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즈 파텔, 세실 앤드류스, 엠마누엘 레비나스
몇 년 전 재미있는 책이 나왔다. 세실 앤드류스라는 여성 운동가가 쓴 책인데 제목이 <유쾌한 혁명을 작당하는 공동체 가이드북>, 원제는 'Living Room Revolution'이다. 우리말로 번역되어 출간되면서 추천사를 쓰게 되어 번역본 첫 독자가 되는 영광을 얻었다. 참 재미있는 책이다. 읽다보면 마치 옆집 누나가 맥주 한 잔 하며 잔소리하는 듯한 기분이 든다.
책의 주제는 '대화'이다. 대화를 나누는 것이 우리 삶의 많은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는 어쩌면 나이브한, 그러나 매우 실용적인 조언을 주는 책이다. 흥미롭게도 행복을 어디서 찾아야 하는지부터 시작한다. 행복이라는 것이 우리 시대의 키워드임이 분명한 듯하다. 우리는 행복할 수 있을까? 세실은 행복을 찾으려면 타자를 주목하라고 말한다. 그리고 '대화'는 타자로부터 오는 행복을 찾을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이다. 앞서 소개한 <경제학의 배신>의 저자 라즈 페텔도 서로 협동할 때 행복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협동에서 나오는 효용에 대한 구체적 사례를 제시하기도 한다. 경제학자와 사회학자가 행복을 찾으려면 타자에게 주목하라고 말한다.
우리가 찾는 행복이 순간순간 찾아오는 좋은 기분은 아닐 것이다. 말하자면 '행복'은 감정적인 것이 아니라 존재론적이라고 해야 할까? 그것을 기독교에서는 '기쁨'이라 말하기도 한다. 성서에 '항상 기뻐하라'는 문구가 있는데 일상에서 매 순간 실천해야 할 명령어라는 점이 특이하다. 그것을 두고 행복은 주변 환경이나 나의 기분에 따라 변덕스럽게 찾아오는 감정의 영역으로 구분하고 기쁨은 어떤 상황에서도 주체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의지의 영역이라 설명하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찾는 행복은 기쁨에 가깝다. 우리 뇌에서 일어나는 화학작용에 의한 일시적 현상이 아닌 존재론적 성찰이다.
그래서 행복은 철학자들의 주제라고 할 수 있다. 나에게 무엇이 주어졌느냐에 행복이 달려있지 않다. '나는 왜 여기에 있는가'를 이해하는 바탕 위에서 나에게 일어나는 일련의 사건들을 나만의 시각으로 해석할 수 있을 때 비로소 행복을 말할 수 있다. 그러니까 행복은 일종의 테크닉이 아닌 존재론적 전환이다. 경제학자(라즈 페텔), 사회학자(세실 앤드류스)마저도 행복을 말하는 마당에 일단 철학자의 조언을 듣고 넘어가는 것이 순서일 듯하다.
타자를 향한 철학
'행복이 타자로부터 온다'는 명제를 설명해 줄 철학자를 고민하다 '얼굴의 철학자' 레비나스가 생각났다. 레비나스를 알게 된 건 강영안 선생님의 <철학은 어디에 있는가>에서였다. 여러 철학자를 소개하는 책이었는데 특별히 타자와의 관계를 통해 자신의 존재 의미를 깨닫게 된다는 레비나스의 주장이 인상적이었다. 곧바로 강영안 선생님이 레비나스의 철학을 전반적으로 풀어낸 <타인의 얼굴>, 그리고 <레비나스 평전>(마리 안느 레스쿠레 저, 변광배/김모세 역)을 사서 읽었다. 우리 삶 속에 레비나스를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지 살펴볼 수 있었다.
레비나스로 가기 전에 먼저 짚어 둘 것이 있다. 철학자의 글을 읽는다는 것은 여간 곤욕스러운 일이 아니다. 때로는 어이가 없을 정도로 글이 난해하다. 일차적으로 나의 내공이 부족한 탓이지만 철학자들은 형이상학의 오랜 전통 위에 쌓인 언어를 구사하기 때문에 일상 언어에 익숙한 우리들이 고전하는 것은 당연하다. 솔직히 내가 레비나스의 철학을 제대로 이해하는지도 모르겠다. 온전히 이해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철학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니 말이다. 오로지 해석이 있을 뿐이다. 물론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할 위험이 뒤따른다. 어쩌면 행복이 '존재론적 전환'이라는 필자의 해석을 레비나스는 동의하지 않을 것이 거의 분명하다. 다만 우리가 처한 현실을 바탕으로 레비나스를 해석함으로 새로운 가능성을 짚어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