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샛별 May 19. 2024

프란츠 카프카 <판결> 리뷰 (feat. 고래책방)

샛별BOOK연구소


<변신• 시골의사> 중 ‘판결’, 프란츠 카프카, 민음사. (79쪽 부터~95쪽 까지)





  <판결>은  프란츠 카프카가 '1912년 9월 22일 밤 10시에 써서 다음날 새벽 6시까지 단숨에 쓴'(출처: 카프카의 인류타락 신화 수용과 형상화 -작품<선고>를 중심으로, 권혁준/서울대)단편이다. 하룻밤에 쓴 단편이라니 놀랍다. <판결>에는 부제 -  펠리체 B. 양을 위한 이야기-가 붙어있다. 작품을 읽고 나면 왜 그녀를 위해 썼는지 가늠된다. 자신이 지켜주지 못한 약혼녀, 그녀와 결혼하지 못한 미안함이 묻어 있다. 왜 결혼까지 갈 수 없었는지 슬픈 변명이기도.  


  소설의 주제는 역시 아버지와 갈등이다. 아버지는 아들(게오르크)을 누르려 하고 아들은 아버지를 넘어서려 한다. 프란츠 카프카의 갈등 세계(아버지-아들의 권력다툼)는 <변신>에서 전초전을 보이더니 <판결>에서 끝장을 낸다.  <변신>에서 그레고르는 아버지가 던진 사과에 맞아 스스로 곡기를 끊고 죽는다. <판결>의 화자는 아버지의 선고에 따라 생을 마감한다. 아버지는 아들의 행적을 낱낱이 언급하더니 판사처럼 '판결'한다. 아들은 아버지의 판결을 거역할 수 없다. 아버지의 말은 곧 법이므로 '익사형'이라는 형벌을 따를 수밖에... 두 작품에서 아들은 자살을 선택하지만 엄밀히는 아버지에 의한 타살이다. 


  소설을 읽으며 가장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은 아들을 향한 아버지의 미움이다. 얼마나 밉고 못마땅했으면 하나부터 열까지 불만이다. 아버지는 아들을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한다. 아들의 사업체, 친구관계, 약혼, 결혼 문제까지 쥐락펴락한다.  프리다 브란덴 펠트와 약혼한 화자는 이 사실을 러시아 페테르부르크에 있는 친구에게 전하려 한다. 약혼 소식을 적은 편지를 들고 아버지 방으로 들어간다. 여기서 사달이 났다. 편지는 약혼녀와 결혼하겠다는 암묵적인 의지이기도 하다.  


   몇 개월 만에 아버지 방을 들어간 아들은 놀란다. 아버지 방이 너무 어둡고 침침했기 때문이다. 화자가 보기에 아버지는 한 마리의 벌레 또는 괴물이 되어 그곳에 기거하고 있었다. 아버지 사업체를 물려받은 아들은 아버지와 식당에서 점심을 늘 함께 먹었다. 저녁은 각자 해결했고, 거실에서 시간을 보내다 각자의 방으로 들어갔다. 아들은 아버지 방에 올 일이 없었다.


   아버지는 창문도 닫고 어둠 속에서 있다. 밖은 밝은 오전인데 아버지방이 어둡다니 그걸 이제야 알았다니 아들은 무신경했던 자신을 자책하며 자신의 방과 바꾸려고 한다. 집에서 누가 어떤 방(안방-작은방 등)을 차지하냐는 중요하다. 방에 따라 권력은 달라진다. 아들은 권력이 자신에게 이양됐음을 알고 화들짝 놀란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아버지는 뒷방 신세로 전락하여, 화가 나 있었다.  이 구조는 <변신>과 비슷하다. 세일즈는  하는 아들은 회사에서 승승장구했지만 아버지는 사업에 실패에 빚을 지고 집에 있는 신세였다. 카프카는 <판결>에서 아버지 방과 아들 방을 묘사하며 권력관계를 설명한다. 아버지는 자신의 방에 들어온 아들에게 마지막 힘을 짜 결투를 시작한다. 그 힘은 죽은 아내의 유품에서 전달받는다. 이는 어머니도 아버지와 뜻을 같이했음을 보여주는 신호다. 


  아들은 아버지의 사업을 승계해 운영하고 있는 중이다. 매상도 다섯 배나 늘었고, 직원도 두 배나 늘었다. 사업을 잘하고 있다. 그러나 아버지는 이 사실에 질투가 나는지 왜곡해서 말한다. 자신의 처지를 두고 '불성실한 고용인에게 쫓겨나 뒷방에 들어앉은'(p.92)이라고 말한다. 불성실한 고용인은 아들이다. 아들이 불성실하게 된 이유를 아버지는 약혼녀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년이 치마를 이렇게 들어 올렸기 때문에, 그 추잡한 년이"(p.91)라며 "그년과 들러붙었"(p.91)기 때문에 "네 어미의 영전을 더럽히고 그 친구를 배반하고 네 애비를 꼼짝달싹 못하도록 침대에 처박아놓았다."(p.91)라고 한다. 


  아버지는 아들이 불성실하다고 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게오르크는 대단한 결심을 하고 사업에 달려들었다. 아들은 사업체를 잘 운영하고 있었다. 2년 동안 매상과 직원의 수가 늘어났다는 증거가 있다. 아들은 아버지의 도움 없이 사업장에서 활개를 치며 사업을 키웠다. 반면, 아버지는 어둑한 골방에서 아들을 향한 초록 괴물(질투)를 키웠다. 그ㅡ러니 아버지는 무슨 꼬투리라도 잡아 현상을 왜곡해 말한다. 페테르부르크에 있는 친구에게 편지를 썼다고 하자 아버지는 "나를 속이지 말아라. 너 정말 페테르부르크에 그런 친구가 있느냐?"(p.87)라는 말을 한다. 아버지는 아들을 떠본다. 게오르크는 당황한다. 자신의 친구를 아버지는 못마땅해했다. 그래서 친구를 집에 데려왔을 때 없는 척한 적도 있었다. 


"너 정말 페테르부르크에 그런 친구가 있느냐?"(p.87)는 말은 친구의 실존 여부일 수 있지만 은유적으로는 아버지는 자신의 친구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말이 된다. 아버지는 "너는 페테르부르크에 친구가 없어"(p.88)라고 하자 게오르크는 아버지에게 친구를 상기시켜준다. "아버지께서 그를 별로 탐탁해하지 않으셨던 것도 기억이 나는데요."(p.88)라며. 그리고 아버지가 그 친구랑 이야기 했던 일도 있지 않았냐며 되묻는다. "예를 들면 사업상의 여행 중 폭동이 일어난 키예프의 어느 발코니에서 한 성직자가 손바닥에 넓게 피의 십자가를 새겨 그 손을 들어 군중을 부르는 것을 보았다는 따위의 이야기를 말입니다."(p.89) 아버지는 이 친구의 이야기를 "여기저기서 되풀이하셨잖아요."(p.89)라며. 


  그러나 아들은 친구보다 아버지를 더 소중하게 생각한다고 언급한다. "친구 천 명이 아버지를 대신하지는 못합니다."(p.87)라며. 그리고 아버지께 긴 이야기를 한다. 사업이 건강을 해칠 수 있다, 어둠 속에 앉아 있지 말고 볕을 쐬라, 신선한 공기를 마셔야 한다, 의사를 불러오겠다, 아버지와 방을 바꾸겠다 등등. 자신이 얼마나 아버지를 생각하고 있는지 증명한다. 


  게오르크는 아버지를 침대에 눕히며 "그렇잖아요. 그 친구가 벌써 기억나셨죠?"(p.89)라며 확인시켜준다. 아버지는 침대에 눕더니 "나는 네 친구를 잘 알고 있다. 그 아이가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일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너는 그 아이를 여러 해를 두고 온통 속이기도 했다."(p.90)한다. 그러더니 "너는 그 애를 억눌렀다, 너무도 억눌렀어, 네 엉덩이로 그 애를 깔고 앉아 그 애가 꼼짝달싹을 못하도록, 그래 놓고도 우리 아드님께서는 결혼을 결심하셨지!"(p.90)라고 한다. 


  네가 그 아이에게 편지를 보낼 때 자신도 보냈다고 주장한다. 그 아이는 이미 네가 약혼했다는 것도 알고 있다고 말한다. 아버지는 "그 아이는 이미 다 알고 있단 말이다. 어리석은 놈아! 그는 다 알고 있어! 내가 그 애한테 썼단 말이다. 네가 필기도구를 뺏는 것은 잊어버렸기 때문이지. 그래서 그 애는 벌써 몇 년 전부터 오지 않는 거다. 그 애가 모든 것을 너 자신보다 백 배는 더 잘 알고 있거든. 네 편지는 읽지도 않은 채 왼손에 구겨 들고 오른손으로는 내 편지를 읽으려고 앞에 받들어 모시고 있단 말이다!"(p.93)


  이 말을 들은 게오르는 아버지를 두고 광대라고 생각한다. 아버지는 자신의 친구와 '멋지게 결합되어'(p.92) 있었다. 아버지는 자신에게 있는 걸 모두 빼앗으려 한다. 자신은 친구를 염려하고 생각해서 약혼 이야기도 하기 어려워 고향 소식을 전할 때 사업 일은 가급적 쓰지 않고, 일상만을 나눴다. 사업 이야기, 약혼 이야기는 쓰지 않았다. 자신의 사업이 커갈 때 게오르그는 러시아에서 사업하는 친구의 몰락을 염두하고 있었다.  '친구는 이러한 변화는 꿈에도 모르고 있었다.'(p.82) 게오르크는 이렇게 알고 있었다. 친구를 생각해서 '친구에게 곧이곧대로의 전달을 그에게는 할 수 없었다.'(p.81)


  그러나 아버지는 자신의 상황을 모두 친구에게 전했다. 친구의 입장에서 보면 고향 소식을 게오르크와 그의 아버지 둘에게 동시에 받은 상황이 된다. 게오르크는 이제 결심하고 약혼녀에게 의논까지 하며 편지를 썼는데 아버지는 친구와 그동안 내통(?)하고 있었다.   


   소설은 다각도로 읽힌다. 친구가 가상의 인물(?)인지, 아버지의 말이 거짓인지, 아들의 말이 거짓인지 모호하게 펼쳐진다. 친구의 '실종'은 은유적으로 읽으면 게오르그는 친구와 편지왕래를 했고, 지금은 친구가 실종된 상태가 된다. 이것도 아버지는 알고 있다. 그런데 너는 왜 러시아에 있는 친구에게, 실종된 친구에게 편지를 쓴다고 거짓말을 하느냐라고 들린다. 어쩌면 화자는 친구 편지를 빌미로 아버지에게 결혼을 선전포고하는 것일지 모른다. 약혼하고 결혼까지 못 간 프란츠 카프카. 소설에서도 결혼은 완성되지 못한다. 


  아버지는 자신이 알고 있는 진실(?)과 감정을 말하더니 "너는 본디 순진무구한 아이였지, 그러나 근본을 보면 너는 악마 같은 인간이었어!--그러니 명심하거라! 내가 너를 지금 익사형에  처하노라!"(p.94)한다. 자신의 아들에게 익사형을 판결하는 아버지. 아버지에게 이 말을 들은 게오르크는 어떤 심정일까. 익사형에 대한 판결문은 이렇다.


  "어머니는 세상을 버려야 했고 경사스러운 날은 겪어보지도 못했다. 친구는 러시아에서 몰락하고 있다, 이미 삼 년 전에 그는 내던져버릴 만큼 얼굴이 노오래져 있었다. 그리고 나, 나의 형편이 어떤지는 너도 보았지. 그런 걸 보라고 눈이 달렸을 테니!"


"그러니까 아버지는 숨어서 몰래 저의 동정을 살피고 있었군요!"(p.94)


  게오르크는 아버지의 판결을 감행한다. 강물에 뛰어들며 '부모님, 저는 당신들을 그래도 언제나 사랑했었답니다.'(p.95)라고 말한다. 이 말은 진심이었을 것이다. 왜냐면 자신이 죽기 전에 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익사형'을 내리는 아버지는 어떤 자격으로 그런 판결을 내릴까. 아버지는 신이 아닌데 말이다. 아버지는 아들을 죽도록 미워했다. 아버지가 생각하는 아들과 제3자가 본 아들은 다르다. 


  소설에서 드러난 게오르크는 섬세하고 유능하다. 사업도 잘하고, 약혼녀와 결혼하면 아버지를 잘 보살피려 했다. 러시아에서 사업으로 어려운 지금은 실종(?)된 친구를 염려한다. 친구에게 자신의 상황을 자랑하지도 않는다. 친구가 자신의 처지를 비관할까 약혼소식도 제대로 알리지 못하는 심성을 가졌다. 


  아버지의 판결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뛰어내리는 게오르크의 행동은 당황스럽다. 멍한 결말이다. 뛰어내리기 전 게오르크는 혀를 깨물었다. '그 해를 알아차리고 혀를 깨물어-- 두 눈이 굳어졌다--그는 아픔으로 허리를 꺾었으나 너무 늦었을 뿐이었다.'(p.92) 게오르크는 아버지와 설전에서 이미 혀를 깨물었다. 이후 아버지와 친구의 관계가 밝혀졌고, 아버지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았고, 아버지에게 악마 같다는 소리도 들었으니... 익사형을 내렸을 때 죽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서 서슴없이 양친의 자랑이었던 '체조선수가 되어'(p.94) 난간으로 몸을 날린다. 슬프지만 게오르크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다. 아버지께 보란 듯이 자신의 죽음을 멋지게 보여주고 있다. "아버지 이만하면 되었나요?"라고 말하는 것처럼. 통쾌한 복수처럼.


  카프카는 이 소설을 쓰고 친구이자 편집자인 막스 브로트와의 대화에서 결말에 대해 “자네는 마지막 문장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는가? 나는 강력한 사정(射精)을 생각했다”(출처:카프카의 인류타락 신화 수용과 형상화 -작품<선고>를 중심으로, 권혁준/서울대)고 말했다고 한다. 세상에 사정과도 같은 카타르시스라니... 프란츠 카프카는 참 얄궂다. 몇 장 안되는 소설로 여러 사람들을 들볶고 있다. 역시 난해하다. 이 작품도 '카프카적'이다. 






발췌



-그래서 게오르크는 친구에게 언제나 한가한 어느 일요일 곰곰이 생각해 보면 기억 속에 두서없이 쌓여 있는 것 같은 별 뜻 없는 사건들에 대해서만 쓰고 말았다. 다름이 아니라, 그는 친구가 그 긴 시간 동안 고향에 대해 가졌을지도 모르는, 일단 그것으로 만족하고 있는 심상을 흐리지 말고 놔두고 싶었을 따름이었다. (p.32)


-“아시잖아요, 아버지, 처음에는 그 친구한테 제 약혼을 숨기려 했던 것 아시지요. 신중을 기한 것이지요, 다른 이유는 아무것도 없어요. 아버지도 아시지요. 그 친구는 어려운 사람입니다. 혼자서 생각했지요, 다른 데서 제 약혼 얘기를 들을지도 모르겠다고요, 그렇게 외롭게 살고 있으니 거의 그럴 리야 없겠지만서도요—제가 막을 수는 없지요— 그래도 한번은 저한테서 직접 들어야지요.”(p.86)


-마침내 그 편지를 호주머니에 넣고 자기 방을 나와 짧은 복도를 가로질러 벌써 여러 달째 출입하지 않았던 아버지의 방으로 갔다. 여느 때 굳이 아버지 방에 들어갈 일은 없었다. 아버지와 가게에서 끊임없이 접촉이 있었으니까, 점심은 그들 부자가 한 식당에서 같은 시간에 들었고 저녁은 각자가 자기 편한 대로 차려먹기는 하나 그런 다음에는 게오르크가 전에 번번히 그랬듯 친구들과 어울리거나 이즈음 들어 그러듯 약혼녀를 찾아가는 일이 없을 때면, 각자가 자기 신문을 들고 함게 사용하는 거실에 잠시 더 앉아 있곤 했었다. (p.84)


 -“아, 게오르크구나” 아버지가 얼른 일어나 맞으셨다. 아버지의 무거운 가운이 걷는 중에 열려 양끝이 주위에서 펄럭였다. ‘우리 아버지는 여전히 거인이구나’ 게오르크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러고 나서는 “여기는 참 견딜 수 없게 어둡군요”했다. “그래, 어둡긴 어둡지” 아버지가 대답했다. “창문도 닫으셨군요.” “그러는 게 더 낫더라” “바깥은 아주 따뜻해요” 게오르크는 후세인(後世人)이 전시대 사람에게 말하듯 대꾸하며 앉았다. (p.85)



현대문학 샘들과 '고래책방'에서 카프카를~읽다. 




독서토론모임 '샛별BOOK연구소'

샛별BOOK연구소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













작가의 이전글 [겨울밤+낭독여행] 손보미 <사랑의 꿈> 중 <불장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