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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겸 Aug 14. 2016

Day 66

When life gives you lemons...

*사진이 없어도 양해 바란다. 이런 상황 속에서 사진 찍을 마음이 전혀 안 생기더라...


아침에 일어나서 Collin이랑 아침을 먹는데 말할 때마다 담배냄새가 풀풀 난다. Collin은 이번 여행을 계기로 두 달 동안 담배를 끊는 중이라고 하는데 어젯밤 일로 다시 피나 보다. 서로 아무말도 없이 밥을 먹었다.

아침을 먹고 매니저가 9시에 출근한다고 약속했기에 로비로 내려갔다. 그런데 전화로 이야기를 나눈 사람과는 다른 낮은 직급의 사람이 있었다. 자기가 그 사람 대신 있는 거라면서. 그러고는 CCTV 영상을 보고싶다고 하니 자기는 그럴 권한이 없으며 정 보고싶으면 경찰을 데려오라는 답답한 소리만 나불댄다.

지친다. 피곤하다. 너무 분하다. 워싱턴을 들어오기 전, 시내에 있는 호스텔 5개를 전화했다. 그중 유일하게 자전거를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다고 말해준 곳이다. 체크인 할 때도 실내에 보관해도 되겠냐고 물어봤지만 자전거 보관소가 있는 구역에 외부인이 절대 못 들어오고 CCTV가 있어서 안전하니 그쪽에 잠궈두라고 나에게 말해주었다.


막상 도난 사고가 나니 말이 바뀐다. 갑자기 외부인이 '들어올 수도 있는 것'이고 완벽한 경비시스템은 없다고 말한다. 나에게 걱정 말라고 하면서 들먹인 CCTV는 이제 고장 났고, 수리 기사는 4일 뒤 올 예정이며, 설사 제대로 작동 된다 하더라도 경찰을 제외한 사람은 사생활 침해를 우려해 못 본다고 한다. 그러면서 $60 짜리 야간 버스표를 사주겠다면서 자기네가 이 일에 대해 전혀 책임은 없지만 내가 불쌍해서 '선의'를 배푸는 것이라고 한다.

열받은 김에 호스텔 이름도 까자. HI Washington DC Hostel이다.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 다르다는 말이 어떤 뜻인지 느끼고 싶다면 강력추천하겠다. 참고로 Day 61, 손님 취급도 못 받은 호스텔 역시 다른 HI Hostel 지점이었다. 쓰레기들.

호스텔 측의 변명과 말바꾸기를 들으니 너무 어처구니 없어 따박따박 반박했다. 씨앗 한 톨도 먹힐리가 있나. 아, 60달러를 100달러로 올려주겠다는 '파격제안'을 했다. 자전거 여행에서 자전거가 없어졌는데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 못하시는 것 같다.

그렇게 직원과 한시간 동안 입씨름을 하다보니 피곤해졌다. 한국이었으면 더 싸웠겠지만, 나도 갈길이 있고(갈 수단은 없어졌지만) 시간도 촉박하니 여기서 백날 따지고 있을 수도 없는 법. 깽판 쳐도 지금 말하는 사람이랑은 말이 안 통할 것 같았다. 그래서 일단 로비에 나와서 생각을 좀 해보겠다고 했다.

로비에서 기다리다 보니 어제 박물관에서 만나서 같이 미술 얘기를 한 스페인 친구가 지나갔다. 우리 상황을 이야기 해주니, 적어도 내 몸은 건강하니까 괜찮다고 말해주었다. 뻔한 소리지만 맞는말이다. 그래. 그 자전거를 한 밤중에 타다가 총맞고 털리는 것보단 낫지. 물론 그 도둑이 죽일놈인 건 여전한 사실이지만.

고작 그런 도둑놈 때문에 내 미국횡단 여행을 이렇게 망칠 수는 없는 법이다. 얼굴도 모르는 쓰레기가 내 두 달 반의 도전을 이런식으로 기분 잡치면서 끝내게 놔둘 수는 없다. 자전거를 타고 뉴욕에 무조건 들어갈 거다. 여기까지 왔는데 버스타고 집을 가라고? 말도 안 된다.

보스턴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 중학교 동창인 동욱이에게 전화했다. 외국에서 살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일년에 한 번씩은 꼭 보는 친구다. 거기에 가서 자전거를 새로 어떻게든 구하고, 짐은 친구집에 맡긴 뒤 최대한 빨리 뉴욕에 갈 생각이었다. 어차피 거리도 안 멀다.

다행히 동욱이가 흔쾌히 재워주겠다고 했다. 이제 가는게 문제. 버스표를 찾아봤다 90불에 9시간 걸린다... 기차표는 250불에 9시간. 왜 미국에선 아무도 기차를 안 타는지 알겠다. 비행기. 168불. 1시간. 다시 호스텔 사무실로 들어갔다.

가서 168불을 전부 지불할 것을 요구했다. 자전거를 잃은 것에 대해서는 100% 책임을 호스텔에 지게 할 수는 없지만 분명 허위광고로 인해 손님이 손해를 본 경우다. 당연히 직원은 안 된다는 말만 되풀면서 100달러도 '선의'라는 말만 앵무새처럼 짖어대면서 그거라도 받은거에 감사하라는 식으로 말했다. 그래. 누가 지금 선의를 배푸는 건지 보자.

일단 보스턴 행 비행기 예약.


일단 갈 길은 가야하니 100달러를 받고 공항으로 향했다. 가는 중 콜로라도에서 만난 John에게 연락을 했다. John은 자전거 관련 사건 전문 변호사다. 차근차근 상황을 설명했고, John은 어떤 식으로 말하고 행동을 해야할지 세부적으로 알려주었다. 자전거 도난 책임문제로 법정에 갈 일은 없겠지만 자기 말대로 하면 보상금은 받을 수도 있다고 했다.

공항으로 가기 직전. 서로 빈털털이가 된 상태에서 애써 웃으며 Collin과 함께 작별 사진을 찍었다.
공항 가는 중.


그리고는 애팔라치아에서 만난 Markus에게 전화해 보스턴에서 뉴욕으로 가는 길을 물어봤다. 다행히 상세한 루트까지 잘 알고 있었다. 그러면서 오는 길에 자기 집이 있을테니 하루 자고 가라고.

세상에는 나쁜 사람도 많지만 그보다 좋은 사람이 훨씬 더 많다. 비록 LA에서 출발할 때 갖고있던 물건을 이제 전부다 잃어버린 셈이지만, 적어도 인복은 그 어느때보다 풍요로운 것 같다.

이제 보스턴을 가는 비행기 안. 저가 항공사라 음료수도 안 줄줄 알았는데 엄청 조그만한 컵에다 따라준다. 감사하다.



Reddit에 다시 한 번 패닉상태에서 SOS 글을 올렸었는데, 누군가가 뉴욕이 보스턴보다 가까운데 그쪽까지 비행기를 탄 뒤 다시 자전거를 타고 내려오는게 무슨 의미가 있냐고 물었다.

이 여행이 고작 망상단계에 있었을 때부터, 내 머릿속에 가장 많이 떠올린 건 자전거를 타고 타임스퀘어에 천천히 들어오면서 '다왔다'라는 말을 하는 그림이었다. 그 상상을 하면서 힘든 일들을 견뎌오면서 6000km가까이 왔는데, 그 순간을 400km 앞두고 그냥 버스타고 집에 가라고? 나는 용납 못한다. 이쯤되면 오기를 넘어 객기를 부리는 거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그리 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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