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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겸 Aug 14. 2016

Day 70

홈스윗홈.


오늘 탄 거리: 88km (East Norwich ~ Home.)

총 이동 거리: 5905km


마지막이다. 길고도 긴 여정의 끝이 코앞에 왔다. 이제 집에서 에어콘 바람을 쐬고 맥주를 마실일만 남았지만, 그래도 이 여행이 이제 막을 내린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생긴다. 한국행 비행기를 예매해놓지만 않았더라면 아마 더 여행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아침에 일어나 Markus와 함께 아침을 먹으면서 여행 이야기를 했다. Markus는 내가 자기 어릴적 시절을 생각나게 한다면서, 이전에도 했던 이야기이지만 본인이 딱 내 나이 때쯤 카약으로 5개월 동안 미국을 여행했다고 한다. 그 이후로 자기는 여행의 재미를 찾고 아직까지 (이제 카약은 안 하지만) 자전거로 세상 구경을 하고 다닌다고. 나 또한 이번 여행이 마지막이 아닐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Markus & Cathy.


그렇게 같이 아침을 먹고, 다음에 볼 것을 기약하며 그는 출근을 하러, 나는 내 여행을 마무리 지으러 갔다. 목적지는 타임스퀘어. 거기서 사진을 찍고 허드슨 강 건너편에서 회사를 다니시고 계신 아빠와 점심을 먹기로 했다. 그리곤 한 시간 정도 더 타서 할머니 할아버지, 엄마, 동생, 테디(강아지)가 기다리고 있는 집으로 갈 예정이다.


확실히 롱아일랜드 남부쪽으로 향할 수록 길이 무척이나 복잡해진다. 그러나 다왔다는 설레는 마음에 평소 같았으면 짜증냈을 법한 복잡한 길도 즐겁게 갈 수 있었다. 그와 동시에 떨어지는 낙엽도 피해야겠다는 심정으로 평상시 같았으면 그냥 달렸을 법한 도로도 차가 많다 싶으면 우회했다. 안전제일이다.


차들이 너무 많다.


그렇게 점점 차와 사람이 많아지고 덩달아 길도 더러워지더니 퀸즈에 도착했다. 뉴욕 메츠의 홈구장인 시티필드를 봤을 때 온몸에 전율이 돋았다. 작년에 야구를 보러 간 적이 있는 곳인데, 오늘은 그냥 지나쳐 가는 것뿐이지만 훨씬 더 반갑게 느껴졌다. 점점 집들도 작아지고 허름해지면서 오히려 뉴욕에 가까워지고 있음을 느껴서 더 기뻤다. 그리고 이쯤 되니 이미 털릴 물건은 다 털린 상태에다가 수염도 산적처럼 기른 상태라(친구는 박원순 같다고 한다) 그런 동네를 지나가면 전혀 위화감이 안 들고 오히려 주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Citifield.
Somewhere in Queens.


그렇게 퀸즈를 지나 맨해튼으로 넘어가는 다리를 건너는데 저 멀리서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과 월드 트레이드 센터가 보였다. '다왔구나'. 뉴욕에 도착했다는 사실이 이제서야 현실로 와닿으면서 순간 눈물과 함께 소름이 돋았다. 다왔구나 다왔어.


여기만 건너면 맨해튼이다.
멀리서 보이는 맨해튼의 건물들.


타임 스퀘어로 향하면서 내내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뉴욕에서 살아본 적은 없지만 자주 놀러 왔기에 익숙한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70일만에 처음으로 내가 아는 곳에 왔다. 마치 오랜 친구를 만난 것처럼 이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왔구나.
타임스퀘어가 보인다...

타임 스퀘어에 도착해서 아빠에게 전화해 어떤 각도가 사진을 찍어야하는 '그 각도'인지 물어보았다. 북쪽과 남쪽 모두 전광판으로 되어 있는데 상징적인 곳이 어디 쪽인지 헷갈렸다. 남쪽인 것을 확인하고 지나가는 사람들한테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했는데 몇 번이나 무시하고 그냥 갔다. 내가 거지꼴에다가 냄새까지 나니까 그냥 뉴욕에 흔한 노숙자 중 한 명이라고 생각한 것 같다.


결국 영국인 아저씨 한 명이 내 사진을 찍어주었다. 내가 LA에서 자전거를 타고 왔다니까 안 믿는다. 아마 그 사람도 내가 그냥 미쳐버린 노숙자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하긴, 밖에서 좀 많이 자긴 했다.


The victory shot.


이제 타임 스퀘어에서 아빠 회사로 향했다. 자전거에 올랐더니 바로 비가 오기 시작했다. 꽤나 온다. 한 20km 거리라 쉽게 갈 생각을 했지만 하늘은 마지막까지 나를 가만히 안 놔둔다. 상관없다. 이제 다 왔으니.


조지워싱턴 다리. 여기만 건너면 아빠 회사다.

오히려 비를 맞으면서 시원하게 쭉쭉 달렸다. 바람이 뒤에서 불었기에 그것만으로도 감사했다. 그렇게 조지 워싱턴 다리를 통해 허드슨 강을 건너 아빠 회사로 들어가는데, 드디어 가족을 본다는 생각에 떨리는 마음으로 천천히 갔다. 회사 앞에 다가서니 아빠를 비롯한 회사 동료분들 몇 명이 박수치면서 나를 맞아주셨다. 아, 그래도 내가 무언가를 하긴 했구나.


아빠 1인칭 시점.
그저 웃음밖에 안 나온다.

아빠를 따라 회사 건물로 올라가니 회사분들이 다들 입구에서 기다리고 계셨다. 전혀 예상치 못했지만 박수갈채를 받으면서 꽃목걸이까지 걸어주시니 더욱 더 감동이 벅차오른다. 내 개인적인 여행에 이렇게 모두가 축하해주는 게 좀 의아하기도 했지만 어쨌튼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이 여정의 대미를 장식할 수 있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아빠랑 점심을 먹으면서(당연히 한식이다) 여행에서 겪었던 에피소드들을 '무삭제판'으로 들려드렸다. 블로그 업로드가 끊겨서 궁금하셨던 모양이다. 아 물론, 자전거를 도난 맞았던 것과 보스턴에서 온 것도 이제 말했다. 여태 '동부'에서 올라온다고만 말하고 보스턴 이야기는 안 했었다.


70일 동안 7년은 늙었다.
냠냠.


그렇게 아빠와 점심을 먹은 뒤 진짜 마지막 구간을 완주하러 갔다. 회사에서 부모님 집까지 19km. 이제 거기까지만 가면 진짜 끝이다. 해냈다는 생각과 함께 이게 벌써 끝나나 싶기도 하는 아쉬움이 섞인 상태에서 집으로 향했다. 지난번 왔을 때 갔던 아이스크림 집, 음식점 등을 지나치면서 엄청난 반가움을 느꼈다. 나는 뉴저지는 방학때나 와서 잠깐 왔다가는 방문자일뿐이지만, 지금 이순간 이곳은 마치 내 고향처럼 느껴졌다.


부모님이 살고 계신 동네.
집에서 1km도 안 남았다...


그리고 집 입구까지 왔다. 저 반대편에는 가족 모두(아빠도 잠깐 시간을 내서 기념사진을 찍으러 집에 들렸다) 나를 기다리고 있다. 아주 천천히 여행의 마지막 순간을 만끽하면서 집으로 향하니까 저 멀리서 할머니께서 내 이름을 부르시는게 얼핏 들린다. 내가 할머니 목소리를 듣고 달려가니 '이 멀리까지 그 고생을 하고 왔어~'라고 하면서 울으시며 나를 붙잡으신다. 그러게 말이에요.


가족 모두가 길바닥에서 나를 반겨주었다. 테디까지. 이제 집에 왔구나. (적어도 당분간은) 자전거를 타지 않아도 되겠구나. 오늘 밤 어디서 잘지 고민하지 않아도 되겠구나.


집앞에서 기념 촬영을 하면서 할아버지께서는 내가 언론사랑 인터뷰를 하고 학교에서 돈도 주어야 한다고 하신다. 신문에서 내 이야기를 써야한다고 그러신다. 글쎄 그정도인지는 모르겠다. 그런데 적어도 나와 우리 가족한테 만큼은 그 이상으로 대단하게 느껴지는 건 확실하다. 어느날 한 번 미친짓 해보겠다고 해서 떠난 아들이 이렇게 끝까지 무사히 자전거를 타고 올줄은 부모님도, 할머니 할아버지, 그리고 나도 상상하기 힘들었던 그림이니까. 현수막까지 만들어서 같이 사진을 찍었다.


해냈다.


기념촬영을 하고 집에 들어가서 샤워를 하고 엄마랑 맥주를 사러 갔다. 집에서 원래 술을 거의 안 마시지만 오늘만큼은 맥주를 종류별로 6병을 마셨다. 자전거 여행을 하면서 덩달아 알코올 중독이 된거일지도. 아니면 그냥 맥주맛을 알아버린 것 같다. 어찌됐든 행복하다. 홈스윗홈.


김범수 - 집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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