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과 재혼이라는 용기
“언니 오랜만이야. 밥 한 끼 같이 먹을 수 있어?”
“그러자. 얼굴 본 지 오래됐네.”
학교 후배인 K에게 얼마 전 연락이 왔다. 연락이 끊긴지 적어도 3년은 됐던터라 사실 조금 껄끄러웠다. 코로나 시국에 얼굴 못 본 때는 세지 않는다 쳐도, 그전부터 연락이 뜸해졌기 때문이다. 우리가 얼마나 친했는데. 그리고 결혼식에 꽤 통 크게 축의까지 했는데, 일언반구 연락이 없었다니. 잇속을 따지는 스스로에 대한 환멸과 K에 대한 서운함이 공존했지만 그래도 그녀의 안부가 궁금했다.
K와 둘이 만나기엔 큰 용기가 필요해서 쉽게 만나자는 말을 하기가 어려웠다. 마침 대학 시절같이 친했던 지인의 청첩장 모임이 있었고, 그곳에서 K를 만났다. 다들 자신의 안부를 주고받으며 목소리를 높여가던 가운데, 그녀는 내 옆자리에 앉아 그간 미안했다며 목이 메는 듯 물을 마시기 시작했다. 너도 알긴 아는구나. 나한테 분명 서운하게 행동 했다는걸.
“잘 지냈니?”
“아니. 잘 못 지냈어. 나 그 사이에 이혼했거든.”
헐. 세상이 문득 고요해지는 듯한 생각지도 못한 답변이 들려왔다. 그리고 동시에 알게 됐다. 곧 새로운 사람과 결혼한다는 사실을. K의 결혼식은 약 한 달 뒤라고 했다. 그렇게 난 그녀의 두 번째 청첩장을 받았다.
지옥 같았던 일상과
사라지지 않는 그날의 악몽
K는 몇 년 간 진흙탕을 뒹구는 것 같았던 일상을 꽤 담담히 얘기했다.
“난 사실, 부모님이 너무 잘 지내셔서 결혼 자체에 부푼 꿈이 있었어. 보기에도 좋은 사람이었잖아. 행복하게 살 줄 알았어. 근데 생각보다 보이는 게 다는 아니더라.”
그녀의 이야기는 사정상 글에 다 옮길 수는 없지만, 이혼의 내막은 듣는 것보다 더 충격적이었다. 그 과정에서 양가 모두와 주고받은 모진 말은 곧 결혼에 관계한 모든 이에게 큰 상처가 됐다며 K는 씁쓸하게 울 듯 말 듯 한 표정을 지었다.
“언니 정말 미안해. 너무 힘들어서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았어.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아프게 하더라고. 사람들 시선도 두려워서 퇴사했는데, 난 그나마 나은 편이었어. 적어도 지금 살아있잖아.”
‘실패자’ 낙인을 스스로 찍어낸 것인지, 극도로 심한 스트레스는 곧 그녀의 몸과 마음을 병들게 했던 것 같았다. 지금은 쾌유한 상황. 힘든 시간을 보내다 이제야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는 K의 손을 그저 잡아줄 수밖에 없었다.
“미안해서 말하기 민망한데, 언니 내 결혼식 와줄 수 있어?”
“초대해 주면 당연히 가지. 해외라도 갈 거야.”
우리 두 사람만의 회포를 푼 뒤 며칠 뒤, 그녀에게서 ‘와주지 않아도 진심으로 괜찮다’며, 온 마음 다해 다시 한번 미안했다는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어느 때보다도 화려한 웨딩 사진. 모바일 청첩장에 담긴 사진 속 K는 행복해 보였다.
나는 가지고 있는 것 중 가장 좋은 옷을 입고 결혼식에 참석했다. K와 그 옆자리에 선 신랑 모두 눈물을 흘리던 몇몇 장면을 머릿속에 남기고 축하한다는 말만 빠르게 전하고 식장을 빠져나왔다.
새로이 용기 내는 그들을 응원한다
몇 년 전, 그리고 요즘 ‘돌싱’ 키워드는 뜨겁게 타오르는 주제 중 하나가 됐다. 이유가 무엇이 됐든 돌아온 이에 대한 관심. 그리고 매스컴에서 그럴 수도 있다는 진심 어린 위로와 격려를 보며, 나 자신도 충분히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한편 ‘왜 이혼했을까?’ ‘그럴 만했을지도 몰라’하는 나쁜 생각을 동시에 가지게 되는 이중적인 태도가 참 무서웠다.
사실 결혼해서 조용히 사는 이들도 많지만, 이혼한다는 건 현재 삶을 일시 중지하고 재시작 하겠다는 큰 용기에서 시작된다. 거기에 또다시 결혼을 한다는 건 그만큼 사람과 사랑을 굳세게 믿는 용기까지 더해지는 것 아닌가. 사람과 사랑을 다시 한번 믿어보겠다는 그들의 순수한 마음을 절하하지는 말자. 그저 조용히 시작하는 두 인연을 축하해 주는 것만으로도 모자라다.
친구의 아픔이 조용히 치유되어 행복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