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 기어이 차오른 오래된 이야기
“그렇게 지쳐가고 있을 때였는데, 가게에 웬 소포가 도착했다. 열어보니 고추장 1킬로그램과 마른 멸치였다. 어떻게 알았는지, 서울의 그 녀석이 보내준 것이었다. 운송료가 고추장과 멸치 값의 열 배는 들었을, 지구를 반 바퀴 돌다시피 해서 녀석의 마음이 왔다. 밥을 지어서 고추장 두 숟갈쯤에 멸치 몇 개를 부수어 넣고 엑스트라버진 최상급 올리브유로 비볐다. 먹는데 눈물이 났다.
정작 한국에 와서 진짜로 크게 울어버리는 일이 생겼다. 녀석이 젊은 나이에 갑자기 저세상으로 떠나버린 것이었다. 영정 안에서 웃고 있는 후배를 보니 심장이 턱 막혔다. 요즘도 마트에서 고추장을 볼 때마다, 내게 보내준 것과 똑같은 빨간 상표 고추장을 볼 때마다 나는 발바닥이 쑤욱 꺼지는 것 같다.”
장마의 계절, 추적추적 장맛비를 바라보면 낮술의 추억이나 김치전, 따끈한 국물도 떠오르고 그때 함께 비를 맞거나 바라보거나 걸어갔던 사람들도 생각납니다. 그때 그 장면, 그때 그 맛... 매일 먹는 음식에 매일 보는 사람이라도 그저 허기를 면하기 위해 때우는 것과 꾸역꾸역 봐야 하는 이들과 늘 함께하고픈 쪽과는 많이 다르죠. 더러는 울컥, 하기도 합니다. 밥 먹다가도, 울컥.. 그렇습니다.
요리사이자 작가, 이분의 식당에 가서 먹어보기도 했지만 글을 더 많이 읽었습니다. 박찬일 작가의 <밥 먹다가, 울컥>, 이번 북적북적에서 고른 책입니다.
"언젠가 버킷 리스트를 적어놓았었다. 음식이던가.
아버지랑 동네 목욕탕에 가서 목욕하고 병 우유 마시기.
몽골에 가서 늙은 양 구이 먹기.
한여름에 마장동 천변에 있는 무허가 고깃집에서 피 냄새나는 토시살 먹기.
오사카 우메다역 제3빌딩 구석 망해가는 중국집에서 450엔짜리 볶음밥 서서 먹기
타이베이 시장에서 장사하는 영등포 출신 한국 화교 부부의 짜장면 사 먹기.
...
사람이란 종족은 먹으면 저장하려고 든다. 유전이다. 언제 또 먹을지 모르니까. 고지혈증은 그러니까 원래는 좋은 시스템이다. 당대에 와서 언제든 먹을 수 있게 되니 병이 되었다. 우리는 잘 먹는다. 많이 먹는다. 그렇지만 흘러간 기억 안의 사람들과 먹을 수는 없다. 그게 그립고 사무쳐서 잠을 못 이룬다."
-'펴내며'에서
박찬일 작가의 책, 찾아보니 북적북적에서 한 번 읽었습니다. 그것도 세상에나.. 2015년, 9년 전입니다. 어느새 10년이 다 됐습니다. 그때 읽었던 건 <추억의 절반은 맛이다>, 책 내용보다도 화사했던 노란 책 표지가 떠오릅니다. 좀 더 아련하고 그리운 음식과 사람과 추억에 대한 이야기였던 기억이 있습니다. 저의 소울푸드인 치킨, 양념치킨에 대한 이야기를 그때 처음 했는데 그 책은, 따뜻하고 매콤 달콤한 맛이었다면 이번 책은 좀 더 어른의 맛이라고 할까요.
"... 나는 한동안 고기를 먹지 못했다. 이 얘기를 어디선가 꺼냈다가, '동물복지와 윤리적 태도를 견지'하거나 말거나 어차피 죽을 목숨이니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비아냥을 듣기도 했다. 나는 미련해서 그런 세련된 태도 따위는 모른다. 다만 그런 현장에 있어봐야 알게 되는 기분에 관한 말을 하는 거다."
-'무언가를 입에 대지 못하게 되는 일'에서
"이제 그런 여사님들, 배달 아주머니들 보기도 힘들다. 거의 은퇴했고, 충원도 안 된다. 3층으로 겹겹이 쌓은 상을 머리에 이고, 시장 골목에서 서커스 하듯 인파 사이를 누비던 여사님들이 경추와 척추 부상을 입고 은퇴하셨다. 한 세상의 풍경화가 사라졌다. 그런 건 안 보아도 괜찮은 그림이다."
-'배달의 민족은 온몸이 아프다'에서
저와는 살아온 이력과 경험, 그러니까 접했던 세상이 달라서였겠지요. 그리고 이십 년 가깝게 연배 차이가 나니 그 시절 경험도 꽤 달라 보입니다만, 어쩜 이렇게 울컥하지 않을 수 없는 장면들이 많을까요. 기억하고 또 잊지 않기 위해 이렇게 글로 적어내는 힘, 셰프이면서 작가인 박찬일의 역량 같습니다. 주간지에 연재했을 당시에도 독자들의 엄청난 호응을 받았다고 하네요.
"장사가 제법 되었다. 한 사람 건너 식당 차리고 카페나 술집을 하는 나라다운 일이었달까. 기술자였던 진규는 곱창을 볶고, 글 쓰던 나는 파스타를 볶는다. 다들 볶고 있으니 사 먹는 건 누구의 몫인지. 하기야 식당 주인들이 돌려 막기 하듯 서로 각자의 식당 밥을 팔아주며 버티는 건 아닐까."
-'매운 돼지곱창에 찬 소주만 마셨다'에서
함께 살지 않고 입맛과 취향이 많이 달라져서일지 건강이 예전 같지 않아서기도 하겠고 어머니가 해주셨던 음식을 자주 먹게 되지 않지만 가끔 떠오를 때가 있습니다. 서툰 솜씨가 조금씩 나아지면서 수십, 수백 회씩 해 먹었던 저와 배우자의 요리들, 저의 소울푸드와 우리가 한때 즐겼던 음식과 식당과 분위기도 떠오릅니다. 많은 것들이 지나갔고 다시 그때가 오지는 않겠죠. 이제 두 살 막 지난 아이와 언제고 제가 좋아했던 것들을 함께 하는 게 많이들 그러겠지만 요즘 갖는 작은 바람입니다. 울컥, 하지 않게 건강해야겠습니다.
*출판사 웅진지식하우스로부터 낭독 허가를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