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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tter Dec 14. 2016

[오후 2시] 따뜻한 차 한잔 그리고 대화

'내가 없는 삶'에 지쳐있는 이들에게 보내는 박근철 님의 편지




연말입니다.
한 해가 저물어간다는 사실이 갑자기 찾아온 추위처럼
피부 깊숙이 파고듭니다.

당신에게 올 한 해는 어떤 해였나요.

혹시,
특별할 것 없는 한 해를 보냈다는 생각에 회의가 들었다면,
잠시 멈추어 제 질문에 답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어쩌면 그 회의감의 원인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지난 한 해 당신의 삶은 정말 당신의 것이었나요?


대답하기가 어려웠다면,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면,
어쩌면 그간의 삶은 '내가 없는 삶'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그런 삶을 살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 당신을 위해,

서울에서 조금 떨어진 시골의 한 전원마을에 직접 집을 짓고
'내가 있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박 근 철 님의 이야기를 담아왔습니다.






자재부터 설비까지, 건축사에게 맡기지 않고 하나하나 공부해 직접 지은 집. ©Photograph ParkJaehong



©Photograph ParkJaehong

서울에서 오래 생활하셨다고 들었어요. 귀촌을 결심하게 된 계기가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사실 굉장히 오래전부터 생각해왔어요. 결혼하기 전부터. 건축업체에서 일하는 친구가 있어서 건축과 관련한 정보도 어느 정도 알고 있었어요. 그러고 보니 저급 자재를 써서 지은 아파트들이 우리가 말하는 소위 '좋은 아파트'들이더라고요. 근데 우리는 굉장히 비싼 가격에 아파트를 사잖아요. 거기다가, 아파트에 살면 계속 돈을 많이 벌어야만 하는 삶을 살 수밖에 없어요. 관리비라든지 가스비 같은 것도 그렇지만 집에 있으면 갑갑하니까 주말에는 자꾸 야외로 나가게 되고, 자연히 소비를 많이 해야 하는 행동을 하게 돼요. 그렇게 살면 나중에 우리 아이들도 똑같은 삶을 살게 되겠구나 싶더라고요. 돈의 노예가 되는 삶. 내가 즐기기 위해 무언가를 하다가 돈이 생기는게 아니라, 생존을 위해 돈을 벌게 되면 그건 돈의 노예가 되는거라고 생각해요. 우리 아이들은 그런 삶을 살게 하고 싶지 않았어요. 여기 같은 곳에서 살면 더 적은 가격에, 약간의 불편함만 감수하면, 아이들 교육에도 좋으면서 훨씬 더 높은 질의 삶을 살 수 있다고 믿었어요. 경강선이 지어지는게 확실해지고 큰 아들이 중학교 진학을 앞두면서 마음을 먹고 알아보기 시작했죠.



내가 즐기기 위해 무언가를 하다가 돈이 생기는게 아니라, 생존을 위해 돈을 벌게 되면 그건 돈의 노예가 되는거라고 생각해요.



오랫동안 생각해오셨다면 그만큼 여러 가지를 고려하셨을 것 같은데, 본격적으로 귀촌을 준비하시며 가장 크게 신경 쓰신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땅 사는거죠. 땅(웃음). 입지가 가장 중요했어요. 너무 시골이지 않으면서 삶의 질은 높게 유지할 수 있는 곳을 찾으려고 했어요. 우리가 워낙에 문명화가 많이 되어있는터라 자연만 보고 살 수 있는게 아니기 때문에 너무 시골에 가면 살 수가 없고, 현실적으로 아이들 교육 문제가 있기도 했고, 직장 문제도 있구요. 그래서 지하철이 가까우면서 적당히 시골인 이런 곳을 찾아다녔죠. 그런데 또 창문 열면 이웃이랑 마주보고 있고 그러면 안되잖아요(웃음). 이웃집과의 간격, 실제 집 평수, 마당 크기를 고려했을 때 150평 정도는 사야겠다 생각하고 알아봤어요. 또 하나 중요했던 건 주민들 텃세. 우리나라가 그게 생각보다 심해요. 텃세 때문에 집을 짓다가 포기하는 경우도 많고요. 이 마을은 그런게 없었어요.

©Photograph ParkJaehong

준비하시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을 꼽으신다면 어떤 걸 꼽으시겠어요?


입지를 선택하는 건 신경이 많이 쓰이는 동시에 힘들기도 한 일이었어요. 장소 찾는거 말고는, 직접 집을 짓는 것 자체도 힘들었죠. 이쪽 분야 전문가가 아닌데, 한단계 한단계 공부하며 직접 했으니까. 건축사를 만나보기도 했는데, 믿기가 어려워요. 처음에 의뢰를 했더니 철근 콘크리트로 하려고 한다고 하니까 자기 집을 그걸로 해봤는데 결로가 생기고 난리가 아니래요(웃음). 그러면서 목재로 지으라고 하는데, 믿고 맡길 수가 없더라고요. 그리고 건축사들 중에는 시공을 직접 못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게다가 집을 짓는 일이라는 것 자체가 일생에 한 두번 있을까 말까 한 일이잖아요. 지속적인 관계가 되질 못하니까 합리적인 가격을 제시하는 건축사를 만난다는 것 자체가 참 어려운 일인거죠. 그래서 혼자 공부하면서 집을 짓기 시작했어요. 인허가도 직접 다 받으러 다니고. 허가가 나오면 시청에서 서류가 와요. 거기에 집을 지을 때 고려해야할 것들이 다 써있어요. 그 문서대로만 하면 돼요. 물론 전문가들의 의견을 따로 들어봐야하는 부분도 있지만 읽어보고 공부하면 돼요. 그래도 이게 보통 일은 아니니까, 마지막에는 다니던 회사도 그만두고 허가에만 매달리고 그랬죠.





스스로 만들어낸 무언가가 가치있고 그것이 '명품'이라는 생각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시골 생활은 어려울거에요.




그래도 굉장히 즐겁게 하셨을 것 같은데요 :-)


즐거웠던건, 집이 지어지고 있는 모습을 가족들이 보고 꿈에 부풀어 돌아가는 모습을 볼 때(웃음). 여기 사진첩에도 나와있죠. 소풍 갈 때도, 소풍 갈 때보다 기다릴 때의 즐거움이 더 크잖아요. 그런 것처럼 집이 아직 다 지어지지 않았지만, 하나씩 완성되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좋아하는 가족들의 모습을 보는 거. 그게 즐거웠어요.




그 때가 2년 전인가요? 서울에서 살 때와는 많은게 달라졌을 것 같아요.

집에서 하는 일이 즐거워졌죠. 서울에서 살 때보다 여기가 일이 훨씬 많지만, 여기서의 일은 나의 삶을 개선시키는데 내가 직접 노동을 하는거잖아요. 저는 그런 노동은 정말 신성한거라고 생각해요. 집을 지을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집을 짓고 있을 때, 인부들이 와서 일을 해주는데 가끔 '빵꾸'를 내요(웃음). 그러면 제가 인력사무소에 가서 직접 인부들을 구해서 같이 일을 했어요. 그렇게 일을 하고 나면 해가 너무 빨리 지는거에요. 저는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거죠. 일을 더 해야 하는데 해가 지니까. 내가 노동을 하면서 이런 감정을 언제 느껴봤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이 집에 살면서 하는 일들이 남들에게는 힘들어보이는 과정일 수 있는데, 그 과정이 저는 너무나 즐거워요. 아침에 일어나서 화단에 물 주고, 대간이(강아지) 밥주고, 아침상을 차리는 소소한 일들도요. 그리고 아이들이 맛있게 먹어주면, 그게 또 큰 행복이에요. 내가 세상에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잖아요. 그게 나의 가치인거고. 그런 '가치'를 추구하려고 좀 더 느리게 무언가를 하는 삶을 할려고 했던 것 같아요. 도시에서의 삶과 가장 큰 차이라면, 굳이 놀거리를 찾지 않아도 즐거움이 있는 것. 그게 가장 큰 차이에요. 즐거움을 추구하는 과정이 수동적이냐 능동적이냐겠죠. 그리고 능동적으로, 스스로 만들어낸 것들은 다 명품이잖아요. 스스로 만들어낸 무언가가 가치있고 그것이 '명품'이라는 생각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시골 생활은 어려울거에요.


이제 막 1살이 된 대간이 ©Photograph ParkJaeHong


말씀을 듣다 보니, 집에 머무르실 때 가장 좋아하시는 시간대가 언제일지 궁금해졌어요.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라... 아침이죠. 저쪽에서 해가 뜨는 걸 볼 때. 일어나면 나와서 화단에 물을 주는데, 그러고 나면 식물들이 물을 머금고 살아나는 그 느낌이 아주 좋아요. 대간이도 꼬리 치고 좋아해주고. 우리 집사람이랑은 갈등이 많긴 하지만(웃음).




마을 사람들과 함께 하려는 활동이 있으시다고 들었어요.


마을 산책을 하다보면 사람들을 만나는데, 여기는 사람이 귀하다보니까 보면 들어와서 차 한잔 마시고 가라고 해요. 애들도 밖에서 놀다가 만나면 과일 하나씩 주기도 하고. 그런 따뜻함을 발전시키고 싶어요. 스포츠 같은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해요. 앞으로 이 마을이 좀 더 커질테니까 놀이터 같이 있는 곳을 농구장으로 만들어서 농구대회도 개최하고, 마을 회비로 상금도 걸고. 여기 마을 뒷편에 보면 산책로가 있거든요. 올레길처럼 운영을 해서 같이 마을 한바퀴 도는 시간을 가지면 마음도 편안해지고 서로 가까워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도시 사람들에게 이런 삶이 있다는 걸 보여줄 수도 있고요. 또 하나 생각하는건 젊은 세대와 나이 든 세대 간에 교류를 만드는거에요. 저는 세대 간 단절이 가장 안타까워요. 서로 소통이 가능한 상황이 되면 나이 든 세대가 가진 지혜를 이어받고 발전시킬 수 있거든요. 발전까지는 안되더라도 서로 소통만이라도 됐으면 좋겠어요. 너무 조용하니까 약간 더 시끄러운 마을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고(웃음).

지금 마을 청소를 하는데 사람들이 가끔 그래요. 마을 청소를 하는 사람들한테 쓰레기 봉투를 제공해야한다고. 그건 아니거든요. 물질적 보상이 전부가 아니잖아요. 나로 인해 우리 마을이 좋아지는구나- 하는 느낌을 추구해야하는거죠. 소통 창구를 만들어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요. 그러면 마을 사람들 수준이 올라가는거거든요. 혹시 제가 잘못 생각한 것일 수도 있으니까, 이런 부분을 토론을 통해서 결정했으면 좋겠어요. 합리적 토론이 이루어질 수 있게 하면 서로 배우고, 이웃들과 더 잘 지낼 수 있게도 되고.




마을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신 것 같아요. 공동체에 대한 '나만의 정의'를 듣고 싶네요.


저는 공동체는 내가 가지고 있는 지식을 같이 공유하면서 서로 발전할 수 있고 그 과정에서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집단이라고 생각해요. 독서도 그렇잖아요. 책을 혼자 읽는 것하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토론하며 읽는 건 전혀 달라요. 함께 무언가를 하면 시너지 효과가 나는거죠. 즐겁게 공유하는 것, 그걸 통해 함께 발전하는 것. 그게 공동체라고 생각해요.




어떻게 살지에 대해 정말 많은 생각을 해오셨다는게 느껴져요. 무엇이 현재의 삶으로 자신을 이끌었다고 생각하시나요?


돈이 많이 들지 않는 삶을 살려고 생각했던게 가장 컸던 것 같아요. 도시에서 살면서 느꼈던 게, 노예가 되는 것 같다는 거였어요. 평생 일하며 살고, 아이들은 공장식으로 키워내고, 심지어 죽는데도 돈이 많이 들잖아요. 돈이 많이 들지 않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돈을 따라가다 보면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일도 해야할 때도 많이 생겨요. 도덕적으로 옳지 않은 일들도 해야할 때도 있고. 저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고, 그렇게 살지도 않아요. 지금 직장이 스무번째 직장인데, 원래 프로젝트 단위로 옮기는 일의 특성도 있지만 그것(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생각) 때문에 직장을 자주 옮긴 것도 있어요. 이렇게 삶의 자세를 유지하며 사는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적어도 내 삶의 목적을 잃지는 않죠.




삶의 목적이라면 왠지 '사람다운 삶'과도 이어지는 것 같네요.


저는 자기 삶의 목적을 잃지 않는게 사람답게 사는거라고 생각해요. 내가 가치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추구하며 사는거죠. 우리나라 문화 자체가 복사&붙여넣기식으로 일률적이다보니까 사람들이 자기를 버리고 남들 가는대로 따라가잖아요. 특히 젊은 사람들이 사람답게 사는게 어렵죠. 회사에서도 보면 젊은 사람들이 하대를 당하기도 하고, 스스로 자기를 낮추고 버리기도 하는데, 저는 그게 너무 안타까워요. 왜 그래야 하는거지 싶어요. 심지어 자기 가치를 정할 때도 남들을 따라서 정하기도 하잖아요. 육체적인 노동을 직업으로 삼아서 일하는걸 부끄러워 하는 것도 그런거죠. 사회적으로 천시하는 경향이 있으니까. 실은 부끄러워 할게 하나도 없는데.



저는 자기 삶의 목적을 잃지 않는게 사람답게 사는거라고 생각해요. 내가 가치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추구하며 사는거죠.


마주 보고 웃는 부자. 아버지는 아들에게, 아들은 또 아버지에게 둘도 없는 스승이자 친구다. ©Photograph ParkJaeHong

그렇다면 앞으로의 행복을 위해 절대 포기하지 않을 세 가지가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말했듯이, 저의 삶의 목적이죠. 내가 가치있다고 생각하는 것들. 그리고 우리 아이들. 아이들이 잘 자라도록 좋은 환경을 제공해주는것이 제게는 또 중요해요. 저 자신도 그렇게 사는 것도 당연히 중요하고요.




마지막으로, 귀촌에 관심있는 사람들을 위해 한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준성이(아들)가 자동차 디자인에 대해서 그런 말을 했어요. '너무 앞서가도 안 되고, 너무 뒤서가도 안 된다'고. 너무 시골을 가면 안 돼요. 역귀성이 그렇게 해서 일어나는거에요. 시골에 사시는 어떤 할아버지께서 해주신 말씀이, 부지런한 사람은 귀촌해서 오래 못 버틴대요. 천천히 시골에 자신을 적응시켜가는 사람은 성공적으로 정착하는데, 무언가 해보려고 막 시도해보는 사람은 얼마 못 가 지쳐서 돌아간다는거죠. 도시에서 지쳤던 것처럼. 그러니까 천천히 해야 해요.


©Photograph ParkJaeHong




흔쾌히 인터뷰를 허락해주신 박근철 님께 깊은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Warmly,
LETTER







©Photograph ParkJaeHong



©Photograph ParkJaeHong



©Photograph ParkJaeHong



©Photograph ParkJaeH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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