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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샛별 Feb 26. 2024

[겨울밤+낭독여행]손보미<사랑의 꿈>중'해변의 피크닉'

샛별BOOK연구소


연작소설 <사랑의 꿈> 중 '해변의 피크닉', 손보미, 문학동네, 2023. (391쪽 분량)




  손보미 <사랑의 꿈> 중 표제작 '사랑의 꿈'의 화자가 엄마라면 '해변의 피크닉'은 화자가 딸이다. 그러니까 <사랑의 꿈>과 <해변의 피크닉>은 연작소설로 맞닿아 있다. 한편은 엄마의 입장에서 한편은 딸의 입장에서 동일한 사건을 바라보게 된다. 흥미진진한 점은 한 여성을 바라보는 둘의 다른 관점이다. '해변의 피크닉'의 화자는 그 여성이 친할머니가 될 것이며 '사랑의 꿈'의 화자는 그 여성이 시어머니가 된다. 엄마는 시어머니가 못 견디게 밉지만, 딸에게 친할머니는 해변에 데려가 주는 친절한 할머니다. <해변의 피크닉>을 읽으면 그 할머니의 살아온 역사와 심정을 어느 정도는 가늠하게 된다. 


  <사랑의 꿈>에서 화자의 딸은 이런 말을 한다. "엄마, 내가 삼촌을 사랑하는 걸 알고 있어요?"(p.138)라고. 엄마는 또 딸이 자신을 들쑤시려고 이런 말을 한다고 생각하고 흘려버리지만 이 말은 <해변의 피크닉>의 주제가 되며 똑같은 대사가 한 번 더 강조된다. "엄마, 내가 삼촌을 사랑하는 걸 알고 있어요?"(p.245). 도대체 말이 되는가. 조카가 삼촌을 사랑하다니. 그러나 이 말은 '해변의 피크닉'을 읽으면 개연성을 갖게 되고, '사랑의 꿈', '첫사랑'이라는 은유와도 화합한다. 


  화자는 일곱 살 이후부터 부산에 있는 할머니 댁에 거의 매년 여름방학이 되면 가야 했다.  부산에서 보름이나 한 달 정도를 머물면서 할머니와 지냈다. 이건 '사랑의 꿈'을 읽으면 왜 이런 조건이 붙게 되는지 알게 되는 데 이를 알 수 없는 조카에게 막 돼 먹은(?) 삼촌은 "뭐 어쨌든 너희 엄마는 정말 대단해. 너희 엄마가 여름마다 너를 여기에 보내는 대가로......"(p.207)라는 말을 한다. 이 말을 들은 할머니는 화병을 던지고, 삼촌은 사라진다. 그러나 화자는 자꾸 아빠의 동생. 배다른 동생인 삼촌에게 잘 보이고 싶다. 그를 할머니와 가는 해변의 피크닉에 초대하고 싶다. 기회를 잡은 화자는 삼촌에게 피크닉 장소를 알려준다. 


  할머니 댁에서 일하는 아주머니는 삼촌을 보고 '난봉꾼'(p.213)이라는 표현을 쓴다. 난봉꾼의 뜻을 사전에서 찾은 화자는 어느덧 같은 반 남자애들과 겹치게 되고 '브래지어를 착용한 여자애를 향한 남자애들의 끈질긴 장난질'(p.215)과 숙직실의 단어까지 오버랩된다. '숙직실'은 <불장난>에서 중요한 공간이었다. 이런 정황을 보면 '해변의 피크닉'의 화자와 '불장난'의 화자는 같은 반 여학생으로 유추된다. 어쨌든, 삼촌이 난봉꾼이든 말든 삼촌에게 향한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은 화자를 더욱 맹랑하게 만든다. 삼촌의 방문을 두드리고 "거기에 삼촌, 반쪽짜리 삼촌을 초대하고 싶어요."(p.222)라고 영악하게 말하는 화자. 


  '해변의 피크닉'에 초대하는 문구로 화자는 삼촌을 반쪽짜리라고 호명했다. 삼촌이 과연 바닷가에 올 것인가 쿵쾅거리는 심정으로 화자는 바닷물을 어슬렁어슬렁 거린다. 그때 나타난 삼촌은 하이힐을 신은 여자와 함께였다. 삼촌과 함께 있는 아름다운 여자를 볼 때마다 화자의 심정은 한마디로 '비통하다'(p.229)였다. 할머니, 삼촌, 삼촌의 여자, 화자. 이렇게 함께 한 대낮의 해변의 피크닉은 화자에게 모래 알갱이처럼 어석거리는 시간들이었다. 그러나 화자는 이 사건으로 한 뼘 자랐을 것이다. 


  해변의 피크닉이라는 거사를 치르고 집으로 향하는 길. 화자는 차 안에서 할머니가 "네 삼촌이 뭐라고 했는지 모르겠지만, 네 엄마는 너를 팔아넘긴 게 아니다."(p.242)라고 하자 화자는 악을 쓰며 말한다. "엄마가 나를 팔아서 슬픈 게 아니라구요. 그런게 아니라(...) 내가.....못생기고 뚱뚱하기 때문이에요."라고. 이 말을 들은 할머니는 어이없다는 듯이 너에게 이 많은 유산이 갈 텐데 그게 뭐 대수냐는 둥 다독인다. '삼촌에 대한 내 사랑은 그날 이후로도 지속되었고 더 훗날이 되어서야 완전히 끝났다.'(p.245)


  부산을 오고 가는 여정에서 엄마의 입장과 화자의 입장이 얼마나 다른지 두 소설을 읽으면 알 수 있다. 우리는 같은 상황에서 철저하게 혼자만의 감정을 경험한다. 그러나 착각한다. 엄마는 딸도 나와 같을 것이라고. 아무리 모녀지간이라도 이토록 다를 수 있다. 딸이 부산을 오가며 삼촌을 보면서 이런 맹랑한/귀여운/ 생각을 했는지 엄마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물론 삼촌에 대한 화자의 감정은 그 나이에 스치는 잠깐의 호기심, 귀여운 복수, 작은 열병이겠지만. 어린 나이에 앓고 지나는 마음들을 이토록 오롯하게 소환한 손보미 작가에게 감탄을~    



<해변의 피크닉> 이런 질문을 할 수 있어요.


-주공아파트에 살다 정우맨션에 이사 와 달라진 어머니의 모습에 대해.

-화자가 서술하는 어머니의 말들에 대해. 

예) "그러니까 너는 엄마에게 고마워해야 해. 엄마가 이렇게 너를 희생하는 것에 대해 말이야. "(p.197)

무슨 일이 있어도 포기하지 말라고. 꿈을 포기하는 건 세상에 종말이 온 후 혼자 살아남는 것보다 최악이라고. "뭐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란 말이야." (p.198)

"너네 할머니가 이사 간 우리 집이 어떻냐고 물어보면 그냥 그렇다고 대답해." (...) "할머니는 그런 거 안 물어볼 거 같아요." "아니, 내가 장담하는데 너네 할머니는 분명히 물어볼 거다. 아마 너를 보자마자 물어볼걸? 진짜, 내가 확신한다."(p.201)


-일곱 살 이후로 거의 매년 여름방학만 되면 부산에 있는 할머니네 집으로 가는 화자에 대해.

-할머니네 집으로 가는 날 어머니가 엉뚱한 소리를 하고 폭발하는 부분에 대해.

-한복을 곱게 차려 입고 해변으로 피크닉을 가는 할머니에 대해.

-'어른들 등쌀에 못 이겨 어머니와 할머니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소녀'(p.204)에 대해.

-아버지의 동생(25세/ 아버지와 열두 살 차이)에 대해

-"뭐 어쨌든 너희 엄마는 정말 대단해. 너희 엄마가 여름마다 너를 여기에 보내는 대가로..."(p.207)라는 삼촌의 말에 대해.

-이 말을 들은 할머니가 화병을 깨는 상황에 대해.

-오랫동안 할머니 집안일을 해주는 아주머니에게 "아주머니, 저희와 함께 식사하시죠."(p.211)라고 말하는 삼촌의 태도에 대해.

-삼촌에게 말하려고 어려운 단어들로 문장을 만들어 연습하는 화자에 대해.

예) '할아버지는 과묵해요, 할머니는 바다를 사모해요. 엄마는 모임을 주관해요. 친구들과 헤어진 것 때문에 나는 비통함을 느꼈어요. 납치당한 적 있는 그 애의 언어능력은 쇠퇴하고 있어요. 바닷가의 갈매기들은 하늘로 비상해요...'(p.217) 


-삼촌 방에 올라가 "거기에 삼촌, 반쪽짜리 삼촌을 초대하고 싶어요."(p.222)라고 말하는 화자에 대해.

-삼촌이 해변의 피크닉 장소로 찾아오는 행동에 대해.

-삼촌이 데려온 여자를 보고 '비통하다'(p.229)라는 단어를 생각하는 화자에 대해.

-손녀에게 "네가 남자아이였다면 좋았을 텐데."(p.230)라고 말하는 할머니에 대해.

-"엄마는 나를 팔아넘겼어요."(p.234)라고 말하는 화자에 대해. 

-피크닉 후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내가 우는 건.... 내가 슬픈 건...... 내가 마음이 아픈 건...... 내가 ...... 못생기고 뚱뚱하기 때문이에요."(p.243)라고 말하는 화자에 대해.

-'삼촌에 대한 내 사랑은 그날 이후로도 지속되었고 더 훗날이 되어서야 완전히 끝났다.'(p.245)라고 말하는 부분에 대해. 


-<해변의 피크닉>의 "엄마, 내가 삼촌을 사랑하는 걸 알고 있어요?"(p.245)라는 부분과  <사랑의 꿈>에서 "엄마, 내가 삼촌을 사랑하는 걸 알고 있어요?"(p.138)라고 말하는 부분에 대해. 

-화자와 엄마의 각각 다른 입장에 대해. 

-그 외 





발췌


무슨 일이 있어도 포기하지 말라고. 꿈을 포기하는 건 세상에 종말이 온 후 혼자 살아남는 것보다 최악이라고. "뭐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란 말이야." (p.198)


어머니의 느닷없고 엉뚱한 소리는 할머니네 집으로 가는 날이면 말 그대로 폭발했다. 일곱 살 이후로 나는 거의 매년 여름방학이 되면 부산에 있는 할머니네 집으로 가서 보름이나 한 달 가량을 머물렀다(열 살 여름방학 때는 서울에서 지냈는데, 그해에 대해 어머니는 이야기하려고 하지 않았다).(p.198)


"너네 할머니가 이사 간 우리집이 어떻냐고 물어보면 그냥 그렇다고 대답해." (...) "할머니는 그런 거 안 물어볼 거 같아요." "아니, 내가 장담하는데 너네 할머니는 분명히 물어볼 거다. 아마 너를 보자마자 물어볼걸? 진짜, 내가 확신한다."(p.201)


'어른들 등쌀에 못 이겨 어머니와 할머니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소녀. 혼란스러움을 감추기 위해 조용히 고개를 숙인 채 침묵을 지키는 소녀.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나는 지금 모든 힘을 다해 진실되게 쓰려고 노력중이다). (p.205)




그러니까 어머니는 내게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기분을 거스르지 말라고 당부할 필요가 없었다.(p.205)


뭐 어쨌든 너희 엄마는 정말 대단해. 너희 엄마가 여름마다 너를 여기에 보내는 대가로..."(p.207)


기사 아저씨를 따라가면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짧은 머리를 잘 빗어 넘긴 할머니가 자동차 뒷좌석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할머니는 항상 한복을 입었다. 다른 종류의 옷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할머니는 바다를 무척 좋아해서 일주일에 두세 번은 나를 데리고 해변으로 피크닉을 갔는데 그럴 때에도 항상 한복을 차려입을 정도였다. 할머니네 집은 바다와 동떨어져 있었고 피크닉에 동행하는 건 언제나 나와 기사 아저씨뿐이었다. 그게 아주 신나는 경험이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p.202)


*1년에 화자는 할머니 집으로 보름이나 한 달 정도 머뭅니다. 이때 할머니와 ‘해변의 피크닉’을 가는데요, 이 문단에서 단편 제목이 나오네요. 할머니는 왜 바다를 좋아했을까요? 한복을 차려 입고 일주일에 두세 번을 가셨네요. 


그날 아침식사를 하러 식당에 갔을 때, 삼촌이 내 자리에 앉아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 심장이 빨리 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너희 엄마는 정말 대단해. 너희 엄마가 여름마다 너를 여기에 보내는 대가로…… 나는 그가 우리 어머니에 대해 또 어떤 표현을 사용할 수 있는지, 혹은 그가 할아버지나 할머니에 대해서는 어떤 식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지 궁금했다. 


나를 본 그가 자신의 옆자리를 손으로 두드렸다.

“거기는 내 자리가 아닌데요.”

“괜찮아. 아무 데나 앉으면 돼.”

나는 머뭇거리다 그의 옆자리에 앉았다.

“휴식을 취한다는 말, 알아?”

나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장난스러운 미소를 띠고 또 한 번 질문했다. 

“영원히 휴식을 취한다, 는 말은 무슨 의미인지 알아?”

나는 이번에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눈을 가느다랗게 뜨고 마치 이런 식의 주제로 넘어오는 게 정해진 수이라는 듯이 할아버지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나는 그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는데, 어쩐지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굉장한 용기가 필요했다. 구겨진 반팔 티, 헝클어진 머리카락, 번들거리는 이마, 그리고 턱 아래에 남아 있는 옅은 수염 자국. 그에게서 술냄새와 땀냄새, 그리고 내가 알지 못하는 제취 같은 것이 느껴졌다. 나는 시선을 떼고 대답했다.


“할아버지는 적막한 걸 좋아하세요. 무척 과묵하시거든요.”(p.209)

“헤엄을 칠 줄 알면 훨씬 더 재미있을 텐데.”

그 순간, 그녀에 대한 미움은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커다란 증오로 바뀌었다. 그래, 나는 그녀를 증오했다. 그녀의 길게 뻗은 목과 쇄골을, 꼿꼿한 등을, 윤기나는 머리카락을, 새까만 눈동자를, 가지런한 치열을, 적당히 가볍고 경쾌한 웃음소리를, 기다란 손가락을, 드러낸 배의 근육을, 귀걸이가 달린 작은 귓불을 증오했다. 


내 목숨을 바칠 수 있을 정도로. 정말로 내 목숨을 다 바칠 수 있을 정도로. 그런 생각을 하자 갑자기 몸이 떨려왔다. 무수한 작은 돌기가 살갗으로 올라오고 마른침을 꿀떡 삼키는 게 되는 것. 순전히 신체적인 영역에 속하는 반응들. (p.232)


“너희 엄마는 너를 팔아넘긴 게 아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니까……”

“그런게 아니라구요.”

나는 훌쩍거리며 이번에도 소리지르듯이 말했다. 

“뭐가 아니란 말이냐?”

“엄마가 나를 팔아넘겨서 슬픈 게 아니라구요. 그런 게 아니라구요……나는……나는……”

“할미가 말하잖니. 네 엄마는……”

“그런 게 아니에요. 내가 우는 건……내가 슬픈 건……내가 마음이 아픈 건……내가……못 생기고 뚱뚱하기 때문이에요.” 

한동안 차 안에는 내가 훌쩍거리는 소리만 가득했다. (p.243)





https://blog.naver.com/bhhmother/223360219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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