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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트루 May 28. 2019

학교라고 쓰고 사회라고 읽는다

브런치 패스. 연극 <어나더 컨트리>

*브런치 패스의 후원을 받아 관람한 후기입니다.

**지극히 주관적인 해석이 들어있으며 약간의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인싸와 아싸. 

요즘 우리 사회에서 흔히 유행을 선도하고 무리에 잘 섞여 노는 잘 나가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을 나누는 말로 인싸(insider)와 아싸(outsider)로 표현한다. 젊은 층들의 신조어지만 이젠 TV나 라디오에서도 흔하게 접할 수 있는 단어다.

이렇게 사회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편을 나눈다. 그리고 인싸에 속한 사람들은 그들 스스로 만족해하며 자신이 아싸 보다 더 나은 위치에 있다고 자부한다. 


학교도 그렇다. 똑같은 교복을 입은 학생이지만 그 안에서도 이미 서열은 나뉘어 있다. 권력을 잡은 자와 그렇지 못한 자. 그리고 사회에서 못지않은 치열한 권력 싸움과 배신, 처벌 그리고 동맹이 학교 안에서 이뤄진다.

특히 학교 기숙사는 어떤 무언가가 발생하기에 더없이 매력적인 곳이다. 규율과 탈선, 그 모든 것이 공존한다. 

1930년대 영국의 명문 공립학교의 기숙사를 배경으로 한 <어나더 컨트리>가 그렇다.



게스코인 기숙사, 또 다른 사회이자 권력 구조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학교라고 하기엔 조금 분위기가 다르다.

학생들이 생각하는 게 마냥 어리지만은 않다. 단순히 학교 성적과 시험을 걱정하는 게 아니라 자신들의 미래와 정치적 사상 그리고 권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고민한다.


영국의 명문 공립학교라는 점을 비추어 볼 때, 여기 나오는 학생들은 좋은 사회적 지위의 가문에서 태어나 영국에서 최상의 교육을 받고 미래 또한 탄탄대로가 보장된 학생들이다. 그들은 서로 기숙사장이 되려고 하고 선도부와 같은 프리펙트를 지원하며 총 학생 중 단 22명만 가입할 수 있는 트웬티투를 꿈꾼다. 그리고 그렇게 권력을 잡은 자가 학생을 지배하고 다스린다. 


엄격한 규율과 첨예한 권력구조의 최상위 그룹인 ‘트웬티투’와 ‘프리펙트’. 게스코인 기숙사는 이렇게 사회와 같지만 학교와 기숙사라는 다른 형상으로 지배 권력을 형성한다.

그리고 권력을 가진 지배자들은 나머지 학생들에게 그들이 정해놓은 규칙 안에서 행동하도록 강요한다. 학교와 기숙사의 규율을 만드는 트웬티투와 그 규율을 지키는지 감시하는 선도부인 프리펙트의 조합. 군대라고 해도 믿을 만큼 실제로 군복을 입고 돌아다니는 프리펙트 중 한 명인 파울러는 매우 엄격하다. 

이 규율과 체제 속에서 학생들은 저마다의 자유를 침해받기도 하고 권력에 짓눌려 어깨를 내리고 다닌다. 특히 하급생이 상급생을 위해 존재하는 듯이 하인처럼 행동하고 주눅 들어 있는 모습은 학교 폭력을 규율이란 이름으로 위장한 것으로 밖엔 보이지 않을 정도이다.


그리고 권력을 가진 지배자가 만든 규율에서 조금이라도 어긋나거나 그에 반하는 학생들은 사라진다. 연극 초반 게스코인 기숙사의 한 남학생이 다른 남학생과 부적절한 행위를 했다고 소문이 난다. 그 남학생은 온갖 질타와 눈초리를 받고 징계를 받는다. 다음 날, 그 소문의 학생은 이를 버티지 못하고 목을 메어 자살한다. 그리고 그에 분개하는 프리펙트와 오직 학교와 자신들의 입지를 걱정하는 트웬티투.

그들에게 규율을 벗어난 학생의 결과엔 위로와 애도 따윈 없다. 오직 비난과 처벌뿐이다.


그렇게 <어나더 컨트리>의 게스코인 기숙사에선 학생들을 군림하는 지배자와 그들의 눈 밖에 나지 않으려는 학생들로 나뉜다. 이 작은 학교, 기숙사 안에서 그들은 그들만의 사회를 만든다.


많은 신인 배우 캐스팅으로 주목을 끌은 <어나더 컨트리>



다양한 사상, 가치관의 선택


<어나더 컨트리>는 연극 제목 그대로 다른 나라 혹은 다른 세상을 꿈꾸는 두 청년의 이상과 꿈, 그리고 좌절을 중심으로 그렸다.


연극의 처음과 끝을 장식하는 '가이 베넷'은 극 중 인물 중 가장 유쾌하며 쾌락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리고 지배받는 건 싫어하고 또 지배하는 건 좋아한다. 그래서인지 이 유별난 가이 베넷은 트웬티투와 프리펙트 같은 계급과 권위적인 집단이 유일하게 벼르고 있는 대표적인 학생이다. 가이 베넷은 옆 기숙사 남학생을 흠모하는데 결국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깨닫게 된다. 그렇게 토미 저드의 염려를 뒤로하고 선도부의 시선을 피해 남학생과의 만남을 이어간다. 


가이 베넷과 극 중에서 가장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실제로 가장 다른 성격과 이념을 보인 '토미 저드'는 확고한 마르크스 주의자이다. 혁명적인 사상가인 그는 자유로운 영혼인 가이 베넷과 다른 듯 같은 듯 대립된 이견으로 논쟁을 벌이다가도 가이 베넷을 위해 마지못해 투웬티투에 들어가려고 하는 우정을 보여주기도 한다. 


하지만 가이 베넷이 몰래 남학생을 만나고 그가 동성애자임이 트웬티투와 프리펙트의 귀에 들어가게 된다. 그는 결국 체벌 6대라는 처벌을 받게 된다. 그로 인해 가이 베넷은 남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배척당하고 처벌받은 자신을 보며 권력과 지배에 대해 다른 생각을 하게 된다. 

그렇게 토미 저드를 찾아간 가이 베넷은 자신의 고충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가이 베넷과 토미 저드는 대립되는 신념을 보여준다. 

'체제에 순응하든지 바꾸려고 노력하든지 둘 중 하나야. 다른 건 없어.'라고 말하는 진취적 성향의 토미 저드에 비해 '체제에 순응하는 척하면서 바꾸려고 노력하면 안 돼?'라고 말하는 가이 베넷. 

결국 그 둘은 전혀 다른 길을 가게 된다. 가이 베넷은 영국 정보부에서 근무하는 스파이가 되고 토미 저드는 그의 사상과 신념, 그리고 성격대로 스페인 내전에서 맞서 싸우다 22살에 전사한다. 


<어나더 컨트리> 영화도 있다. 콜린 퍼스가 토미 저드 역할을 맡았다.


물론 아쉬움도 있다.

가이 베넷이라고 하는 인물이 토미 저드에 비해서 입체적이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학교 안에서도 자신의 특권은 모두 누리고자 했던 그가 영국의 스파이가 된 부분은 연극에서 깊이 다루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뭔가 휙, 빠르게 지나간 느낌이랄까. 학교에서 주류에 있던 그가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비주류가 되어 스파이가 되었다. 물론 그것도 가이 베넷의 선택이지만 관객들과 함께하는 연극에선 조금 불친절한 극 구성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토미 저드가 관객들에게 있어 좀 더 융통성 있고 매력적인 캐릭터로 다가오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이 핵심 두 인물 외에도 저마다 학생들은 자신의 이념과 사상을 가지고 있다. 가이 베넷과 토미 저드를 제외하고 대략 9명의 흥미로운 인물들이 등장한다. 군림받고 싶진 않지만 그렇다고 군림하고 싶지 않아 하는 인물, 야망이 매우 커 정치질을 밥 먹듯이 하는 인물, 인간은 체벌과 규율 아래 존재해야 한다고 믿는 인물 등 다양한 사상과 가치관을 가진 인물들이 극을 구성한다.


무엇을 믿고 무엇을 선택하든 개인의 자유이다. 그것을 각각의 인물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어떻게 학교라는 사회 안에서 풀어가고 있는지 그들의 대사를 집중해서 잘 들어보길 바란다. 나이는 학생이지만 생각은 학생 같지 않은 그들의 사상과 가치관을 유심 있게 들어보는 것도 연극 <어나더 컨트리>가 주는 재미라고 생각한다.



1930년대 영국 학교 기숙사를 넘어 2019년 전 세계로


지리적으로, 시대적으로 그리고 문화적으로도 굉장히 먼 나라의 이야기지만 영국이 좀 더 빨랐을 뿐, 한국이 결코 느린 건 아니다.

학생들끼리 서열을 나누고 지배자와 피지배자가 존재하는 학교라는 사회는 이미 우리 한국에도 만연하다. 하급생이 상급생에게 예의를 지키고 그들의 편의를 도우는 게 어떻게 잘 포장하면 훈훈한 학급 교우 관계지만, 까놓고 보면 절대 아니다. 잘 포장된 학교 폭력으로 드러나는 경우가 수두룩하다.

체벌도 마찬가지다. 일정한 교육 목적으로 학교나 가정에서 아동 및 학생에게 이뤄지는 징계라고는 하지만, 이것도 폭력이다. 고통을 줌으로써 잘못을 반성하고 뉘우치길 바라는 그 모든 것들은 지배자가 만든 규율 속에서 존재한다.

<어나더 컨트리> 속 체벌과 징계. 트웬티투와 프리펙터가 만든 규율 속에서 피지배자인 학생들은 그들의 눈 밖에 나지 않기 위해 자신들이 옳아도 이를 숨겨야 한다. 그렇게 개인의 자유와 선택은 철저히 규제당한다.


사회도 마찬가지다. 우리 눈에 명백하게 보이진 않지만 느껴지는 계급사회는 규칙과 규율을 선포한다. 

시작은 같았어도 서로 다른 사상과 이념이 부딪히면 먼저 우위를 잡은 자가 지배자가 된다. 그리고 지배자의 세상이 곧 메이저의 세상이 된다. 그렇게 계급은 생겨나고 누군가는 감시하고 규제하며 누군가는 징계받고 또 다른 세상과 자유를 꿈꾼다. 

그리고 나로 하여금 개인의 주관적인 선택과 사상, 혹은 소수의 삶은 비이성적이고 올바르지 않은 건가? 에 대한 질문을 끊임없이 하게 만든다. 그리고 자신들이 옳다고 주장하는 지배자들의 위선을 보며 때론 실소하기도 한다.

이러한 문제와 질문들은 한국뿐만 아니라 어느 곳에나 존재한다. 그리고 아직도 우리는 더 나은 세상을 만들겠다는 취지 아래 서로 다른 이념으로 싸우고 있다. 



<어나더 컨트리>에서 학생들은 꿈이나 순수함을 보여주기보단 그들이 쌓아온 정치적인 야망과 권력에 사로잡혀 있다. 마치 사회 속 어른들의 축소판이라고 해도 될 정도이다. 그 와중에 개인의 신념과 사상이 다르다는 이유로 지배자와 메이저의 세상에서 배제당한 학생들은 상처를 입고 세상에서 사라진다.  

사회의 축소판인 학교라는 곳, 그리고 더 제한적인 기숙사라는 공간에서 그렇게 학생들은 먼저 사회를 만들고 사회를 경험한다. 아주 잔인한 방법으로 말이다.


우리는 누구나 부조리한 계급과 권력에 맞서 싸울 수 있다. 당장은 내가 초라하고 약한 것 같지만 절대로 자신의 신념을 굽혀선 안된다. 트웬티투와 프리펙터 같은 계급 집단은 학교뿐만 아니라 어디에나 존재한다. 자신의 신념과 다르다고 해서 부당한 처우를 받아서도 안되고 지배자의 규율이라고 무조건 따라서도 안된다. 

<어나더 컨트리> 속 개인의 자유와 선택을 무시당하고 배제당한 학생들이 이걸 조금만 더 먼저 알았다면 그들이 학교를 벗어나 더욱 큰 꿈을 꿀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그들이 꿈꾸는 또 다른 세상, 연극의 제목인 <어나더 컨트리>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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