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람들이 이별의 상태라는 작은 위안
생각보다 방대한 추억의 양에 놀라곤 한다. 내가 의식하고 있든 그렇지 않든 마주치는 모든 공간들이 함정과 같다. 여기서 펑! 저기서 펑! 그 사람과 아무런 상관없을법한 사물도 공간도, 쉽게 그 사람 또는 그 사람을 상징했던 것과 연결하는 나 자신이 감탄스럽기까지 하다.
어떻게 하면 이별로 겪는 고통스러운 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을까에 대해 궁금해했던 시간도 지나간다. 하지만 스스로가 이미 잘 알고 있다. 그냥 겪는 수밖에 없다는 것을.
그 사람에 관한 생각을 의식적으로 덮는 것이 더 좋은 일인지, 닳도록 떠올리고 또 떠올리는 것이 더 좋은 일인지 양쪽을 다 해봐도 결론은 하나, 내가 어떤 상태를 경험하든지 관조적인 시선을 유지한 채 일관되게 흐르는 시간처럼 나를 그냥 둘 수밖에 없다는 것.
그리고 덮는다는 것은 밟기 전엔 눈에 띄지 않는 지뢰와 같을 뿐이다.
결국 어느 시점에서든 터져버릴 것이다.
이별할 무렵의 나는 정말이지 미숙했다. 더 배워야 할 것이 남아 아직까지 고통을 겪는 것이라면 어느 정도 납득할만하다. 그리고 이 필연적인 경험을 통해 더 성숙한 사람이 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위안 삼아야 한다.
한차례 폭풍이 지나가고 고요가 찾아와 마침내 이 모든 고통의 시기를 지나왔다고 기고만장해 있을 때에 예상치 못한 폭풍이 미처 수습 못한 마음을 다시 쑥대밭으로 만들어도 다시 차곡차곡 상처 입은 마음을 세우는 일을 체념하듯 받아들여야 한다.
불현듯 이별의 상태에서 벗어남을 기대한다는 것이 허무맹랑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벗어남이라는 것이 있을까? 이 이별은 좋은 싫든 또 새로운 누군가를 만나든 나의 앞으로의 연애스타일에 혹은 삶의 전반적인 부분에 꾸준히 영향을 미쳐 야만 할 것이다. 그래야만 같은 실수를 번복하지 않을 수 있다.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사랑하라지만 같은 상처를 면하기 위해 조심은 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사랑을 하고 이별을 겪어본 사람들은 모두가 이별의 상태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기꺼이 받아들일 것이다.
2016. 4. 17 일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