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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트루 May 21. 2019

진짜 돈키호테 그 자체다. <돈키호테를 죽인 사나이>

브런치 무비 패스#5

*스포일러와 영화에 대한 지극히 주관적인 해석이 있습니다.

**[브런치 무비 패스]의 후원을 받아 관람한 후기 입니다.




영화를 한 편 봤다.
근데 난 아직도 이 영화를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분명히 재밌게 본 건 사실인데 끝나고 나오면서도 '이 영화 대체 뭐지?, 어떻게 말해야 한다'는 말만 속으로 되뇌었다.
이상한 건지, 심오한 건지 아니면 내가 제대로 이해를 못한 건지. 재밌고 인상적인데 이상하고 기괴하다.

'이 영화, 진짜 돈키호테 그 자체다'라는 말이 저절로 나오는 영화다.

<돈키호테를 죽인 사나이>, 이상하고 괴짜 같고 가끔은 골 때리지만 사랑할 수밖에 없는 그런 영화다.


시작부터 이 영화는 돈키호테다. 마치 영화 처음부터 끝까지 돈키호테에 관해 이야기할 거라는 걸 보여주기라도 하듯 주인공 토비(아담 드라이버)가 CF 촬영을 하는 모습이 나오는데 CF 내용마저도 돈키호테다. 돈키호테 하면 떠오르는 그의 시종 산초와 풍차, 그리고 상상 속 거대한 거인 모형이 등장한다. 누가 돈키호테 영화 아니랄까 봐 아주 사방이 돈키호테 투성이다.

이 영화가 실제 세상에 나오기까지 수많은 세월을 거쳤다고 한다. 1989년부터 시작된 테리 길리엄의 <돈키호테를 죽인 사나이>는 결국 30년 만에 개봉을 했다. 그래서인가, 감독의 집념이 고스란히 스며든 영화라고 느껴졌다. 마치 이 영화에서 돈키호테(조나단 프라이스)가 자신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좋게 말하면 이 영화와 돈키호테에 곱게 그리고 순수하게 미친 것 같다.    
포스터만 봐서는 영화 속 단골 소재인 타임슬립이라도 한 줄 알았다. 단순히 돈키호테가 21세기 미래로 넘어와서 현실과 과거를 넘나들며 벌이는 난동극이라도 되는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다.
오히려 우리를 과거로 데려간다. 정말 돈키호테가 온 마을을 누비며 다니던 그때, 그 상황들로 말이다.



천재 CF 감독인 토비는 보드카 광고를 위해 스페인에 왔다. 하지만 과거와 달리 매너리즘에 빠져 열정적인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그런 그를 기다리기라도 한 듯, 우연히 자신이 졸업작품으로 만들었던 <돈키호테를 죽인 사나이> DVD를 발견한다. 직접 발로 뛰며 영화 주인공들을 물색하고 캐스팅하던 그때를 떠올리며 다시 촬영 장소로 찾아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운명처럼 돈키호테 역을 맡았던 평범한 구둣방 할아버지 하비에르와 재회하게 된다.

그런데 이 할아버지, 아직도 돈키호테다. 그때 그 의상, 그 대사 그리고 그 말투 그대로 현실을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자신을 산초라고 부르며 어서 길을 떠나자고 재촉한다.


이 둘, 무사할 수 있을까?


그리고 이 영화는 정말 17세기의 돈키호테가 부활한 것처럼 말도 안 되는 상황들을 재현해내며 관객들을 현혹한다. 사실 하비에르, 즉 돈키호테만 과거에 갇혀 있을 뿐 나머지 극 중 사람들은 모두 21세기 현재를 살아간다.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오토바이를 몰며 CG에 관해 이야기한다. 그렇기에 극 중 돈키호테와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하며 볼 수 있다.


하지만 돈키호테 역을 맡은 조나단 마이어스의 연기력 때문인지 아니면 감독의 연출 때문인지 점점 영화 속 현실과 허상을 구분하기가 어려워진다. 갑자기 등장하는 거대한 거인들과 싸우는 돈키호테와 보드카 광고주인 러시아 재벌의 돈지랄에 놀아나는 광고 관계자들의 중세 연극 쇼. 영화를 보다 보면 나도 점점 이 말도 안 되는 상황들에 빠져들어 현실을 구분하는 걸 포기한다.



사실 원작 소설 <돈키호테>가 그렇다. 17세기경 스페인의 라만차 마을에 사는 한 신사가 한창 유행하던 기사 이야기를 너무 탐독한 나머지 정신 이상을 일으켜 스스로 돈키호테라 칭하게 된다. 그리고 그 마을에 사는 뚱보 농부인 산초를 시종으로 데리고 다니면서 여러 가지 모험을 겪게 되는 이야기다. 실제로 소설에서도 풍차를 거인으로 생각하고 습격하고 마술사가 있다고 믿으며 둘시네 공주라는 가상의 여인을 만들어 온 맘 다해 사랑을 고백한다. 결국에는 이성을 되찾아 돈키호테 연극을 그만하고 숨을 거둔다. 영화 속 하비에르처럼 말이다.


영화와 소설이 달라진 점을 찾으라면 토비, 즉 산초의 모습이다. 소설에선 산초가 뚱보에 머리가 약간 둔한 편이라고 하지만, 영화 속 21세기 산초인 토비는 반대다. 나름 잘 생긴 외모와 날씬한 체격 그리고 천재 CF 감독 소리를 들을 만큼 머리도 비상하다.

하지만 공통점을 찾으라면 17세기 산초와 21세기 산초 모두 돈키호테에게 꼼짝 못 한다. 특히 21세기 산초 토비는 자신이 만든 돈키호테이기에 더 뿌리칠 수가 없다.  


아직도 자신이 돈키호테라고 생각하는 하비에르를 미치광이 보듯이 바라보고, 돈키호테가 되어버린 하비에르는 유식한 척하며 토비를 무시한다. 그렇게 이 두 사람이 선보이는 불협화음은 예상치 못한 웃음을 유발해 내기도 한다.

하지만 웃음이 다는 아니다. 그 뒤에 씁쓸한 현실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토비는 부와 명예를 동시에 쥐었지만 출세를 위해 계속해서 일만 한다. 그러다 매너리즘에 빠지기도 하지만 거짓말을 하고 남을 이용하는 등 상대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 심지어 상사의 아내와 불륜 관계를 맺을 뻔하기도 하고 불이 난 마을을 뒤로 한채 도망가기 바쁘다.

그에 비해 돈키호테는 사소한 일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도우려 한다. 위기에 빠진 마을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돌진하고 오직 사랑하는 여인 둘시네를 위해 희생하고자 하는 기사도 정신이 가득 배어있다.


감독이 이 두 캐릭터를 전면에 내세워 과연 무엇이 올바른 가치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고도 볼 수 있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기, 이 상황에서 과연 필요한 자세는 무엇인지 고민하게 한다.



그렇게 돈키호테와 토비가 겪은 모든 것에는 현실의 문제점들이 곳곳에 스며들어있다. 마치 감독이 자신의 얘기라도 하는 것처럼 계속해서 무산되는 광고 촬영과 같은 엔터테이너 사업, 영화 촬영 후 남겨진 배우들의 잘못된 허상과 삶, 불법 이민자들의 비참한 삶 그리고 성적 학대 등이 영화 내내 관객들에게 보여준다.


돈키호테가 이를 직접 해결하진 않는다. 소설에서처럼 오히려 그는 때론 바보처럼 행동하고 우습게 보이며 자신을 스스로 희화화하는 것처럼 보인다. 21세기를 살아가는 탐욕적이고 이기적인 사람들에게 그의 행동과 말투는 비웃음 거리로 밖에 여겨지지 않는다.

그렇기에 우리는 더 마음이 아프다. 사람이라면 응당 지녀야 할 바르고 정상적인 사고가 오히려 무시되는 상황이 아이러니할 만큼 슬퍼진다.


<돈키호테를 죽인 사나이>는 이처럼 원작이 지닌 특별함과 유머를 현대와 결합한 영화다. 모험과 코미디, 시대극과 로맨스 그리고 전혀 다른 시대를 살아가는 과거의 남자와 현재의 남자를 통해 바라본 아프고 날카로운 현실 이 모두가 결합되어 있다.



결국 영화 제목처럼 돈키호테는 죽는다. 딱히 누가 죽였다고 말할 순 없지만 결국 돈키호테는 눈을 감는다. 하지만 다시 살아난다. 전혀 다른 모습으로, 하지만 똑같은 정신으로.

'누구 하나쯤은 제대로 된 생각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하는 나의 바람처럼 말이다.


돈키호테는 어리석고 우스우며 기이하다. 하지만 동시에 기발하며 순수하고 진지하다. 그렇게 돈키호테가 된다는 건 곧, 남들 눈에는 광인으로 비춰질 수 있지만 사실은 자신이 믿는 것을 그대로 행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사람이자 순수함을 지닌 사람으로 보인다.

남들이 아니라고 해도 내가 옳다고 하는 길을 가는 남자, 돈키호테. 아무리 고리타분하고 해묵은 것이라 해도 그 시대의 낭만을 지닌 채 외길을 가는 사람이 바로 돈키호테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오히려 그를 동경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계속해서 소설로든 뮤지컬로든 이렇게 영화로든 계속해서 우리 곁에서 살아 숨 쉬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돈키호테는 죽었지만 결국 죽지 않았다.

이 말을 이해하려면 꼭 영화를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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