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기심 때문에 저지른 범죄라고? <불법촬영 대한민국의 민낯> ③
마부작침이 데이터 분석 이후 보도한 시리즈의 제목은 〈판결문을 통해 본 ‘불촬’ 대한민국의 민낯〉이었다. 제목 그대로였다. 그 민낯을 보고 있노라면 불법촬영이 줄지 않는 책임의 상당수는 사법당국에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먼저 2018년 서울 5개 지역 법원의 불법촬영 1심 판결문 432건.
벌금형이 46.8%로 가장 많았고 징역형의 집행유예 40.7%, 실형은 10.0%뿐이었다. 그나마 이전보다 벌금형 비중은 줄었고 집행유예가 늘어난 것이었다. 2019년 413건을 분석했을 때는 집행유예가 49.2%로 절반에 육박할 정도로 늘어났다. 실형 비율도 조금 늘어 12.2%였다. 전 사회적으로 불법촬영 문제가 주목받고 이에 따라 엄벌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고 했는데 실형만으로 보면 단 2% 포인트 늘어난 셈이었다.
황당한 판결 하나를 보자.
2018년 2월 서울 동부지방법원에서 선고된 사건인데 피고인은 2017년 3월부터 6월 사이에 여성의 치마 속과 다리 부위, 뒷모습 등을 한 번에 1장부터 최대 200장까지 158회에 걸쳐 5,796장을 불법촬영했다. 그에게 선고된 건 벌금 400만 원에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40시간 이수, 그리고 휴대전화 몰수뿐이었다. 그가 낸 벌금을 불법촬영한 사진 수로 나누면 690원이다. 불법촬영 사진 1장에 벌금 690원을 죗값으로 치른 셈이다.
2018년 불법촬영 판결문 중 벌금형 선고받은 202건의 평균 벌금 액수는 392만 원, 불법촬영물 1건에 7만 9천 원 꼴이었다. 2019년엔 평균 벌금 435만 원으로 40만 원 정도 올라갔다. 실형의 경우는 어떨까. 2018년엔 평균 9.8월, 약 10개월이었고, 2019년은 13.3개월, 1년 1개월 정도였다.
“인간의 영혼마저 빠르게 파괴할 수 있는 무서운 범죄”
“문명사회라면 있을 수 없는 부끄러운 짓”
“세상의 절반인 여성이 안심할 수 없고, 편안하지 않다면 우리 사회는 아직 야만”
(불법촬영 범죄 근절을 위한 특별 메시지, 2018. 6월 정부 합동 발표)이라며 불법촬영 범죄의 심각성에 대해 온갖 현란한 어휘를 구사했는데 단죄는 이 정도 수준에서 이뤄졌던 것이다.
그러니 불법촬영이 줄지 않는 건 어쩌면 당연한 결과로 보인다. 성폭력 범죄 가운데 재범률이 가장 높은 범죄가 불법촬영으로, 75.0% 4명 중 3명은 다시 범행을 저지른다.(법무부 〈2020 성범죄 백서〉) 2019년 판결문을 분석해 보니 재범으로 추정되는 피고인의 형량 또한 초범과 별 차이가 없었다.
또 하나, 불법촬영범의 기소 여부를 파악해 봤다.
기소는 검사가 형사사건을 재판에 넘기는 걸 말한다. 현재 한국에선 기소를 검사만 할 수 있는데(기소독점주의) 죄를 지었더라도 검사 판단에 따라 기소를 하지 않을 수 있다. 기소유예다. 집행유예는 재판에서 징역형 선고를 받되 판사가 그 집행을 유예하는 건데 기소유예는 재판까지 가지도 않는다.
매년 6천 명 넘게 발생한다던 불법촬영범인데 어디까지나 재판에 넘겨진 자들 얘기다. 2019년 서울 지역 5개 법원의 1심 판결문 413건을 분석해 보니, 징역형(실형) 12.2%, 징역형 집행유예 49.2%, 벌금형 36.8%였는데 이 또한 재판에서의 사례다. 기소가 이뤄지지 않으면 이런 판결도 존재하지 않는다. 벌금도, 징역도, 집행유예도 아무것도 없다.
기소유예 처분을 받는 불법촬영범은 얼마나 될까. 대검찰청 범죄분석 통계에 따르면 2010년엔 불법촬영(성폭력처벌특례법 14조 카메라등이용촬영 위반)범의 기소율, 즉 재판에 회부된 비율은 72.7%였다. 그 나머지 27.3%가 기소를 면한 것이다. 이 기소율은 점점 낮아져 2015년에 이르면 31.3%에 이른다. 불법촬영범 10명 중 7명은 재판을 받지도 않은 것이다. 불법촬영의 심각성이 부각되면서 기소율도 다시 올라갔는데 그래도 2018년 기준 46.9%였다. 2명 중 1명은 재판도 받지 않고 풀려난 것이다.
처벌부터 가벼운데, 아예 재판도 안 받는 비율마저 저렇게 높은 이유는 뭘까.
통상 판사가 양형에 고려하는 요소 대부분이 기소 여부를 결정할 때도 적용된다. 초범인지 아닌지, 피해 정도가 심각한지, 피해자의 용서를 받았거나 합의했는지, 범행을 인정하고 잘못을 반성하는지 등이다. 여기에 불법촬영 재범률이 여타 성폭력 범죄 중에서 가장 높다는 점, 초범이라지만 막상 잡고 보면 그간의 수십, 수백, 수천 번 해왔던 범행이 드러나는데 그러면서도 피해자를 특정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는 점 등 불법촬영 범죄만의 특성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불법촬영 범죄 예방과 단속이 더 활발해지고 성범죄에 대한 인식 수준을 높이는 게 필요하지만 처벌 수준을 올리지 않고서는 불법촬영 범죄 근절은 요원하다는 결론으로 정리하게 된 건 그래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