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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트루 Jul 26. 2019

비밀은 또 다른 비밀을 낳는다. <누구나 아는 비밀>

브런치 무비 패스#13

*스포일러와 영화에 대한 지극히 주관적인 해석이 있습니다.

**[브런치 무비 패스]의 후원을 받아 관람한 후기입니다.




동생의 결혼식에 초대받아 오래간만에 아이들과 함께 고향에 간 주인공.

그런데 그날 밤, 딸이 사라졌다. 믿었던 가족들마저 범인으로 의심되는 최악의 상황. 범인은 계속해서 거액의 몸값을 요구한다. 그리고 하나 둘 수면 위로 떠오르는 과거와 현재의 비밀들.

도대체 내 딸은 어디에 그리고 숨겨진 비밀들은 과연 무엇일까.



누구에게나 비밀은 있다


비밀은 조용하지만 시끄럽다. 침묵하지만 말이 많다. 그리고 그 날의 사건 이후, 가족들 간의 침묵과 비밀이 점차 입 밖으로 새어 나오기 시작한다. 모두가 알고 있는 비밀, 그 비밀이 결국 사건을 푸는 실마리가 된다.


<누구나 아는 비밀>은 영화 제목처럼 비밀이란 소재로 영화의 처음과 끝을 장식한다. 너무나도 행복해 보이는 이 가족들에게 벌어진 주인공 라우라(페넬로페 크루즈)의 딸 이레네(칼라 캄프라)의 실종 사건은 모두를 점차 비극으로 몰아넣는다. 

사라진 이레네를 찾기 위해 가족 모두가 나서게 되고 라우라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옛 연인이었던 파코(하비에르 바르뎀) 또한 솔선수범으로 이레네를 찾아다닌다.



비밀은 호기심과 의심을 불러일으킨다. 이 영화도 바로 그런 점에 주목했다고 본다. 허물없이 모든 걸 털어놓을 수 있다고 믿었던 가족 간에도 비밀은 존재한다. 그리고 아쉬가르 파라디 감독은 이렇게 인간이라면 누구나 보편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소재를 통해 한 편의 가족 스릴러를 탄생시켰다.


<누구나 아는 비밀>은 과거 무심코 저질렀던 한 일이 결국 훗날 커다란 결과가 되어 다시 돌아온다는 고전적인 설정을 스페인의 작은 시골 마을인 토레라구나와 일가족을 통해 압축적이고 날카롭게 보여준다. 실종 사건이란 소재를 가지고 납치범과 인질, 그리고 피해자들의 날 선 대립을 보여주기보다 남겨진 사람들 간의 진실과 갈등에 주목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유독 이 영화는 실종된 아이의 생사보다 풀리지 않는 비밀과 오해를 통해 과연 누가 진실을 숨기고 있는지, 진짜 범인은 누구인지에 집중하게 되는 스토리텔링으로 극의 몰입도를 매우 높인다.



서로가 서로를 무섭게 의심한다


범인이 라우라와 이레네를 잘 아는 면식범의 소행일지도 모른다는 추측에 점차 가족들은 서로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미묘한 긴장감 속 가족들은 하나둘씩 마음속 숨겨놨던 이야기들을 꺼내며 실종 사건과는 별개의 문제들로 감정싸움을 벌인다.


함께 오지 못했던 라우라의 남편이 도착해 함께 딸을 찾아 나서지만 별다른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가족들은 라우라의 남편의 돈을 목적으로 납치되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미 그의 남편은 일을 잃은 지 2년째이고 가족들에게 이 비밀을 털어놓는다. 



이렇게 납치범을 찾을수록 하나둘씩 드러나는 비밀은 서로에 대한 의심을 키워가게 만든다. 동생의 결혼식을 촬영하기로 한 사람들을 의심하고 파코의 농장 일꾼들을 의심한다. 마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의심하기 시작할 때쯤 유독 파코가 솔선수범하며 라우라의 딸을 찾아 나서고 라우라의 가족들 중 그 누구도 그런 그의 행동을 의심하지 않는다. 라우라와 파코 사이에 무언가 있다고 생각이 드는 찰나에 감독은 그의 한 수를 둔다.


한국에서는 유난히 뻔하고 진부한 출생의 비밀이라는 소재로 인해 다소 실망을 안겨줄 수도 있지만 사실 중요한 건 다른데 있다고 본다. 거칠고 세련되게, 잔잔하지만 때론 요동치며 세심하게 인간관계의 본성과 내면을 파고든다. 

마냥 행복해 보이던 가족의 비극은 그렇게 그들이 침묵해온 비밀과 함께 수면 위로 드러나고 주인공들은 그 비밀의 파도에 휩쓸려 정처 없이 유랑한다.



우아한 가족 미스터리, 하지만 결말은?


<누구나 아는 비밀>은 말했듯이 몰입도가 상당했다. 자칫 지루할 뻔한 전개를 인물들 간의 내면과 비밀을 긴장감 있고 세심하게 파헤쳐가며 극을 이끌어 갔다고 생각한다. 

몇 번의 의심되는 용의자를 거쳐 결국 밝혀진 범인의 존재는 예상외로 허무하게 그리고 뜬금없이 등장한다. 그래서일까 초반의 엄청난 긴장감이 마무리에서 맥이 탁 하고 끊기는 느낌을 받는다.



범인이 밝혀지고 나서도 그 범인을 잡겠다는 생각보단 모두 서둘러 일상으로 돌아가려는 느낌을 받는다. 라우라와 가족들은 결국 누구나 아는 비밀을 마을에 남기고 다시 돌아간다. 마을에 남겨진 가족들 중 일부는 이 사건으로 인해 알게 된 새로운 비밀을 공유한다.


그리고 그 순간 펼쳐지는 거리의 물청소 씬은 그들의 대화를 침묵시킨다. 이렇게 인간은 또 다른 비밀을 만들어내고 침묵하는 동시에 말하게 된다. 가족 간의 누구나 아는 비밀이 드디어 풀렸다고 생각한 순간, 그때 다시 또 다른 비밀이 생기고 막이 오른다. 

이 영화가 액션 혹은 범죄 스릴러가 아니라 드라마인 이유. 바로 여기서 시작된다고 생각이 든다. 

개인적으론 그래서 더더욱 괜찮은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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