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제 네가 참지 않았으면 좋겠어
-몇달 전의 일기-
오늘 처음으로 회사를 관둘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싱가포르에서 내게 사표라는 선택지는 없었다. 얼마나 힘들게 왔는데. 4년이나 걸렸단 말이다. 하지만 몸과 마음에서의 나답지 않은 신호들을 감지하면서 비로소 깨달았다. 내가 힘들다면 정말 힘든거라는 것. 도망치는 것도, 내려놓는 것도 방법이라는 것. 내가 무너지고 있다면 회사의 인정이든, 승진이든 다 의미 없다고.
요즘 돌덩이가 가슴을 짓누르는 것처럼 숨 쉬는 게 답답했다. 미팅을 할 때면 탄산수를 들이키곤 했다. 탄산의 기포가 가슴을 무겁게 누르는 무언가를 내려가게 해주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일이 하고 싶지 않은 것은 둘째 치고 타자를 치는 것도, 간단한 메일을 쓰는 것도 힘들었다. 답장도 느려졌고. 간식 이든, 잠이든, 운동이든, 부산스럽게 움직이는 것이든, 설거지든. 밀려드는 일로부터 회피할 것들을 찾았다. 커피를 두 잔 마신 것처럼 마음이 불안 하고 잠시도 가만히 있지를 못했다. 그래서 Calm 이라는 명상 앱을 구독하고 매일 아침을 10분짜리 짧은 세션으로 시작했다. Calm 에는 불안, 스트레스, 업무에서의 갈등 등 다양한 주제의 명상 컨텐츠가 있다. 기분에 따라 주제를 선택하고 명상을 연습하면, 마음이 조금 편안해졌다. 물론 10분이라도 생각을 멈추는 건 너무 어려운 일이었지만.
“V가 너무 미워. 내 말은 듣지도 않고 자기 마음대로 일을 진행하면서 힘든 게 있으면 언제든 자기한테 말하래.”
“내일 면담 때 팀장님한테 이 얘기를 해도 될까.”
“이러다 짤리면 어떡하지”
잠시 딴 생각을 해도 괜찮아. 다시 이 순간으로 돌아오면 되.
포자처럼 생각이 퍼지는 내 머릿속을 읽은 듯, 명상 세션의 내레이터인 엘리샤가 말했다. 눈앞이 뿌얘지더니 뺨에 굵은 눈물 방울이 떨어졌다. 나는 업무를 하는 평일이 고통스러웠다. 나보다 경력이 한참 많은 선배들은 내가 자신의 프로젝트를 지원해야한다고 팀에 주장하고, 나를 압박했다. 두 고래들 사이에서 어쩔 줄 모르던 나는 매니저에게도 어려움을 호소했지만, 시간이 걸리는 문제라는 답을 받을 뿐이었다. 선배들도 자신의 성과 달성에 대한 압박을 받다 보니, 목표 달성에 어려움을 겪는 것은 내 도움이 없기 때문이라며 핑계를 댔다. 나와 사전에 합의하지 않고서 내가 할 수 있다고 일을 확정 지어버린 적도 있었다. 소비자에 대한 고민보다 정치 싸움에서 자꾸 스스로가 소진되는 기분이었다.
매일 이 고통을 느껴야 한다는 것이 끔찍했다. 이렇게 살 자신이 없었다. 최근 나는 명상 앱에 의지해서 간신히 버텼다. 매일 친구나 가족과 통화를 해도 전화가 끊기면 혼자 외딴 섬에 떨어져 있는 기분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노트북을 여는 것이 두려웠고, 하루가 또 시작되는 것이 지겨웠다. 일을 마치고 댄스 스튜디오에 가서 스트레칭을 할 때도, 회사 생각을 떨어뜨리느라 안간힘을 써야했다. 내일 회의에 대한 걱정과, 메일함으로 들이닥칠 요청 들을 생각하지 않기 위해서 다리를 더 찢었다. 가랑이가 찢어지는 아픔에 나지막한 신음 소리를 냈지만, 연습실을 울리는 음악소리에 묻힐 뿐이었다.
심리 상담을 받기 시작했다. 단발머리가 참 잘어울렸던 나의 상담사는 다양한 문화의 사람들과 일하다보니, 같이 일하는 기준이라는 게 없고, 더욱이 내 역할과 보고 체계가 명확하지 않다면 이런 혼란을 겪는게 당연할 거라고 했다. 한국 지사에서의 일은 지금보다 만족스러웠냐고 물었다. 사실 나는 이 회사를 다니면서 첫 3개월을 빼고는 행복한 적이 없다. 2년 반을 있었는데도 불행하다면, 내가 굳이 나를 이곳에 맞추고 적응하려고 해야할까. 더 이상은 도망칠 수 없을 정도로 뚜렷해진 답이, 내 앞에 놓여있다.
싱가포르에서 새로 사귄 친구 E는 18살에 대학을 입학했다. 유학 후 고등학교 입학 시기가 어긋나서 바로 검정고시를 보고 일찍이 대학을 간 것이다. 내가 18살 이었을 때, 나는 아침 8시부터 밤 10시까지 하루 종일 같은 공간에서 보냈던 고등학교 생활을 너무 힘들어해서 항상 불행했고 더 나은 미래가 그려지지 않았다. 나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머리를 얻어맞은 것 같았다. 그때 버텼던 시간이 옳은 결정이었을까 하는 의구심이 계속 맴돌았기 때문이다. 내가 해야할 일은 학교를 뛰쳐나와야 하는 게 아니었을까. 자퇴를 하고 검정고시를 보거나, 유학을 가거나, 대안 학교에 갈 수도 있었는데. 그렇게 힘들었는데 다른 방법을 찾아보지도, 생각해보지도 않고, 그저 버텼다는 게 지금에서야 후회가 되었다.
본격적으로 머리가 자라기 시작한 사춘기 시절부터, 나의 철칙은 도망치지 않는 것이었다. 문제가 많았던 첫 회사를 다닐 때에도 가장 힘든 순간에는 퇴사를 하지 않았다. 그 일에서 도망친 이후 또 다른 시련이 올 때, 스스로를 믿지 못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첫 직장에서 협력사가 말을 계속 바꾸고, 연일 터지는 이슈에 몸에 이상이 생기기도 했던 힘든 순간에는 퇴사를 하지 않았다. 일이 해결 되고 오히려 이렇게 한가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일이 없을 때. 이 업이 나의 성장과 행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확신이 섰을 때 나왔다. 과감히 퇴사하고 내 멋대로 살기에는 나는 겁이 많았고 월급이 주는 안정감을 일찍이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이런 태도와 노력들은 내게 더 탄탄하고 보수가 좋은 일자리로 데려다 주었기에, 버릴 수가 없었다.
나는 주어진 환경과 스스로의 역량보다 무리하는데 익숙했다. 내 발은 늘 바쁘게 움직였고, 무슨 일이든 요령과 전략을 생각하기보다는 최선을 다했다. 그게 내 인생을, 커리어를 최적화하는 방향이라고 생각했으니까. 일이 재밌어본 적도 없고, 능력이 뛰어나서 팀의 주목을 받아본 적도 없다. 그래도 나는 잘 참으니까. 참고 버티는 건 잘하니까. 열심히 버텼다. 그러다 어제 처음으로 무리한 노력을 멈춰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쩌면 이제까지 스스로를 푸쉬하고, 여기서 못살아 남으면 안된다고 했던 나의 마음이 스스로를 병들게 할거라는 위기의식이 들었다.
이 길이 정말 아니라면, 다른 길을 볼 수 있어야 한다. 회사를 떠날 생각으로 앞으로 1년을 보내 보자고 마음 먹었다. 나를 압박하는 사람들에게 말려서 시키는 대로 하는 대신, 내 입장을 지키고 설명하고 반대하는 것. 그거 한번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개기는 것. 사람들의 미움을 받는 것. 내가 그렇게 두려워하는 것들 다 해보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회사를 나오기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