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아늑한 카페
나의 아이폰 메모장에는 '한국 가면 하고 싶은 것들' 이라는 목록이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유행으로 출입국에 제한이 생기자 8개월 동안 싱가포르에 발이 묶였고, 한국에 대한 그리움은 더 커졌다. 그래서 한국에 가면 하고 싶은 것들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가고 싶은 맛집, 전자책으로는 구할 수 없는 책부터 머리 탈색하기, 처음으로 네일 아트 받아보기 같은 스타일 변신의 야심도 있었다. 한국으로 가는 여행 제한이 풀리는 날, 그 동안 포기하고 참았던 것들을 남김없이 다하리라. 그렇게 몇 달동안 쌓은 소원들은 점점 비대해져 스크롤을 두 세번은 내려야 할 정도 였다.
'녹사평 언덕 위 카페 이중생활에 가는 것'
맨 위에 올라와 있던 항목을 지웠다. 우연히 인스타 그램을 구경하다 지난 2월에 문을 닫았다는 소식을 접했기 때문이었다.
작년 2월, 생일이라고 기분을 내고 싶다며 얄팍하고 보온 기능은 거의 없는 코트를 입고 친구를 만나러 간 날이었다. 영업 시간 직전까지 친구와 수다를 떨다 문을 나서는 데, 사장님은 추워서 어떡하냐며 따뜻한 핫팩을 주머니에 넣어주었다. 젊고 다정한 사장님은 사장님 보다는 주인 언니라는 애칭이 꼭 맞는 사람이었다. 택시를 타고 집에 가는 내내 주머니 속 온기가 오른쪽 몸을 데웠다. 깜빡하고 이불에서 핫팩을 매만지다 잠이 들었는데, 다음 날에도 그 따뜻함이 베게 한 쪽을 덥히고 있었다. 그녀는 커피 한 잔을 시켜도 꿀은 뿌린 딸기 같은 디저트를 예쁜 접시에 내어 주곤 했다. 이런 걸 받아도 되나 당황하다가도, 언니가 뒤돌아 서면 마음이 설렜다. 서울에선 넉넉한 호의를 찾기 힘드니까. 그것도 이렇게 예쁘고 힙한 까페에서는.
커피 한잔에 이렇게 비싼 걸 내주면 장사를 어떻게 하나. 내가 사랑하는 공간의 살림 살이를, 지속 가능성을 걱정한 것은 처음이었다. 고작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집에서 4-50분이나 떨어진 까페에 최대한 자주 오는 거였다. 그래서 나와 친한 친구들을 이 공간에 초대하기 시작했다. 대학 친구와, 어느 지하철 대합실에서 친구가 된 프랑스인과, 회사 동료, 그리고 짝사랑하던 사람들에게도 이 멋진 공간을 자랑하고 싶었다. 매번 버스멀미를 하고 약속에 늦는 것이 부지기수였지만, 그럼에도 약속은 왠만하면 녹사평으로 잡았다. 이 공간이 아주 오래 지속되길 바랐으니까.
까페는 밤새 누가 들어서 옮겨도 모를만큼 작고, 소박하고, 따뜻한 별장 같았다. 낮에는 넓은 창문으로 볕이 들어오고, 밤에는 초콜릿 색의 원목 건물이 포근한 노란 빛을 뿜으며 녹사평 골목 길을 밝혔다. 안쪽 벽면에는 영화를 틀어 놓았는데, 꼭 한 번쯤은 본 것들이 많았다. 시간을 달리는 소녀, 비포 선라이즈, 트루먼 쇼처럼 묻지 않아도 좋은 영화. 처럼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로 길게 자국을 남긴 영화들 이었다. 작은 테이블을 마주하고 친구와 얘기를 하다가 눈을 계속 맞추기가 어색해 질 때면, 화면으로 눈을 돌리곤 했다.
탁, 탁, 이따끔 난로 위의 주전자가 덜컹거렸고, 뜻 모를 가사를 읊조리는 노래들이 스피커를 타고 파도처럼 너울 거렸다. 양초 위에 노란색 촛불이 간간이 일렁였고, 촛농이 녹아 흘러내려 조금은 기이한 모양을 하고 있었다.
알코올의 힘이 필요할 때는 레몬을 동동 띄운 진 토닉.
친구와 즐거운 금요일 밤을 보낼 때는 하이볼.
40분이 넘게 버스를 타고 오느라 답답한 속을 달래고 싶을 때는, 직접 담근 자몽청의 자몽이 알알이 씹히는 자몽 에이드.
더운 여름 날, 맑은 정신으로 책을 읽고 싶을 땐 아이스 카페 라떼를 주문하곤 했다.
이 곳에 있으면 잠시 몸을 둥글게 말고 세상으로부터 피신하는 것 같았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우측의 카운터에서 커피를 내리던 사장님이 활짝 웃으면서 반갑게 맞아주었고, 사회인인 '나'로서의 스위치가 꺼지는 듯했다. 테이블 마다 올려진 작은 양초는 까페를 따뜻한 호박색으로 물들였고, 마음이 뭉근해져서 긴장이 풀였다. 퇴근 후에도 발치를 졸졸 따라오는 메일들, 동기들보다 못하다는 열등감, 지금 여기서 이렇게 시간을 쌓는 게 맞는지에 대한 혼란스러움들에서 도망칠 수 있었다. 이렇게 구석진 곳에선 누구도 나를 찾을 수 없을 거라는 안도와 함께, 책 속으로, 공간 속으로, 현실과 이상과 그 사이 얇은 겹 어딘가에 폭 몸을 숨겼다.
작년 봄, 이태원의 상권 침체로 녹사평 언덕에 가게가 하나 둘 씩 사라지기 시작했고, 카페의 테이블이 비는 날도 많아졌다. 멍하니 창밖을 보는 사장님의 시선을 따라가다, 내가 사랑하는 공간이 영원하지 않을 수도 있음을 예감했다. 지금 이 순간의 행복함을, 내가 느끼는 이 순간을 꼭 기억해두고 싶어서 렌즈가 두꺼운 카메라로 카페를 담았다. 이제는 갈 수 없는 추억 속의 공간이 많이 그리운 밤이다. 소중한 아지트에서 보냈던 시간이 아주 그립지만, 동시에 어느 가을 밤 이렇게 멋진 공간을 우연히 발견했음에 감사한다. 무엇보다도 쉽지 않은 상황에서작은 카페를 가장 아늑하고 따뜻한 공간으로 보살펴 준 주인 언니의 진정성이 참 고맙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어둠의 저편>에서 '인간이란 결국 기억을 연료로 해서 살아가는 게 아닌가 싶어' 라고 했다. 녹사평 언덕 위 조그만 까페에서 보낸 시간들은 아주 조용히 타고 있는 종잇 조각이 되어 마음 깊숙한 곳을 덥혀 주고 있다. 추운 겨울도, 마음이 어두운 여름에도 계속 밝혀줄 수 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