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무비 패스#6
*스포일러와 영화에 대한 지극히 주관적인 해석이 있습니다.
**[브런치 무비 패스]의 후원을 받아 관람한 후기입니다.
처음 <파리의 딜릴리> 포스터를 보고 아름다운 동화인 줄 알았다. 예고편을 보고 나선 아름다운 동화에 모험을 더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영화를 보고 나니, <파리의 딜릴리>는 상상 그 이상이었다.
딜릴리, 꼬마라고 무시하면 안 되겠구나.
<파리의 딜릴리>는 우리나라에서 <프린스 앤 프린세스>(2001)라는 실루엣 애니메이션으로 유명한 미셸 오슬로 감독의 영화다. 그가 이번에는 자신의 작품 인생 최초로 아름다운 예술의 도시 '파리'를 배경으로 영화를 제작했다.
"그곳은 햇빛 아래에서 더 빛나고 거기서 나오는 부조화가 더 아름답다"는 그의 말처럼 도시 파리에 대한 찬사와 아름다움으로 <파리 딜릴리>의 시작점을 밝혔다.
이처럼 예술의 도시 파리를 스크린으로 옮기며 완벽한 미장센을 위해 감독은 부단히도 노력했다. 그는 영화의 생동감을 위해 애니메이션 최초로 사진 기법을 활용했다고 한다. 직접 파리를 돌아다니며 4년 동안 건축물과 거리, 하수도까지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그 사진 위에 다시 그림을 그리는 방법을 통해 영화의 배경인 파리를 매우 아름답고 현실적으로 표현했다. 영화 속 배경은 그 어느 것도 19세기가 아닌 것이 없었다.
그에 비해 극 중 딜릴리를 비롯한 파리를 빚낸 수많은 예술가들은 모두 손으로 그림을 그렸지만, 실제와 유사한 배경 앞에 전혀 이질감이 없도록 정성을 다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캐릭터들 모두가 매우 역동적으로 살아있다고 느껴졌다. 그래픽은 물론, 캐릭터들의 성격도 매우 톡톡 튀고 입체적이다.
주인공 딜릴리만 봐도 그렇다. 딜릴리가 그의 친구인 배달부 오렐과 함께 파리를 누비고 다니며 영화의 가장 중심 사건인 마스터맨의 아이 납치극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꼬마라고 무시했다간 큰 코 다칠만한 용기와 정의가 극을 이끌고 나간다. 그리고 그런 성격이 딜릴리의 표정과 행동에 고스란히 잘 담겨있다.
이렇게 정성스러운 2D와 3D 기법을 통해 미셸 오슬로 감독은 현대 관객들에게 그 당시 파리의 '벨 에포크', 가장 풍요로운 예술의 전성기이자 아름다웠던 그 날을 아낌없이 재현하고 있다.
<파리의 딜리리>는 이렇게 입체적이고 아름다운 배경과 캐릭터를 통해 당시 벨 에포크 시대의 파리를 훌륭하게 재현했다. 마치 내가 파리 여행을 하고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였다.
그렇다면 파리의 '좋은 시대'이자 풍요로운 예술의 전성기인 벨 에포크는 어땠을까. <파리의 딜릴리>는 아주 친절하고 상세하게 벨 에포크의 파리를 보여준다.
딜릴리가 그의 친구인 배달부 오렐과 함께 자전거 마차를 타며 지나가며 보이는 모든 것들이 벨 에포크이다. 개선문과 에펠탑, 물랑루즈 극장, 각종 화려한 미술품과 그걸 그린 수많은 예술가들이 극 내내 출현한다. 영화를 보다 보면 내가 아는 건축물과 작품이 나오면 괜스레 반갑기까지 하다.
그리고 이 영화가 더 흥미로웠던 점은 바로 이 예술가들의 활용이다. 단순히 예술 다큐 영화처럼 작품과 예술가들을 소개하는 게 아니라, 예술가들이 마스터맨의 납치극을 푸는데 단서들을 제공한다.
피카소, 로댕, 모네 등 아름다운 작품을 탄생시킨 화가와 조각가들은 물론, 에펠, 퀴리부인, 파스퇴르 등 각 분야에서 한 획을 그은 유명인사들까지 총 100여 명이 넘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이것 만으로도 보는 재미가 쏠쏠한데 그들이 직접 사건에 관여하거나 혹은 우연히 목격한 것들을 딜릴리와 오렐에게 알려주며 감독은 그들을 좀 더 입체적이고 친근하게 표현했다.
<파리의 딜릴리>는 이렇게 가장 풍요롭고 행복한 파리의 벨 에포크 시대를 직접적으로 그리고 입체적으로 배치한다. 예술과 문화가 번창하고, 거리에는 모두 우아한 복장과 갖춰 입은 신사와 숙녀들이 돌아다닌다. 건물에 붙어 있는 장식과 내부의 인테리어 장식 하나하나가 모두 19세기의 벨 에포크다.
딜릴리와 오렐이 풀어가는 마스터맨의 납치극도 영화의 중요한 사건이지만, 미셸 오슬로가 탄생한 19세기 파리의 벨 에포크를 구경하는 것도 이 영화에서 절대 놓쳐선 안될 포인트라고 생각한다.
사실 이 영화가 딜릴리와 오렐이 마스터맨의 납치 사건만 푸는 데 중점을 맞췄다면 파리를 배경으로 한 아름다운 한 편의 동화와 모험극에 그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미셸 오슬로는 늘 그렇듯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영화를 통해 인권과 같은 사회 문제를 지적한다. 그리고 <파리의 딜릴리>를 통해 이번엔 그가 여성 인권 문제에 목소리를 내놓는다.
사실 포스터만 보고 나와 같은 생각을 한 사람이 몇 명 있을 것 같다. 백인들 사이에 피부색이 좀 다른 여자아이가 떡하니 자리 잡고 있다. 아프리카인인가? 그렇게 거기서부터 우리의 편견과 차별이 시작된다. 부끄럽지만 그렇다.
<파리의 딜릴리>는 가볍게 영화 초반부터 인종 문제에 대해 언급한다. 딜릴리는 파리 내에 있는 인간 박물관에서 등장한다. 굉장히 쇼킹한 등장이었다. 딜릴리는 19세기 파리의 인간 박물관에서 백인들을 상대로 다른 인종들의 삶은 어떤지 보여주는 일을 하고 있었다. 말 그대로 '일'이었다.
딜릴리는 일이 끝나면 말끔하게 갖춰 입은 옷을 입고 마차를 타고 퇴근한다. 파리에서 백인이 아닌 다른 사람의 삶은 모두 빈곤하고 불행할 것이라는 걸 단박에 뒤집는다.
심지어 딜릴리는 카나키인이다. 아프리카인이 아니며 카나키인들 중에서도 피부가 밝은 편이다. 그녀의 부모 중 한 명이 프랑스인인데 딜릴리는 자신이 운 좋게 파리 백작 부인을 만나 교육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바라보는 편견과 차별의 시선에 딜릴리는 대수롭지 않게 응대한다. 괜찮냐고 묻는 오렐에게 "괜찮아. 덕분에 누가 바보인지 금방 알아낼 수 있으니깐."이라고 당차게 대답한다.
영화를 보면 마스터맨의 납치극이 특정 대상을 향해있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다. 그리고 딜릴리와 오렐이 발견한 그들의 참혹한 사건은 가히 충격적이다.
오직 여성만을 상대로 한 납치극은 남성 우월주의에 젖은 마스터맨의 대장과 그를 따르는 무리가 벌인 일이었다. 그들은 지하에서 온 몸에 검은 천을 두르고 오직 '네 발'로 기어 다닌다. 납치된 여성들에게 두 발이라는 기본적이고 당연한 권리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미셸 오슬러는 이렇게 여성이 지하에서 그리고 네 발로 기어 다니는 모습을 보여주며 파리의 아름다움 이면에 숨은 여성의 인권에 대해 얘기한다. 사실 현대에 와서도 네 발보다는 나아졌지만 여전히 여성에 대한 차별과 무시는 여전하다. 그리고 미셸 오슬러는 그러한 문제의식을 과거에서부터 끌어와 현재에도 과감히 드러내고 있다.
마치 여성에 대한 잘못된 인식과 차별이 19세기를 넘어 21세기인 지금은 과연 어떤지 물어보는 것처럼 말이다.
<파리의 딜릴리>는 남성 우월주의가 가득했던 그때, 여성이자 그것도 차별받는 카나키인 딜릴리를 전면에 앞세워 사건을 해결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아름다운 미장센과 나름 훈훈한 결말로 희망적인 메시지도 전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전체관람가이긴 하지만 아이들이 보기엔 조금 기괴하고 깜짝 놀랄 장면들이 나오는데 이걸 소화할 수 있을지가 궁금하다. 심지어 프랑스 영화답게 대사량도 많다.
물론 아이들이 못 볼 영화는 아니다. 오히려 가족들이 함께 가서 파리의 19세기 벨 에포크를 간접적으로 하지만 입체적으로 느끼고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는 작품이다. 심지어 아이들이 교과서나 책에서만 접하던 유명 인물들이 나오니 교육적으로도 좋은 영화라고 본다.
딜릴리와 오렐, 그리고 그들을 돕는 착하고 재밌는 인물들 덕분에 영화 자체가 무겁진 않다. 오히려 그런 인물들이 귀엽게 느껴질 정도이다. 하지만 딜릴리와 친구들이 헤쳐나가는 사건과 그들을 둘러싼 19세기의 파리는 아름답고 멋진 벨 에포크의 이면에 담긴 어둠과 문제들을 과감 없이 끌어올렸다. 그리고 관객들의 마음과 머릿속에 상당히 꽤 깊게 여운을 남긴다. 적어도 나에겐 그랬다.
가장 아름다웠다고 하는 19세기 파리를 담은 한 편의 아름다운 동화이자 딜릴리라는 작은 소녀가 펼치는 모험극. 거기에 미셸 오슬러의 확고한 주제 의식까지 더한 <파리의 딜릴리>.
1시간 30분이 금방 지나갈 정도로 볼거리와 생각할 거리가 넘쳐난 한 편의 예술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