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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화 Jun 10. 2022

사랑하는 줄 알았는데 사랑받고 있었다

아픈 영혼을 위한 기도

우리 강아지 박샘은 할 줄아는 게 없다.

손을 내밀 줄도 모르고

웬만한 강아지라면 다 알아듣는

'기다려'도 모르며

간식을 보여줘야 겨우 앉는 게 고작이다.

그러니 재주가 늘때마다

박선생에서 박교장, 혹은 박교수로 승격시켜주리란 원대한 포부로 이름지은 우리강아지는

영원히 박샘이고

그냥 예쁘고 착한 미모와 품성으로만

한평생 날로먹고산다.


그러나 박샘은 결코 멍청한 개는 아니다.

깔끔하기론 천하무적이라 제 배변판에만 쉬를 하고

오히려 기억력은 놀라울 정도다.

오래전, 코브라처럼 꿈틀거리며 우르릉소리를 내는 요상한 물체, 청소기와 나름의 신경전을 벌이던 박샘이 한번은 부엌앞에서 청소기에 머리를 부딪친 적이 있다.

그뒤 박샘은 청소기하는 짓꺼리에 익숙해졌지만

아직도 딱 그 자리에만 가면

호시탐탐 청소기호스를 깨물며 그때의 원한을 갚으려든다.


이쯤되면 박샘은 사실 천재견이었던건데

다만 무지하고 태만한 보호자를 만나

아무 교육도 못받고

어떤 재능도 꽃피우지못하며

살았던 것일 수도 있다.


쇼파나 방석, 카페트 위가 아니면

맨바닥에선 엎드리긴커녕 앉지도 않던 박샘이

요즘은 아무데나 펄썩 엎드려지낸다.

발병후, 하루하루를 약으로 견디고있으니

잠시만 서있어도 뒷다리가 풀려 스르르 주저앉는다. 내가 청소기를 돌리거나 말거나.


오늘도 버려진 솜뭉치처럼 그러고있다가

또 부엌 그 자리가 되니

어느틈에 다시 청소기와 묵은 원한을 따지러온 박샘을 보며 깨닫는다.

머리 한번 부딪친걸 저렇게 못잊는 박샘이

수십번 수백번 저를 야단친 내 품엔

언제나 다시 찾아와 안기는 마음은 무엇인지 ᆢ


돌아보면 우리는 참 언제나 어디서나 사랑받고 살고있다. 나도 모르게 누구에게든ᆢ


그렇게 내가 컸어요.

그렇게 나도 사랑하고 있어요. 엄마ᆢ

오늘도 그렇게 엄마와 함께 있어요.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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