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그 이후
스펜서 존슨이 말하는 삶의 방식으로는 더 이상 행복할 수 없다. 2, 30대가 처한 경제적 상황은 스스로 자초한 것도 아니지만 그들의 삶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우리는 윗 세대와는 전혀 다른 삶의 맥락에 놓여있다. 선배 세대의 지식과 노하우가 통하지 않는다. 1997년 그 이후부터 말이다. 나는 대한민국이 부도를 냈던 소위 IMF 시절 대학생이었다. 97년에 대학을 갔으니 IMF 세대라 해도 될 것 같다. 당시의 경제적 충격은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국가부도 사태가 나고 제일은행(현 'SC은행'의 전신)은 4,000명이 넘는 직원을 정리해고했는데 한 지점의 직원이 당시의 상황을 카메라에 담아 공개한 사건이 있었다. 일명 '눈물의 비디오'(원제: 내일을 준비하며)라고 불리는 이 영상은 폐점 대상이었던 제일은행 테헤란로 지점의 행원들을 취재한 아마추어의 영상이었지만 제일은행 지점장 회의에서 최초 공개된 이후 일반인들에게도 알려졌고 사회적으로 파장을 일으켰다. 지금 다시 봐도 마음이 짠해지는, 슬픔 가득한 영상이다.
1997년 국가 부도 사태를 평가하는 잣대가 여럿 있지만 나는 재벌로 대표되는 자본 세력과 정부의 잘못으로 일어난 국가부도를 가계 - 말하자면 평범한 사람들 -가 온몸으로 받아낸 사건이라는데 동의한다. 그 여파는 엄청났다. 그리고 장기적이었다. 지금의 30대는 당시 갓 사회에 들어섰거나 청소년이었다. 사실 97년에는 그게 어떤 의미였는지 제대로 알지 못했다. 그러나 97년의 상처는 30대에게 서서히, 치명적으로 다가왔다. 가정의 붕괴라는 모습으로.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국가부도 사태가 나기 3년 전인 1994년에는 총 6만 5천 건의 이혼이 발생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숫자가 97년을 기점으로 급격하게 증가한다. 97년에는 9만 건을 넘어섰고 이후 매년 10만 건을 훌쩍 뛰어넘는다. 정점이었던 2003년에는 무려 16만 부부가 이별을 선택했다. 물론 이 통계는 법원에서 도장을 찍은 이혼만을 집계하기 때문에 실제로 붕괴된 가정의 숫자를 다 반영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그 추세는 실로 충격적이다. 97년 국가 부도를 가계가 떠받치다가 2000년 초, 중반에 수많은 가정이 파탄난 것이다.
내가 청소년이던 시기에는 '가출'이라는 단어가 일상의 언어였다. 그만큼 가출은 청소년의 일반적인 경험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물론 심각한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일탈 정도로 끝나곤 했다. 그런데 지금의 청소년 문제는 90년대와 차원이 다르다. "2000년대 중반 이후 등장한 가출 청소년의 다수는 빈곤, 이혼, 학대 등으로 집이 사라진 아이들이다. ‘가출’ 한 게 아니라 가정을 잃은 ‘홈리스(homeless)’ 청소년인 것이다."* 이 또한 97년 국가부도 사태와 관련이 깊다. 기사에 따르면 홈리스 청소년들의 숫자는 제대로 파악되고 있지 않다고 한다. 관련 기관들은 대략 12-14만 명의 가출 청소년들은 돌아갈 집이 없는 것으로 추측한다고 했다. 2012년 인구조사에 나타난 청소년 인구가 750만 명을 갓 넘어가는 수준이라고 보면 100명 중 두 명은 돌아갈 집이 없다는 말인데 그 수가 믿을 수 없을 정도다.
경제 위기로 인한 상처가 전 세대에 걸쳐 깊이 파였다. 특별히 2, 30대는 대한민국의 가장 어둡고 왜곡된 구조가 가장 집약적으로 나타나는 세대가 아닐까 싶다. 지금 2, 30대는 부모보다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후퇴할 첫 세대이다. 그 말을 다르게 표현하자면, 부모 세대의 압축적이고 왜곡된 성장의 부작용을 받아내는 세대라는 뜻이다. IMF 사태로 사회와 가족이 동시에 고꾸라지면서 사회안전망이 무너졌다. 1997년 이후부터 한국사회는 각자도생이다.
지금의 2, 30대는 사회 시스템에 기댈 수 없다. 연공서열이라는 부모님 시대의 시스템은 IMF 국가부도사태로 붕괴되었고 이후 우리 사회를 지탱하던 시스템의 기재가 하나 둘 무너지고 있다. 2000년대 초반 IT 버블 붕괴로 인해 사회의 혁신 시스템, 즉 거대 자본 없이도 아이디어와 실력으로 새로운 강자가 나타날 수 있는 사회는 물 건너가고 말았다. 요즘에야 스타트업 열풍이 한참이지만 아직까지는 소수의 잔치에 불과하다. 한국의 기업들 중에 독재정권의 도움 없이 스스로 일어나 강자로 성장한 기업은 손에 꼽는다. 자본의 독점은 점점 심화되었고 그것은 곧 재벌 기업들을 위시로 한 직장의 서열 매기기로 나타났다. 노동 환경을 보라. 재벌 아니면 중소기업으로 완전히 구조화된 노동 시장에서 2, 30대에게 주어진 선택의 폭이 너무 좁다.
집값은 얼마나 올랐는지 결혼을 생각이라도 하려면 부모님의 등골을 파먹든지 결혼을 아주 늦게 하든지 둘 중 하나다. 실제로 결혼 연령이 계속 늦춰지고 있다. 통계청에 의하면 남성의 경우 25-30세에 결혼하는 비율은 2000년대 들어 계속 줄어들었고 30대 결혼 비율이 늘어났다. 그중에서도 35-40세 결혼은 2002년에 비해 2012년에 두 배 가까이 늘었다. 이러한 현실을 무시한 채 청년들이 대기업만 찾는다는 기성세대의 비아냥거림을 듣고 있자면 기가 막히다. 솔직히 대면하자. 대기업이 아니면, 아니 더 정확히 말해서 그 정도의 연봉이 아니면 대한민국 사회가 제시하는 평균의 삶은 포기해야 한다. 지금의 상황이라면 그 누구라도 대기업 취업을 위해 모든 것을 걸어볼 수밖에 없다. 그 확률이 아무리 낮더라도 말이다.
좌절의 수렁에서 좀처럼 헤어 나오기 힘든 것은 그다음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어두컴컴한 터널에서 나오기 위해 2, 30대는 자기계발이라는 랜턴을 하나씩 쥐고 길을 찾고 있다. 그러나 이제는 알만하다. 깜깜한 터널은 너무 길고 랜턴이 확보해주는 시야는 너무 좁은 것을. 소위 좋은 직장에 들어갔다고 해서 고민이 끝나는 것도 아니다. 대기업 평균 근속 년수가 10년이다. 그들에게는 이런 요구가 뒤따른다. '너는 직장이라도 있으니 현실에 감사하고 사다리에 오르기 위해 더 죽어라 노력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무한경쟁을 당연하 것으로 받아 들어야 하는 것이 30대에게 주어진 사회적 책무다.
선배들은 '40 들어서기 전에 네가 뭘 할지 생각해야 해'라며 앞으로의 10년이 더 어려울 것임을 예고한다. 삶이 더 어려워지는 것은 괜찮다. 그다음 뭘 할지 생각하는 것이 암담할 뿐이지. 미래에 대한 긍정적 전망을 할 수 없는 불안감과 초조함은 행복을 억누르는 가장 큰 요인이다. 현실 참... 답답하다. 이게 다 우리의 책임은 아니지 않나?
*([홈리스, 쫓겨난 아이들] 청소년 14만 명, 돌아갈 집이 없다/국민일보 2013년 7월 17일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