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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솔길 Aug 24. 2018

입술을 깨물다

우리 이제 헤어지네요.

출근은 했건만 채연은 일분마다 마음이 왔달 갔다리 했다.

'그냥 회사 그만둘까? 지금 나가도 모아둔 걸로 천천히 일이야 알아보면 될텐데, 월급 밀린 건 천천히 받고, 상혁이랑 잘 지내보기로 한지가 엊그전데 얘 나한테 왜 자꾸 돈을 꿔달라고 그러는 거야!!!'

싶다가도 한편으로는,

'그래, 까짓거 꿔주고 계속 붙어있을까? 어차피 줄 돈  때문에 얘 나랑 계속 일해야하는거고 잠깐 고비 넘기면 또 언제 그랬냐는 듯 잘 지낼텐데'.


그때 거래처 정 대표로 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성코디  별일 없지? 내 후배 하나가  포트폴리오가 필요하다는데 스튜디오 소개  해주려고."

"네, 그때 그 캡슐 커피요?"

"아니, 이건 다른 거."

"대표님~~근데 저랑 동업 안하실래요?? 저 온라인 마케팅으로 접목해서 컴포토를 개발해볼까하는데요."

"그러지 말구, 성코디 그럼 우리 회사로 들어 오는 건 어때? 여기 사람 필요한데."


채연은 한번 찔러봤는데 정 대표가 반색을 하자 이건 운명이 아닐까 싶었다.


이력서를 보내고 마음 한 쪽이 아렸다.

상혁이랑 인연이 십 년인데.

이제 헤어지는구나.

그래도 잊을 수는 없겠지, 잊지는 말자고 입술을 깨물었다.


 정말 오랜만에 가보는 상혁이네 스튜디오, 원영은 몇년 전 만해도 뻔질나게 드나들었던 지하 스튜디오에  다시 발을 들이자 감회가 새로왔다. 의상이 없어지는 바람에 짤려서 회사 열쇠랑 소지품을 놓고 오던 그때는 비가 정말 많이 내렸었다.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는데 이 곳에 다시 오게 되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상혁이 원영에게 죽 한사발을 내밀었다.

"먹어."

"나 배 안고픈데? 살 빼야되."


그래놓고 막상 앉자 잣죽  냄새가 고소해 원영은 날름 한 그릇을 뚝딱 비웠다.


"안 먹는다면서  잘 먹네. 그땐 그 때고, 원영아, 너 그림 그릴 줄 알지? 우리 촬영 전에 컨셉 시안을 스케치 회의를 가지고 해볼 상각인데 출근할 수 있지? 우리 성 코디가 집에 일이 있다고 고향 내려가야한다고 해서 갑자기 자리가 없어서 그래."


 채연이 상혁에게 돈 떼이기 전에 안되겠다 싶어 거래처 정 대표에게 은근히 이력서를 보냈는데 정 대표로 부터 긍정의 답이 오자 바로 라인을 갈아 타고 잠수를 했다는 말을 곧이 곧대로 할 수는 없어 상혁은 대충 둘러댔다.


"나 지금 웨딩숍 잘 다니고 있는데, 투잡 뛰라고?"

"어차피 너 거기서도 알바 아냐??? 돈 얼마 받는데??  나도 요새 인건비 안 나와서 너 반나절 알바로 있었으면 하는데."

"그래, 그림 한장 당 한 건으로 쳐서 오천 원."

"5000원 비싸다, 4000원 해."

"스케치북이랑 연필은 니가 사줘."

"알았어, 지우개는 니가 사."


둘은 투닥거리며 다시 잘 해보기로 시작했다.

비가 개고 어느 새 선선한 바람이 불었다.


그리고 채연은 새로운 회사로 출근을 해 새로 장만한 키보드를 앞에 두고 손목에는 아대를 차고 스무 개가 넘는 윈도우 창을 열어 본격적으로 랜딩 홈페이지 구축을 향해 자판을 두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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