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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 Jan 13. 2021

나이키 운동화 그리고 빈지노

청춘을 생각할 때 제일 먼저 생각나는 아티스트 

나는 빈지노를 좋아한다


음반 활동이 활발하지 않은 지금도, 빈지노는 국내 유명 래퍼들에게 최고의 래퍼로 꼽힐 정도로 뛰어난 평가를 받는 뮤지션이다. 그는 2011년 무렵부터 힙합계의 혜성처럼 등장했지만, 나는 8년 뒤에야 그의 진가를 발견하며 단단히 뒷북을 쳤다. 싱가포르에서 보냈던 작년 한 해, 잠에 못 드는 밤이면 옥상에 올라가 <If I die tomorrow>를 들었다. 그런 밤은 일주일에 3번은 찾아오곤 했는데, 가장 먼저 얼굴을 내민 것은 지금 이 상황을 벗어날 수 없을 거라는 마음이었다. 숨이 조여드는 것처럼 외롭고 무서운데, 먼 땅에서 혼자 잠드는 지금 내 마음은 아무도 모를 것이 분명했다. 한국에 갈 수 없고, 언제 갈 수 있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끝없이 가라앉는 마음이 무서워질 때면, 아파트의 옥상을 찾았다. 우리 집 50층 꼭대기에 위치한 스카이라운지는 입장권을 유료로 판매할 정도로 유명한 야경 명소다. 나는 이 옥상을 매일 같이 드나들었는데, 건물 꼭대기에 오르면 숨을 턱턱 막히게 하는 동남아의 공기가 한국의 가을처럼 산뜻해졌기 때문이다. 에어팟에서 흘러나오는 빈지노의 노래를 따라 살랑이는 바람을 헤치며 걷다 보면, 두려움이 조금씩 날아가 걸음이 가뿐해졌다.


개인적으로 2012년 - 14년에 발매된 곡들을 특히 좋아한다. 철없는 20대 남자애의 머릿속이 궁금하다면, 이 앨범을 꼭 들어보아야 한다. 주말엔 여자들의 엉덩이를 쫓고, 밤새 헤어진 여자 친구의 빈자리를 그리워하다가, 잊는 것도 생각처럼 안돼서 결국 술에 취해 전화를 거는 (실제 그의 노래들 중 많은 가사들이 이렇다), 날 것의 젊음이랄까? 




부러워요, 정말 


나의 20대 초중반은 빈지노가 사는, 아니 이 노래들의 주인공처럼 자유롭지 않았다. 모든 사람에게는 각자의 고충이 있으니, 자유를 느낄 여유가 없었다고 보는 게 옳을 것이다. 빈지노의 노래를 듣다 보면, 욕망을 억누르지 않는 삶은 이런 거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검열하지 않고 달려가는 마음이 머릿속에 생생하게 그려져서 그에 대한 질투가 치민다. 괜찮은 일자리를 얻겠다며 도서관과 카페에서 보냈던 시간들이 볼품없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나의 호시절은 대학 시절이다. 가장 많이 웃었고, 각자의 개성이 남다른 사람들과 나눈 우정과 소중한 추억이 많았던 시간이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시간은 욕망을 절제하고, 내일을 위해 참고 준비하는 시간들이었다. 사랑할 시간을 아끼고, 마음을 표현하는 걸 주저하고, 차이는 걸 두려워했던 것들이 특히 그렇다. 순수하게 끌렸던 일들을 마음껏 해볼 시간에, 사회에서 인정받는 삶 중 그나마 내가 하고 싶었던, 해외 취업이라는 목표를 택했다. 그 목표가 내가 가장 원하는 것, 무조건 이루어야 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한국에서 일을 경험하면서 적성에 맞지 않는다고 여겨도, 환경이 바뀔 거면 나아질 거라고 위안했다. 




그럼에도, 봄 


그럼에도 빈지노의 노래, 특히 <nike shoes>를 들으면 잠시나마 캠퍼스의 봄으로 다시 돌아간 기분이 든다. 나이키 운동화를 신은 여자애에게 반해 캠퍼스를 걷는 남자아이가 된 것처럼 말이다. 이 도시는 너에 비해 시시하고, 너의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이 시멘트에 색감을 이식한다는 대목에서는, 마치 하얀 캔버스에 물감이 풀어지는 것 같다.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P6Rd13kZgik


산책하기 딱인 온도와 
그녀의 발엔 나이키 운동화
I like your style baby. 
그녀의 뒤로 늘어선 그림자 속에 묻어가.
...
허나 이 아이는 예외인 듯 해 
호리호리한 등짝에 있는 백 
회색 후디 위 가방은 네이비 색
찰랑이는 머릿결은 waving flag 
그녀의 걸음걸이 느낌 있게 
춤추는 귀고리 너의 귀 밑에 
이 도시는 너에 비해 시시해 
넌 시멘트에 색감을 이식해




아무도 그에게 수심을 일러준 적이 없기에 


시 <바다와 나비> 에서 흰나비는 바다가 무섭지 않다. 아무도 그에게 수심의 무서움을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바다가 청무우밭인 줄 알고 꽃을 찾아 날았지만, 어린 날개는 물결에 젖고 만다. 몇 년동안 열심히 준비한 끝에 싱가포르에 워킹비자를 들고 입국한 날. 그날 밤의 부풀었던 기대와 야망, 울렁거리는 설레임은 이제 없다. 동경했던 새로운 땅에서의 1년은 다시 뒤돌아보고 싶지 않은 시간이 었다. 이제는 전처럼 무서운 줄 모르고 달릴 자신이 없다. 그럼에도 가끔, 나는 내가 원하는 게 정말 무엇인지 모르고 원한다고 했던, 내 자신이 그립다. 냉혹하고 깊은 바다는 자세히 들여보지 않았던, 무서운 것 없이 모험에 뛰어들었던 그때가 점점 흐려진다. 이제는 포기하고 싶은 마음으로,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다.  


빈지노의 노래가 흐르는 3분 동안, 나는 파도의 무서움을 알기 전의 날개가 보송한 나비가 된다. 좋아하는 사람의 뒷꽁무니를 쫓아다니고, 실연의 상처를 잊으려고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술 마시고 토하고 전 남자 친구에게 전화해서 흑역사를 쌓는 그런 시간들을 다시 사는 기분이 든다. 이제 직장인이 되어 민트색 러닝화를 신고 서울을 걷지만, 3분 동안 나는 잠시 대학생이 된다. 어깨에 긴장이 풀리고 걸음을 내딛는 발꿈치에 힘이 실린다.  빈지노와 멀지 않은 시대에 태어나서, 이 노래를 들을 수 있다는 게 영광스러워질 정도로. 이 노래가 정말 좋다. 


(Hook) 회색 도시 속 그녀가 신은 민트색 나이키 슈즈
빽빽한 빌딩 틈 사이 그녀의 자유로운 나이키 슈즈
바람을 건드리는 그녀의 FIXIE 위 나이키 슈즈
I like ya nike shoes
I wanna spend every night with u




빈지노는 원래 서울대 미대에 재학하던 유망한 미술학도였다. 그래서인지 그의 가사는 시각적이다. 노래가 흐르는 3분 동안, 가사에 따라 눈 앞에서 장면이 그림처럼 그려진다. 곡의 마무리로 향해가는 Outro에서는, 머리칼을 휘날리는 바람과 휘어진 눈썹의 곡선이 펼쳐진다. 투명한 물통에 떨어트린 물감 한 방울이 퍼지듯, 산뜻한 일요일의 색으로 마음이 물든다. 


(Outro) 햇살처럼 포근한 일요일 아침의 귓속말
한강 위를 달릴 때는 뭐가 어울릴 수 있을까
강바람에 질끈 감은 너의 눈썹의 곡선과 
입술의 색처럼 독특한
마치 광고에서 본 듯한
너의 Nike Shoes x2


*11월에 글쓰기 모임을 하면서 쓴 글입니다. 

*바다와 나비의 해석은 아래 네이버 지식백과를 참고했습니다 [수능 언어영역 공부하면서 지겹게 읽었지만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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