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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샛별 Apr 07. 2024

[겨울밤+낭독여행] 손보미 <사랑의 꿈> 중 <불장난>

샛별BOOK연구소


연작소설 <사랑의 꿈> 중 '불장난', 손보미, 문학동네, 2023. (391쪽 분량)

남자들이란 항상 골칫거리지


<불장난> 첫 문장/ 65쪽

[겨울밤+낭독여행] 필사와 표지인증 감사합니다. 


  "남자들이란 항상 골칫거리지"(p.65)로 시작하는 <불장난>의 첫 문장은 의미심장하다. 이 말은 화자의 새엄마가 하는 말인데 누구를 지칭하고 있는 말일까. 내용상으로는 화자의 같은 반 학생들을 두고 하는 말이지만 새엄마는 아마도 자기 남편을 생각하며 내뱉었을지도 모른다. 화자는 새엄마를 '그녀'라고 칭한다. 그녀는 엄마와 구별되는 표현이다. '그녀'는 절대로 엄마가 될 수 없는 거리를 표시하는 호칭이다. 그녀는 아빠에게는 두 번째 아내지만 화자에게는 절대적인 타인이다.


  그녀가 내뱉은 "남자들이란 항상 골칫거리"라는 말이 살면서 자꾸 맴돈다. 저 말을 화자는 아빠에게도 전 남편에게 해주고 싶지 않았을까. 아빠는 바람이 나서 엄마와 이혼했다. 철없는 불장난이라니... 사랑이라는 말은 불장난과 비슷하다. 위험하고, 뜨겁고, 소멸한다. 


  하루아침에 엄마 아빠가 이혼한 화자의 마음은 굳어버렸다. 겉으로 보기는 멀쩡해도 말이다. 엄마는 떠났고 그녀와 아빠랑 살아야 하는 화자는 외롭다. 마음 둘 곳이 없는 화자는 '그녀'에 대한 미움으로 단단해진다. 화를 낼 곳, 폭발할 지점이 필요하다. 


  그녀를 미워하는 마음은 같은 반 '양우정'에게 옮겨간다. 양우정에 관련된 불량한 소문은 사실이어야 했다. 자신의 눈으로 확인하고 싶은 갈망은 양우정이 숙직실에서 은밀하게 무엇을 하는지 목격해야 했다. 화자는 양우정의 부도덕을 확인해야 아버지를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화자는 아름다운 장면을 기억한다. 초등학교 때 아빠와 엄마와 미약한 촛불 앞에서 떡국떡을 구워 먹었던 시절. 엄마가 떡을 씹으며 행복하다고 울었던 장면. 이날만큼은 가족들이 똘똘 뭉쳤던 시간이다. 안정감을 느꼈던 이 장면을 기억하면 화자는 어떤 고난과 역경이 와도 이겨나갈 수 있을 거 같았다. 


  화자가 낮잠을 자다 깼을 때 집에 아무도 없었다. 거실 소파 아래에 작은 물체가 보였고, 끄집어낸다. 그건 아버지의 연두색 라이터였다. 라이터를 보자 화자는 ‘어떻게 그런 물건—내 앞에 절대 드러내서는 안 된다고 판단한 물건—을 그렇게 쉽게 잃어버릴 수가 있는 걸까? 나에게 어떻게 그럴 수가 있단 말인가?’(p.115) 생각하며 여러 감정이 교차한다. 화자는 아버지의 무신경함에 ‘화가 났고 서글픈 기분마저 들었다’(p.115) 딸 앞에서 담배도 피우지 않고, 좋은 것만 보도록 지켜줬던 아버지였다. 라이터를 발견하게 둔 아버지를 생각하자 자신이 그 연두색 라이터가 된 거 같았다. 더 이상 화자를 세심하게 신경 쓰지 않는 아버지. 화자는 라이터를 들고 그녀가 적어놓은 메모를 태운다. 


  그리고 그 라이터의 쓰임은 계속된다. 불장난은 점점 더 대범해지고, 계획적으로 치러진다. 통과의례를 거쳐야 하는 심정으로 23층 아파트 옥상에 올라가 불장난을 시작하는 화자는 보호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 어떤 수치심과 굴욕감도 느끼지 않고, 태울 수 있는 종이들을 태운다. 극적인 변화는 극적인 행동으로 치유될 수 있을까. 화자의 '불장난'은 아버지와 그녀의 존재를 소멸하는 의식처럼 타올랐다. '불장난'으로 어린 시절의 아픔을 거듭거듭 위로받는다. (출처:샛별BOOK연구소/ 작성자 샛별)



이런 질문을 할 수 있어요

-화자가 손님들이 있는 거실을 엿들으며 '거대한 귀'가 되었다고 표현한 부분에 대해서

-아버지와 새엄마의 결혼 생활 모습에 대해

-아버지는 흡연가였지만 재떨이도 라이터도 눈에 띄지 않게 한 행동에 대해

-그녀(새엄마)의 운전습관에 대해

-아버지(39세)와 그녀(27세)가 사랑에 빠져 재혼한 일에 대해.

-아버지의 이혼으로 새엄마와 사는 딸에 대해.

-"너네 엄마는 야망이 있는 여자였어"(p.81)라고 한 아빠의 말에 대해 

-대학교수인 어머니가 아이를 양육하는 태도에 대해.

-화자가 여덟 살 폭풍우 치는 밤에 있었던 일화에 대해.

-냉동식 떡국떡을 양초에 구워 먹는 모습에 대해.

-"아, 지금 너무 행복해서 그래."(p.90)라고 말하는 엄마의 모습에 대해.

-5학년 화자와 같은 반에 있는  양우정에 대해.

-양우정 얘기를 하며 중학생 오빠, 햄버거 가게, 뽀뽀, 임신, 우웩~이라는 단어가 나오는 상황에 대해. 

-양우정과 얼굴도 모르는 중학생 오빠를 상상하는 화자에 대해.

-양우정이 있는 숙직실에 찾아간 화자에 대해

-숙직실에서 런어웨이를 하는 양우정 무리와 화자에 대해

-양우정 손수건을 소각장에 버린 행동에 대해

-"너네 부모가 그렇게 하기로 결정했어."(p.111)라고 말하는 엄마에 대해

-소파 밑에서 발견한 라이터에 대해.

-'다른 건 모르겠는데 밥은 좀 먹어라, 제발.'(p.115)라고 쓴 메모를 태우는 화자에 대해.

-25층 옥상에 올라가 노트와 참고서를 태우는 불장난에 대해

-중학교 2학년 때 '불장난' 글짓기를 낭독하는 화자의 모습에 대해

-그 외 





발췌



“남자들이란 항상 골칫거리지.”

남자애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놀이에 대해 말하자 그녀는 그렇게 대답했다. 그녀의 대답에 나는 의구심을 느꼈던 것 같다. 혹은 그녀가 진짜 의도를 숨기고 있다고 여겼거나. 그때 나는 열두 살이었고, 여자애들끼리 모여서 시도 때도 없이 이런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남자애들은 더러워. 바보. 멍청이들. 이 세상에서 없어졌으면 좋겠다. 모조리 다. 발언 속에 포함된 경멸은 언제나 진실된 것이었다. (p.65)


접근 금지 딱지가 붙어 있다는 것. 그러니까 아버지가 그 딱지를 ‘그런’ 세계가 아닌 나 자신에게 붙여놓았다는 것. 나는 어둠 속에서 내 신체 전부가 거대한 귀가 되었다고 상상했다. 신체는 언제나 정신을 지배하는 법이어서, 그런 상상이 작동되기 시작하면 나는 그 흐리터분한 덩어리 속에서 독자적인 음절들을 구분 짓고 하나씩 차례대로 골라 잡을 수 있었다. 쾅, 하고 잔을 테이블에 내려놓는 소리, 무언가가 쏟아지는 소리, 냉동실에서 꺼낸 얼음을 통에 붓는 소리, 사람들이 뭉개지는 말소리. (p.73)


 “나도 해보고 싶어.”

내 말이 끝나자마자 아버지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위험해서 안 돼.”

어머니와 아버지는 떡을 구워서 번갈아가며 내게 먹여주었고, 간간이 자신들의 입에도 집어넣었다. 도시에 미친 듯이 비가 쏟아지고 (조금 과장하자면) 전봇대도 뽑아버릴 것 같은 바람이 창문을 계속 흔드는 동안, 우리 가족은 별말도 없이 서로에게 몸을 딱 붙인 채 떡을 구웠다. 가끔 하늘이 무너져내릴 것처럼 천둥번개가 치거나 창문이 심각하게 덜컥였지만 우리는 떡을 굽고 씹는 데에만 열중했다. 그때, 옆에서 훌쩍거리는 소리가 났다.

“엄마, 울어?”“울어? 왜?”

아버지가 놀라서 묻자, 어머니가 여전히 훌쩍이며 대답했다.

“아, 지금 너무 행복해서 그래.”

그 말은 진실이었을 것이다. 어머니는 정말로 그 순간 행복했을 것이다. 어둠 속, 미약한 촛불을 앞에 두고, 두려움을 애써 숨긴 채로 떡을 씹으면서, 어머니는 가족의 유대감, 자신이 진정으로 있어야 하는 곳에 있는 것 같다는 안정감을 느꼈을 것이다.(p.89)




그날 저녁, 몸이 아프다고 말하고(이건 거짓말이었다) 일찌감치 침대에 누운 나는 라이터가 소파 밑에 떨어져 있었던 이유를 따져보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거기에 숨겨둔 것일까? 무언가를 숨기기에 소파 밑이 적당한 장소인가?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닌 것 같았다. 그보다 아버지가 왜 자신의 집에서 라이터를 숨겨야 한단 말인가? 그렇다면 숨긴 게 아니라 실수로 잃어버린 것일까? 어떻게 그런 물건—내 앞에서 절대 드러내서는 안 된다고 판단한 물건—을 그렇게 쉽게 잃어버릴 수가 있는 걸까? 나에게 어떻게 그럴 수가 있단 말인가? 이런저런 가능성을 다 따져봐도 결론은 하나였다. 아버지가 말도 안 되게 허술했다는 것. 나는 아버지의 그 허술함 때문에, 나를 라이터에 노출시킨 그 무신경함 때문에 화가 났고 서글픈 기분마저 들었다. (p.115) 


그렇다면, 그해 여름방학이 끝날 즈음에 불장난이 막을 내린 것은? 사실이다. 원래부터 가시가 별로 남아 있지 않았던 라이터의 불길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힘을 잃어갔고, 때로는 아무리 힘차게 부싯돌을 돌려도 불길은 화르르 치솟지 않게 되었다. 나는 라이터가 소모품이라는 사실, 가스가 닳아 없어진다는 사실, 주기적으로 교체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 사살을 알게 되었을 때, 처음에는 애가 탔고, 조금 시간이 지나자 짜증이 났으며, 나중에는 분한 마음이 들었다. (p.125)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이 든다. 때때로 삶에서 가장 큰 용기를 필요로 하는 건, 바로 그런 착각과 기만, 허상에 기꺼이 몸을 내주는 일이라고. 착각과 기만, 허상을 디뎌야지만 도약할 수 있는, 그런 삶이 존재한다고. 언젠가 모든 것을 한꺼번에 돌이켜보는 눈 속에서 어떤 사실들을 재배열되고 새롭게 의미를 획득할 것이다. 불가피하게 진실이 거짓이 되고, 거짓이 진실이 되며, 허구가 사실이 되고, 사실이 허구가 되는 그런 순간들! 그러므로 이 여정 자체가 그 모든 것을 한꺼번에 돌이켜보는 눈의 진짜 효용이 될 것이다. (p.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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