍이 떨어져 관망하게 되었을 때 알게 된다. 하지만 그때는 너무 늦는다.

사실 내가 겪은 이별에 대해 가장 정확하게 분석할 수 있으며 직감할 수 있는 것은 나 자신이다. 나와 친밀했던 사람과의 관계가 맺어지고 끊어지는 일을 예측하는 데 있어서 내 직감만큼 잘 맞는 것은 없다. 타로카드나 점쟁이의 말, 혹은 연애 경험이 풍부한 사람들의 조언보다도 정확하다.


그 사람과의 이별에서의 가장 밀접한 관련자도, 유일한 목격자이자 주체도 ‘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별 후 분별력을 잃어 이성이 말하는 진실을 외면하게 되고 기억마저 왜곡 하며 제삼자에게 의존하고 싶어 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은 내 고통스러운 이별에 아무런 도움도 줄 수 없으며 아무런 영향력도 끼칠 수 없다.


안타깝게도 스스로 진실을 꿰뚫어 볼 수 있는 건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른 뒤다. 그리고 그 시기는 이미 너무 늦은 때일 수도 있다.




2016. 4. 17 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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