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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샛별 Feb 29. 2024

히가시노 게이고<추리소설가의 살인사건>중'예고소설'리뷰

샛별BOOK연구소

<추리소설가의 살인사건> 중 '예고소설 살인사건', 히가시노 게이고, 소미미디어, 2020. (총285쪽)


  단편 '예고소설 살인사건'은 소설가로 살아가는 직업의 고뇌를 담고 있다. 소설은 작가와 편집자와의 관계, 소설과 현실, 판매부수, 소설의 자극적인 내용, 독자들의 열광, 언론의 호기심 등을 생각하게 했다. 책을 쓰는 작가의 입장과 판매부수에 신경을 써야 하는 편집자의 권력관계도 엿볼 수 있다. 더불어 '소설이 현실화 된다면?'을 가정하에 그대로 재현된다면 독자들의 호기심은 매출로 이어질 것이다.  어쩌면 무명작가는 행운을 얻어 10만 부를 찍고 유명 작가가 될지도 모른다. 과연 책이라는 물성의 어떤 속성을 가졌는지, 편집자의 윤리와 작가적 철학은  출판업계에서 어떤 역할을 담당하는지 고민해 볼 지점이다. 별점은 2.5-3.0으로 낮았지만 생각해 볼 거리가 많은 단편이었다.  




  주인공 마쓰이 기요후미는 구식 워드프로세서로 소설을 쓴다. 작가는 4평 크기의 원룸에 살고, 침대와 싸구려 유리 테이블, 초라한 책상이 있다. 그는 잡지 <소설 긴초>에 <살인의 제복> 3회를 연재중이다. 편집자 엔도는 마쓰이를 방문해 장조림을 선물로 준다. 맨날 컵라면만 먹고 글을 쓰는 그에게 힘내라며. 


  둘의 관계는 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마쓰이 기요후미가  <소설 긴초>가 모집한 신인상에 응모해 입선을 수상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10년 동안 작가를 목표로 달려온 마쓰이. 드디어 잡지에 단편을 발표하고 장편소설을 써 단행본을 발간하며 생활했다. 원고료는 볼품없었고 무명작가의 삶은 고달팠지만 긴초샤 출판사 편집장 엔도가 그에게 기회를 줬다. <소설 긴초>에 연재해 보라고. 


현대문학 독서토론



  그가 쓴 <제복의 살인> 1회는 간호사가 목 졸려 죽는 자극적인 내용이었다. 2회는 만푸쿠 백화점 엘리베이터 걸이 살해당하는 내용이다. 3회는 <백조의 호수> 무용수가 가슴에 단검이 꽂혀 살해당하는 내용이다. 지금까지 연재된 소설에 대해 편집자 엔도는 "뭐랄까, 살인 상황 자체는 자극적인데 이야기 전개가 좀 평범해. 등장인물도 존재감이 좀 부족해. 신문기자인 주인공에 좀 더 개성을 넣으면 좋을 듯한데."(p.164)라고 말한다. 글은 작가가 쓰지만 출판은 편집자의 몫이라 엔도의 조언을 무시할 수도 없다. 엔도는 한마디 덧붙인다. "임팩트가 필요해"(p.165). 


  엔도는 소설에서 어떤 임팩트를 말하는 걸까. 오직 잡지 판매 부수만을 생각하는 편집자에게 작가의 고유성은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최대한 흥미로운 기삿거리를 만들고 '반드시 세상 사람들 입에서 앗 소리가 나오게 하고 싶다고.'(p.166) 말하는 엔도. 엔도는 자신이 편집한 잡지가 유명해져 대박을 터트리길 원한다. 

 


샘들~ 간식 감사합니다. 맛나요~ 


  우연인지 계획인지 마쓰이가 쓴 소설이 현실에서 똑같이 재현된다. 소설은 미리 일어날 수 있는 일을 예언하는 기능을 갖고 있기라도 하듯 소설에서 일어나는 살인사건이 똑같이 일어난다. 소설가는 어쩜 초능력자, 예언자, 점성술사와 비슷한 기능을 하는지 모른다. 소설은 허구지만, 현실에서 언제든 비슷하게, 똑같이 일어날 수 있다. 소설가도 어쩜 앞을 미리 내다보는 능력을 가질 수 있고 이들과 같은 범주에 들 수 있겠구나 생각했다. 이 사건을 두고 편집자 엔도는 마쓰이와 대화를 나누는데, 엔도가 이 상황을 이용하자고 하자 마쓰이는 "이용이라니?"(p.171)라고 묻는다. 엔도는 이런 마쓰이를 보고 "둔하다"라고 말하는데, 편집자 엔도는 철저히 둔한 마쓰이를 이용한다. 추리소설을 쓰는 작가가 촉이 날카롭지 못하다. 


  작가는 또 하나의 모순을 갖는다. 무명작가로는 생계를 유지할 수 없다. 어떻게 해서든 유명 작가가 되어, 책을 팔아야 한다. 책이 잘 팔리면 많은 인세를 받고 작가로의 삶을 살아갈 수 있다. 그렇다면 작가는 작품성만을 고집할 수 없다. 자신이 쓰고 싶지 않은 방향이어도 판매 부수를 높이기 위해 억지로 그들의 입맛에 맞춰 쓸 수밖에 없다. 베스트셀러가 되고 입소문이 나려면 서점에서 홍보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책이 시류를 어떻게 타느냐, 이슈를 어떻게 생성하느냐, 어떤 출판사에서 무엇을 홍보하느냐에 따라 책의 운명이 바뀐다. 아무리 좋은 작품도 팔리지 않고, 입소문이 나지 않으면 사장되고 마는 냉정한 출판 세계. 


  엔도에게 마쓰이는 도구에 불과하다. 무명작가를 고용해 그의 이름을 빌려 일석이조를 누린 편집자. 그의 독보적인 권력을 본다. 엔도는 제복을 입은 여자들에게 혐오가 있었던 걸까. 마쓰이와의 통화에서 범인(엔도 추정)은 "미안하지만 아직도 벌을 줘야 하는 여자가 많아. 좀 생겼다고 잘난 척하며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면서 아무 생각 없는 멍청한 여자들 말이야."(p.185)라고 했으니. 


  왜 제복을 입은 여자가 살인의 대상이 됐을까. 일단 제복을 입으려면 어느 정도 몸매가 되어야 한다. <살인의 제복>에 나오는 여성들은 간호사, 백화점 엘리베이터 걸, 발레리나, 대학교 치어리더, 회사 안내 데스크 직원 등이다. <살인의 제복>에 죽지는 않았지만 제복을 입은 여성으로 언급되는 직업은 스튜어디스, 버스 가이드, 교복을 입은 여고생 등이다. 제복을 입은 여성들에게 사디즘, 마조히즘을 보이는 성향이 있는 걸까. 일본 특유의 제복에 대한 남성의 성적 갈망(?)은 이번 소설의 소재로 어김없이 활약한다. 제복을 입으려면 날씬한 선과 예쁘게 생긴 얼굴. 그래서 제복을 입은 여성들의 우월한 몸짓이 타자를 무시하는 태도를 보였을지도 모른다. 엔도는 연쇄살인마가 되어 소설에 나오는 그대로 제복을 입은 여성들을 무자비하고 깔끔하게 살해한다. 


  <소설 긴초> 발매를 앞둔 19일 전 날, 마쓰이는 혼자 범인을 만나러 후쿠이현으로 간다. 그의 예상대로 버스 가이드를 한 복장의 여성이 나타났고, 마쓰이는 그 여성을 숙소로 돌려 보낸다. 이어 낯익은 목소리가 들리며 마쓰이의 등을 낭떠러지로 밀어버린다. 이 사선 이후 엔도는 편집부 직원들에게 마쓰이가 살인자였음을 떠벌리며 소설은 끝난다. 


  경찰은 아무런 단서를 찾지도 못하고 소설을 쓰는 작가만을 압박하고 있다. 출판사와 살인사건의 유추를 못한다는 경찰. 출판사와 편집자까지 확대 조사를 하지 않는 점, 마쓰이는 모든 걸 편집자와 상의하다 범인의 전화를 받았다는 부분은 엔도에게 말하지 않는 등, 개연성 다소 떨어지고, 범인이 명확하게 유추되는 작법 등 아쉬운 부분이 있는 단편이다.   


<예고소설 살인사건> 이런 질문을 할 수 있어요. 



-소설가 마쓰이의 성격에 대해.

-마쓰이와 편집자 엔도의 관계에 대해.

-작가의 근원적인 욕망에 대해.

-편집자의 권력에 대해.

-출판사, 판매 부수, 편집자, 작가라는 출판시장 생태에 대해. 

-또는 작가라는 본질적인 직업에 대해.

-제복을 입은 여성을 살해하는 부분에 대해.

-경찰의 무능한 수사에 대해.

-범인이 밝혀지는 정황에 대해.

-작가가 범인의 전화에 대해 함구하는 태도에 대해.

-작가/ 소설가의 윤리와 도덕성에 대해.

-독자들의 호기심에 대해.

-살인사건에 열광하는 독자들에 대해.

-범인의 요구를 들어주는 마쓰이에 대해.

-베스트셀러가 되는 조건에 대해. 

-소설이라는 상품화에 대해. 

-살인범의 심리에 대해.

-결말 부분에 대해.

-개연성이 떨어지는 부분에 대해.

-그 외 




발췌



-"대단한 건 아니었어요. 소설을 발표하고 누군가에게 무슨 말을 들은 적 있냐, 뭔가 이상한 일은 없었냐, 일련의 사건에 짚이는 건 없냐?"

"당연히 없지."

"물론 없죠." 마쓰이는 바로 부정했다. "자랑할 것도 아니지만, 데뷔 이래 팬레터 같은 것도 악평 같은 것도 받은 적 없습니다. 제가 어떤 소설을 발표하든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습니다." 

"아이고, 뭐" 엔도는 웃으면서 마쓰이를 달랜 후 심각한 표정으로 팔짱을 꼈다.

"하지만 이 상황을 이용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

"이용이라니?"

마쓰이가 묻자 "둔하네"라며 엔도가 얼굴을 찡그렸다.

"보라고.  소설대로 사람이 죽었다고. 재밌지 않아?"

"그야 그렇지만."

"범인은 자네 소설을 읽고 다음 희생자를 정하고 있을지도 몰라. 그렇다면 자네 소설은 현실 사건의 예고이기도 하지. 이걸 세상에 어필하면 틀림없이 화제가 될 거야. 마쓰이 기요후미라는 이름이 주목을 받고 책도 팔리겠지." (p.171)



<추리소설가의 살인사건> 목차


"그런데 왜 이런 일이 일어나죠? 제 소설대로 사람이 죽어 나가다니, 너무 기분이 나쁩니다." 그러자 전화 너머 엔도가 혀를 찼다. "그런 고민해 봤자 한 푼도 안 생겨. 어쨌든 지금은 이 기회를 어떻게 이용할지 생각해야지. 조금 전, 전에 얘기했던 신문기자에게 바로 연락이 왔더라고. 꼭 자네 얘길 듣고 싶대. 나중에 또 연락할 테니까 준비하고 있게. 알았지?"(p.174)


-"잠깐만! 왜 내가 당신이 시키는 대로 해야 하지?"

"끝까지 내 말을 들어. 당신이 그렇게 쓰면 이번에도 나는 그대로 치어리더를 죽일 거야. 그럼 또 세상은 시끄러워지겠지. 당신 소설과 이름도 주목받을 게 분명해. 어때? 나쁜 얘기는 아니잖아? 이제까지는 내가 당신 소설대로 죽일 상대를 골랐어. 그러니까 이번에는 내가 죽이는 대로 당신이 소설을 쓰라고."(p.183)


"정말 놀랐어. 설마 그가 범인일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어. 하지만 잘 생각해 보면 가능한 일이야. 일단 그는 자신의 지명도를 올리려고 애쓰고 있었으니까." 편집부 책상에 엉덩이를 올리고 엔도가 후배들에게 말했다. 

"자기 책대로 사건이 일어나면 이름이 알려진다고 생각한 겁니까?" 여성 편집자가 물었다. 

"아, 그런 셈이지. 그 생각을 하면 조금 책임감이 느껴져. 어떻게든 화제가 되어야 한다고 너무 몰아붙인 게 아닐까." 

"하지만 자살까지 소설 안에 예고하다니."

"그러게나 말이야. 그 마지막 원고를 받았을 때는, 설마 그게 그의 유서가 될 줄 상상도 하지 못했어." (p.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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