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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다는 약을 다 때려 넣어도 안된다면

by 김트루

요즘 나는 뭘 해도 피곤하다. 너무 더워서 피곤하고, 야근이 길어져서 피곤하고, 막상 집에 가면 왜 이렇게도 항상 어질러져 있는지 모를 일이다.

이 놈의 집구석은 치워도 치워도 티가 안 난다. 나는 분명 설거지도 했고 빨래도 널었고 재활용도 했는데, 다음 날 똑같은 풍경이 반복된다.


진지하게 일주일에 한 번 오시는 청소 이모님을 고용해 볼까 했지만 비용을 보고 바로 마음을 접는다. 이 돈이면 그냥 내가 좀 더 부지런해지자.


결국 몸이 너무 안 좋아서 알약을 꺼내 들었다.

비타민 C, D, B, 오메가 3, 커큐민, 루테인, 글루타치온에 종합 영양제까지.

손바닥에 한아름 쏟아진 게 한 번에 삼키기도 어렵다.


냉장고에 언제 사놓은지 기억도 안나는 박카스 하나를 꺼냈다. 뚜껑을 따자마자 마시다 못해 들이부었다.


요 며칠째 내 기분은 계단식 하강 중이다. 아니 계단이 아니라 엘리베이터처럼 힘껏 하강 중이다.

여름 날씨는 한증막 같고, 출근길에 이미 체력 반을 소진한다.

기분도 체력도 끝도 없이 하강한다. 아래로 아래로.


이제는 이런 알약으로는 안 되는 건가? 수액을 맞아야 하나? 그러다 이내 또 떠오른다


'수액은 실비가 안 돼요.'


이놈의 보험 시스템은 왜 내 피로까지 눈치 보게 만드는 건지. 도대체 무얼 먹어야 나아질까?

아니다. 무엇을 버텨야 회복될까?


나도 회사도 집안일도 다 손 놓을 수 없으니 오늘도 내일도 다시 알약 뚜껑을 연다.

"이왕 먹는 거, 더 많이 챙겨 먹어야지."

이제 남은 건 '마음 단단히 먹는 거' 뿐이다.

그것도 알약으로 좀 팔았으면 좋겠네. 진심으로.


비타민이랑 박카스는 어디서든지 사는데 정작 가장 필요한 건 어디서도 안 판다.
의지, 휴식, 위로 같은 건 스스로 구해야 한다.


그래도 어쩌겠나. 결국 우리는 각자 ‘나만의 약’을 찾아야 한다.
누군가는 음악으로, 누군가는 산책으로, 또 누군가는 사랑하는 사람의 말 한마디, 다른 누군가는 나만의 조용한 공간이 될 수 있다. 그게 뭐든 잠시라도 버티게 해 준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결국 건강하게 산다는 건 무얼 더 삼키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붙들고 버티느냐에 달린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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