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의 공유
"너의 잘못이 아니야." 숀의 가슴에 안겨 하염없이 운다. 전에도 그렇게 눈물을 흘린 적이 있었을까? 천재에게도 울어야만 풀리는 상처가 있나 보다.
맷 데이먼과 벤 애플랙이 시나리오를 쓰고 직접 출연한 영화 '굿 윌 헌팅'의 주인공 윌(맷 데이먼)은 명문 대학 청소부 일을 하며 생활한다. 인문학과 수학에 천재적 재능이 있던 주인공은 명문대 학생, 교수들을 비웃으며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이 천재 앞에 두 사람이 등장한다. 한 사람은 자신이 비웃던 대학에 다니는 여자, 다른 한 명은 성공과는 거리가 먼 어떤 무명 대학의 교수다.
윌은 사랑에 빠지지만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여자를 떠나보낸다. 그 과정에서 마음은 아픈데 표현할 줄은 모른다. 그런가 하면 그토록 무시하던 소위 지식인, 그것도 열등감과 상처로 가득한 어떤 무명 교수에게 자신은 발견하지 못했던 지혜가 있음을 깨닫는다. 그러나 자신이 타자로부터 배울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인정하지 못한다. 이 두 존재는 주인공 내면에 숨어있는 열등감을 드러낸다.
윌은 두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서 자신을 얽매고 있는 상처와 마주한다. 그 잊을 수 없는, 숀 맥과이어 교수(로빈 윌리암스)가 윌을 바라보며 "It's not your fault"라는 말을 건네는 장면. 윌은 "Yeah, I know"라고 답한다. 그저 일상의 대화인가 싶더니 계속해서 "It's not your fault"라 말하는 숀에게 윌은 결국 크게 화를 낸다. '너의 잘못이 아니야'라는 말이 윌의 상처를 드러낸 것이다. 윌은 자신의 상처를 직접적으로 대면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진정으로 윌의 마음을 이해하려고 하는 숀 앞에서 윌은 무너지고 만다. 너의 잘못이 아니라는 말은 마법과 같이 윌의 마음을 파고들었고 윌은 눈물을 쏟아낸다. 그렇게 상처를 대면하고 받아들인 윌은 떠나보낸 사랑을 찾아 자신도 익숙한 도시를 떠난다.
윌은 누가 봐도 특별한 사람이었지만 세상은 알아주지 않았다. 만약 이 세상이 정직했다면 그를 알아봤을 것이다. 대학이라는 시스템이 그를 외면했다. 윌은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상처받고 있었다. 세상으로부터 받은 그 상처는 윌이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채울 수 없는 갈증이 되어 그를 지배했다. 셰익스피어와 대화하고 칸트를 묵상할 줄 알았지만 그들은 윌의 상처를 치유하지 못했다. 그에게 필요했던 것은 숀이다. 그 상처들이 비단 자기 자신만의 책임이 아님을 말해주는 존재. 그가 있어야 했다.
사실 세상이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윌은 특별한 사람이었다. 단지 그가 좋은 대학에 가지 않았다고 해서, 돈이 없다고 해서 그 특별함이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세상의 평가와 상관없이 우리 각자는 나름의 특별함을 가지고 있다. 세상이 우리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해서 우리의 특별함이 사라지지 않는다. 시대가 악한 것이지 우리가 부족해서, 약해서, 적응력이 부족해서 그런 것이 아니다. 로빈 윌리암스는 우리 모두에게 말해주고 있다. "It's not your fault."
영화 속에서 두 가지를 발견했다. 하나는 윌의 상처가 개인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그것은 세상이 주는 상처였고 윌의 책임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로 인한 아픔은 철저히 개인이 감당할 수밖에 없다는 것. 두 번째는 윌의 상처를 발견하고 힐링으로 이끌어준 사람이 숀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일종의 아이러니다. 윌이 그토록 무시하던 지식인, 그것도 성공하지 못한 지식인에게 가장 결정적인 깨달음을 얻기 때문이다. 그것은 어쩌면 필연적일지도 모른다. 숀, 그도 시대의 부조리로 인해 상처받고 쓰러졌던 경험이 있으니까 말이다. 상처 입은 경험을 가진 사람만이 타인의 상처를 발견할 수 있을 테니까.
같은 상처를 공유했던 숀을 통해서만 윌은 자신을 대면할 수 있었다. 시대로부터, 세상으로부터 받은 상처는 자아성찰만으로는 치유할 수 없다. 서로 그 상처를 발견함으로, 서로 그 상처를 감싸줌으로써 치유가 시작된다. 우리의 상처도 단순히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다.
우리는 시대가 주는 상처 때문에 가슴이 저리다. 우리가 가진 문제들 중 상당 부분은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것들이다. 딱히 우리의 잘못도 아니다. 자괴감이 우리를 압도할 때 우리 스스로를 자책할 이유가 없다. 윌이 그 상처를 치유하고 세상으로 나아가듯 우리도 그렇게 할 수 있다. 한 개인으로 서는 것. 그것은 단순히 책을 읽는다고, 깊이 생각한다고, 돈을 번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에게는 숀과 같은 존재가 필요하다. 아니, 우리가 서로에게 숀과 같은 존재가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