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동겸 Aug 14. 2016

Day 63

워싱턴 DC 입성기


오늘 탄 거리: 105km (Harpers Ferry ~ Washington DC)

총 이동 거리: 5560km

아침부터 캠핑장, 아니 호스텔 주인이 심기를 건든다. 건조기에서 옷을 빼려 들어갔는데 손님들이 불편해 한다고 빨리 나가란다. 아니 빌딩을 통째로 빌렸으면 단가... 나도 엄연히 돈내고 캠핑하는 사람인데. 여기는 별 한 개짜리 구글 리뷰 예약이다.

업체명 HI Hostel Harpers Ferry 입니다 여러분^^


주인과 말 다툼을 하고 나와보니 타이어에 바람이 완전히 빠져있었다. 아무래도 어제 달리다가 펑크가 난 거 같은데 열 받은 상태라 눈치도 못 챈 체 그냥 간 것 같다. 후...  아침부터 뒷목 땡긴다. 바퀴를 부랴부랴 분해하고 힘겹게 펌프질을 했다.

아 뒷골 땡겨라...


그리고 아침 7시에 출발. 원래 호스텔에서 아침을 먹을 생각이었지만 역시나 주인이 호스텔 손님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못 먹게 해버려서 다음 마을에 있는 카페까지 굶고 가야했다.

그렇게 배고프고 짜증나고 길은 더 거지 같은 상황에서 또 펑크. 오늘 진짜 제대로 내 인내심을 시험하는 구나. 자전거를 집어 던져버리고 싶다. 자세히 보니 타이어는 이미 말이 아닌 상태. 아마도 애팔라치아 산맥의 비포장 도로를 달리면서 다 갈라진듯 싶다. 일반적으론 아마 한참 전 버리고도 남았을 상태지만 이제 워싱턴에 도착하면 포장도로니... 좀만 참자.

개.빡.친.다.


워싱턴으로 가까워지면 가까워질 수록 길이 점점 진흙밭이 되어갔다. 어떻게 된게 도시에 가까워질 수록 길이 개같아질 수가. 비포장 도로에서 전달되는 진동 때문에 손목이 저려온다. 아마 이번 여행 처음으로 무기력함에 울기 직전까지 간 것 같다. 그것도 뉴욕에서 500km 남은 시점에서.

제발 그만좀 진심...
사람이 많아진다... 문명과 가까워진다... 정말 다행이다.


멘탈을 어떻게든 부여잡고 계속 달리니 길 위에 사람이 좀 많아진다. 워싱턴DC에 가까워지는 구나. 어느덧 25km가 남았다. 너무 배고파서 음식점(타코집)을 찾아 갔다.

타코집에 도착하니 바로 옆에 익숙한 사인이. 비빔밥! 들어가 보니 한국인이 운영하는 Deli였다. 불고기+밥이 14불... 동포들의 향수로 너무 폭리를 취하는 것이 아닌가 싶지만, 지금 기분이 완전히 잡친 상태에서 나의 멘탈을 회복시켜줄 건 한식밖에 없었다. 요리하는 아줌마와 한국어로 대화하는 건 덤. 한국어를 쓰는 게 이번 여행에서 세번째다. 아줌마가 멀리서 왔다고 고추장도 주셨다.(너무 오랜만에 매운 걸 먹어서인지 장에서는 그닥 좋아하지 않는듯 했다.)

14달러로 구매한 고향의 맛.


한식을 먹으니 좀 기분이 좋아져서 다시 자전거를 탈 마음이 생겼다. 게다가 이젠 포장도로. 500km(?)만에 아스팔트를 타니 이렇게 기쁠 수가. 오 문명이여~ 저 멀리서 워싱턴 기념탑이 보인다. 소름이 돋는다. 미국 수도에 도착했구나.

멀리서 보이는 워싱턴 기념탑!
오바마네 가는 중.


호스텔 가는 길에 백악관 앞에서 잠깐 기념 촬영을 했다. 오바마는 좀 불쌍한 것 같다. 집 앞이 관광객에 거리 예술가에 완전히 난장판이니. 청와대 앞에는 이런 게 없던 것 같은데.

바지가 점점 짧아지는 기분이다.



호스텔에 도착해서 씻고 다시 나갔다. 오늘은 내 생일이기 때문에(한국기준) 맛있는 걸 먹어야 한다. 그래서 호스텔 직원한테 추천받아 간 &pizza 라는 DIY 피자집. 알라카르테로 나만의 피자를 만들 수 있다. 뭔 맛일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몸에 좋을듯한 거는 다 집어 넣었다. 엄청 맛있다. 내가 먹어본 피자 중 다섯 손가락 안에 들듯.

피자 덕후로서 &pizza는 인정. 내가 만든 새우 + 염소 치즈 + 베이컨 토마토 잡탕 피자. 맛있다.



피자를 먹고 나서 기념탑을 보러 갈까 했지만 어두워질때가 제일 이쁘다는 말을 듣고 시간을 좀 더 뻐기기로. 마침 해피 아워인 일식집이 있길래 가서 사포로 생맥을 피처째 시켰다. 역시 사람은 맥주를 먹어야 한다. 최악의 하루에서 최고의 하루로 변하는 순간.

냠냠.


맥주를 마시면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원래 스케쥴 대로라면 내일 볼티모어를 가서 김현수 경기를 보는 거겠지만, 애팔라치아 산맥에서 시간이 좀 지체된 관계로(그리고 손목 통증과 엉덩이 통증이 너무 심한 관계로) 워싱턴에서 하루를 더 있을 생각이다. 이렇게 코리안 리거를 볼 수 있는 기회는 모두 날렸지만, 워싱턴까지 왔는데 찍고 갈 수는 없는 노릇이기도 하니... 대신 내일 워싱턴 내셔널즈의 경기를 보기로.(이것도 내 생일선물) 오랜만에 쉴 생각에 신난다!

PS. 알고보니 내일 경기가 일정에 없다...


밤에 심심해서 자전거를 타고 기념탑을 구경하러 나왔다.
링컨 동상.
+ 야식으로 맥도날드.
매거진의 이전글 Day 6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