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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트루 Jun 20. 2019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칠드런 액트>

브런치 무비 패스#9

*스포일러와 영화에 대한 지극히 주관적인 해석이 있습니다.
**[브런치 무비 패스]의 후원을 받아 관람한 후기입니다.




당신의 선택에 따라 인생이 변한다고 하면 기분이 어떤가. 갑자기 무엇이든 선택을 잘해야 할 것 같고 갑자기 신중해지지 않는가. 하물며 그 선택이 내 인생뿐 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인생까지 바꿔버릴 수 있다면 감히 선택을 할 수 있을까?
하지만 그녀는 오늘도 선택하고 결정해야 한다. 그 선택이 가장 최선이길 바라며.



칠드런 액트?

영화 제목 <칠드런 액트>는 1989년 제정된 영국의 유명한 '아동법(the children act)에서 따온 것이다.  아동법은 법정이 미성년자와 관련한 사건을 판결할 때 최우선적으로 '아동의 복지'를 고려해야 함을 명시하고 있다.

그리고 <칠드런 액트>의 여주인공이자 존경받는 판사 피오나(엠마 톰슨)는 치료를 거부한 소년 애덤(핀 화이트헤드)의 생사가 달린 재판을 맡게 된다. 이틀 안에 수혈을 받지 않으면 그의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피오나는 판사로써 여태껏 한 번도 하지 않은 이례적인 방법을 선택한다.



일과 사랑, 두 마리 토끼는 늘 잡기 어렵다

"아무래도 나 바람피울 것 같아" 남편 잭(스탠리 투치)이 피오나에게 말한다. 피오나는 당황스럽지만 잭은 태연하다. 마치 이 상황을 예고라도 했듯이 아주 자연스럽다.

아내 피오나와 20년 가까이 안정적인 결혼생활을 유지하며 살아온 잭은 더 이상 피오나와의 결혼생활에 자신이 없다. 일에만 빠져 부부 관계에 소홀한 아내와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수많은 대화를 시도하지만 늘 헛수고로 돌아왔다. 잠깐 혼자서 다른 삶을 상상하지만 이내 피오나와의 행복했던 시절을 그리워한다. 결국 피오나에게 선전포고를 한다.

그리고 피오나는 일생일대의 판결을 내려야 하는 동시에 남편 잭과의 관계에서 생긴 균열로 큰 혼란을 겪는다. 그리고 쉽사리 일에 집중하지 못하며 완벽주의 런던 가정법원 판사인 그녀의 삶을 뒤흔드는 파장이 시작된다.


신념과 믿음, 그리고 생명.


여호와의 증인 가족 중 외아들인 애덤은 그 역시 여호와의 증인이다. 그들에게 '피'는 단순한 몸의 일부 그 이상을 넘어 하나의 고결한 생명이자 자신들의 거룩함을 나타낸다. 수혈을 받는 것은 곧 타락을 의미하는 애덤과 그의 가족에게 더 이상의 치료는 무의미하다.


피오나는 마침 남편과의 문제로 자신이 믿어온 이성과 완벽에 혼란을 느끼며 이례적인 결정을 내린다. 피오나는 직접 행동에 나선다. 보통의 판사가 하지 않는 법원 밖을 나와 애덤을 만나러 간다. 그리고 병원에 위태롭게 누워있지만 당차게 그녀를 맞이하는 애덤을 만난다.


수혈을 통한 치료와 더 나은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그녀에게 애덤은 단호하다. 이 또한 자신이 선택한 것이라며. "우리가 믿는 진리 안에서 살고 싶을 뿐이에요"라고 말하는 애덤. 신념과 믿음 앞에 그의 생명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


하지만 피오나는 그의 신념과 믿음을 별개로 다른 것을 발견한다. 그가 기타와 시를 좋아하며 생명이 단축되는 순간에도 꿈과 낭만을 이야기하는 순수하고 맑은 영혼의 소유자임을 깨닫는다. 그리고 마침내 그녀는 결정한다. 이 소년을 살리기로.



내가 내린 선택과 결정, 과연 최선이었을까?


모든 게 잘 풀리는 듯했다. 남편과는 여전히 풀리지 않았지만 다른 법원 사건들을 맡으며 그렇게 애덤을 잊어갔다. 하지만 애덤은 피오나를 기억했다. 오히려 더욱 그녀에게 집착했다. 수혈 이후 치료를 받고 병원을 나온 애덤은 하루가 멀다 하고 피오나에게 문자메시지와 음성메시지를 보내며 그녀의 주위를 맴돌았다. 오직 애덤이 원하는 것은 그녀와의 대화였다.


하지만 피오나는 판사로서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다고 생각하며 애덤을 멀리하고 오히려 경고를 준다. 그리고 자신을 거부하는 피오나를 향해 애덤은 외친다. 그럴 거면 보통의 판사처럼 의자에 앉아 판결만 내리지 왜 자신을 찾아왔냐고. 그냥 판결만 내리지 자신의 인생에 왜 끼어들었냐고.


그리고 피오나는 자신의 선택과 결정이 정말 누구를 위한 것인지 헷갈리지 시작한다.



어쩌면 결정보단 경청이 필요했다.


애덤은 피오나를 찾아가 말했다. 어리석게 죽는 것보다 그 후에 펼쳐질 더 멋진 세상이 있는 걸 몰랐다고. 이처럼 부모의 영향으로 수혈 거부를 했던 애덤에게 새로운 세상을 알려준 건 어쩌면 피오나이다. 애덤에게 피오나는 신앙과 부모를 등지고 발견한 새로운 등불이자 지표였을지도 모른다.


그런 존재에게 거부당한 애덤. 그가 할 수 있는 마지막 선택은 암이 재발했을 때 거부나 거절 없이 의지할 수 있는 신앙뿐이었다. 그렇게 다시 수혈을 거부하는 애덤. 그리고 피오나는 그런 애덤을 찾아가 오열한다.

애덤에게 결정이 아닌 경청이 필요한 순간, 자신이 혹시 너무 이성적이었던 건 아닌지. 자신의 인생에 있어 지금껏 오직 이성적인 선택과 결정을 한 건 아닌지. 판사라는 틀과 이성이라는 굴레를 벗어나 단 한 번도 감정을 따라가 본 적은 없었던 건 아닌지.


이성과 감정의 기로에서 판사와 여자, 그리고 인간으로서 선택을 해야만 했던 피오나.

그런 피오나를 통해 올바른 신념과 또 다른 세상을 경험하려 했지만 끝내 죽음을 택한 애덤.

결국 모든 행위의 선택과 결과는 모두 본인의 몫이다.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수많은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그리고 그 선택은 우리의 지금과 내일을 단 한순간에 바꿔놓는다. 이성과 감정의 기로에 놓여 선택을 해야만 하는 순간은 반드시 찾아온다. 때로는 이성이 옳을 수도 혹은 감정이 옳을 수도 있다. 가장 확실한 건 오직 당신만이 결정할 뿐이다.


우리는 모두 바란다. 그것이 나와 우리의 최선의 선택이길.

그리고 그 선택으로 인해 다가올 결과를 받아들이고 오직 앞으로 더 나아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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