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목에 방울을 어떻게 달았나 <국회 예산회의록 전수분석> ③
또다시 선택, 그리고 집중하는 게 필요했다.
정부가 제출한 예산안의 모든 사업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닐 테고 국회의 모든 예산안 심사가 수상할 수만도 없다. 마부작침이 좁히고 또 좁혀서 주목했던 건 ‘국회발 신규 사업’이었다.
‘국회발 신규 사업’은 공식 용어가 아니라 마부작침이 붙인, 정직한 이름이다. 이름 그대로, 예산안에 담긴 각종 사업 중에 국회의 예산안 심사 과정에서 새롭게 추가된 사업을 가리킨다. 원래 정부 제출안엔 없던 사업인데 국회의원들이 심사하다가 보니 “이런 사업은 내년에 해야 한다”라고 판단해 포함시킨 것들이다. 정부 제출 예산안의 틀에만 머물면서 금액을 증감시키는 정도의 수동적인 심사에 그치지 않고 꼭 필요하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누락된 사업을 심사 과정에서 보완하는 능동적인 심사의 행태다. 잘만 이뤄진다면 국회의 긍정적인 역할일 텐 데 문제는 꼭 그렇게 추가되는 사업만 있는 게 아니라는 데 있다.
마부작침이 예산안의 숱한 사업 중 특히 눈여겨볼 사업을 걸러내는 필터로 활용했던 게 바로 이 ‘국회발 신규 사업’이었다.
어떤 심사에 문제가 있을 것이라는 심증이 있다고 치자. 그 문제를 찾아내기 위한 가장 쉬운 방법 중 하나는 심사 전후에 달라진 게 뭐가 있는지 확인하고 그 변화에 잘못된 점은 없는지 확인하는 거다. ‘국회발 신규 사업’에 대해서도 그렇게 의심했다. 국회 심사 과정에서 의원들 요구로 추가된 신규 사업이라면, 정부 제출 예산안에 원래 포함돼 있던 사업 말고도 어떤 면에서든 문제가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추정이었다. 어디까지나 가능성이었기에 이를 확인해야 했다.
마부작침이 정부 예산안과 최종 확정 예산을 비교해 찾아낸 ‘국회발 신규 사업’도 적지만은 않았다. 2018년 예산에서 447건, 2019년 453건, 2020년은 487건이었다. 사업 규모, 즉 예산이 할당된 금액을 모두 합쳐보면 2018년 예산에선 1조 2,580억 원이었고 2019년은 9,929억 원, 2020년엔 8조 558억 원이었다. 이들 모두를, 의원들이 자신들의, 혹은 지역구 이해관계자들의 이익을 위해 꽂아 넣은 사업이라고 할 순 없지만 가능성은 있다고 봤다.
이렇게 필터를 거친 다음엔 다시 회의록을 봤다. 각 위원회 회의록에서 이 ‘국회발 신규 사업’들이 얼마나 언급됐는지, 어떤 논의가 오갔는지, 심사는 과연 제대로 진행됐는지를 살펴봤다. 또 사업 내용이 전국이나 광역 단위가 아니라 특정 지역에 해당하는 건 얼마나 되는지도 확인했다. 특정 지역에 해당하는 사업 예산을 의원들이 심사 과정에 굳이 추가했다면 지역 민원성 사업일 가능성이 있다고 봤기에 그랬다.
2020년 확정 예산을 보면 ‘국회발 신규 사업’에서 이런 특정 지역에 해당하는 사업이 3분의 2, 67.6%나 됐다. 지역구 의원들이 예산 확정 뒤 “우리 지역에 000 예산을 확보했다”라고 홍보한 사업들 상당수가 여기에 속했다.
국가 예산 문제, 다시 국회의 예산안 심사 문제, 또다시 ‘국회발 신규 사업’ 심사의 문제… 이렇게 과녁을 좁혀 집중해 분석한 결과, 2018년부터 3년 연속으로 진행한 결과를 여덟 자로 요약해 봤다.
사불(4不) 심사 점입가경. 뭔가 90년대에 많이 쓰였던 것 같지만 딱 떨어지는 말 같았다.
‘4不 심사’란 네 가지가 없었던 심사라는 의미다. 그 네 가지 없었던(不) 건, 불법‐불용‐불심사‐불논의다. 풀어서 설명하면 우선 관련 법령이나 지침 등을 어겼고(不法), 이전에도, 이번에도 예산을 쓰지 못할 가능성이 컸으며(不用), 비슷한 내역이라 하여 뭉텅이로 묶어서 심사하면서도 세부 내역은 심사 없이 넘어갔고(不審査), 회의록 어디에도 논의한 흔적이 없었다(不論議)는 뜻이다.
예를 들어 보자. 2018년 예산에 서울시 하수처리장 확충 사업이 ‘국회발 신규 사업’으로 추가됐다. 2019년엔 서울시 노후 하수관로 정비 사업이 역시 국회 심사 과정에 예산 책정을 받았다. 각 사업 예산은 836억 원과 391억 원이었다. 하지만 원래 이 사업들에는 국비를 지원할 수 없다. 보조금관리법 시행령에서는 재정자립도가 높은 서울시는 하수 정비 사업 같은 데에 국비 보조를 받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정부 예산은 서울에 비해 자립도가 낮은 다른 지방자치단체를 지원하도록 하는 취지의 법령이다. 이 시행령을 어기고 예산을 배정한 것이다. 이 사업을 따내는 데 성공했던 H 의원은 시행령을 어긴 게 아니냐는 마부작침의 질의에 “서울시 사업을 지원 못하도록 한 법령이 문제”라면서 개정하겠다고 답했다.(이미 어겨놓고 사후에 개정한다면 그것도 문제인데 시행령을 바꾸지도 못했다.) 명백한 ‘불법’ 심사였다.
경북 포항의 영일만을 가로지르는 횡단대로 건설 사업은 경제성이 낮다는 평가를 계속 받으면서 착공은커녕 설계조차 진행되지 않은 채로 수년이 흘러간 사업이다. 앞으로도 이 사업은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인데 2016년부터 5년 연속 예산이 편성됐다. 총 70억 원이다. 정부가 제출한 예산안에 포함된 일은 한 번도 없었고 모두 국회 심사 과정에서 추가된 ‘국회발 신규 사업’이었다. 역시 이 사업을 밀어붙였던 P 의원은 “포항에 꼭 필요한 사업이라서 집어넣었다”라고 말했다. 쓰지도 못하고 다시 회수되는 예산 편성, ‘불용’ 심사였다. 2020년 예산의 ‘국회발 신규 사업’ 중에 ‘불법’에 해당하는 사업을 79개, ‘불용’은 15개, ‘불심사’ 48개, ‘불논의’ 사업은 104개를 확인할 수 있었다.
점입가경(漸入佳境)은, 첫째 들어갈수록 점점 재미있다, 둘째 시간이 갈수록 더욱 꼴불견이라는 두 가지 뜻을 갖고 있는 한자성어다. 여기서는 전자도 해당하겠으나 후자의 뜻이 더 강하다고 보면 된다. 3년 연속으로 국회 예산안 심사를 살펴보니 흐름이 보였다.
마부작침이 처음 살펴봤던 2018년보다 2019년, 2019년보다도 2020년 예산안 심사가 더 엉망이었다.
‘국회발 신규 사업’은 해마다 늘었고 4不 심사 중에 불법과 불용은 증가했고 불심사와 불논의는 2020년엔 조금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적지 않았다. 특히 관련 법령과 지침 등을 위반한 ‘불법’ 심사가 2018년엔 8건에 불과했는데 2020년엔 79건으로 늘었다. 국회의원들이 예산안을 심사하는 과정에서 사업들을 새로 추가하는 것도 모자라 법 규정을 어겨가면서까지 끼워 넣는 사업이 갈수록 증가하는 건 심각한 문제다. 2020년 예산 심사는 20대 국회의 마지막 심사였는데 유종의 미를 거두기는커녕 그다음 해 총선을 앞두고 더 거침없이 문제 심사를 강행한 것처럼 느껴져 허탈한 마음까지 들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