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도현 Aug 09. 2018

길이 없다

자본주의 행복론은 끝났다.

하필이면 스펜서 존슨의 책을 읽은 날 친한 후배 하나가 전화를 걸어 만나자고 했다. 곧 결혼하는 친구다. 집 근처 커피숍에서 만났는데 표정이 심상치 않다. 

 

“형, 도대체 결혼을 어떻게 했어?” 

 

커피 잔을 내려놓으며 불쑥하는 얘기다. 

 

“왜? 뭔가 잘 안 돼?” 

 

친동생처럼 생각하던 놈이라 말투와 표정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제수씨를 처음 만난다고 했을 때부터 나에게 상담을 받곤 했다. 대략 1년 전 즈음, 결혼하겠다고 했을 때 정말 행복해 보였다. 좀처럼 감정의 선을 잘 드러내지 않는 친구인데 결혼 이야기를 처음 했을 때는 신나 보였다. 상견례할 때까지만 해도 신이 유지되는 듯하더니 결혼 날짜가 다가오면서 얼굴이 일그러진 것이다.

 

“결혼은 다 그런 거야, 인마. 나도 똑같았지. 왜? 집 때문에 그래?” 

 

물어보나 마나 한 이야기다. 결혼을 앞둔 30대에게 가장 큰 근심거리는 집 구하는 거다. 일류대학은 아니지만 수도권에 있는 대학 나와서 소위 대기업 계열사에 취직했었다. 3년 정도 다니다가 자신의 적성에 맞는 사회복지사로 직업을 바꾼지 몇 년이 지났다. 요즘 같은 취업 대란에 직장을 다닌다는 것 자체로 감지덕지하며 살아가야 할 판이지만 대기업 계열사라고 해봐야 월급이 200만 원 수준이었다. 

 

연봉 3천이라는 숫자가 마치 취업 전선에 뛰어든 20대의 꿈이 돼버렸지만 생활 전선에서 연봉 3천은 입에 풀칠하고 겨우 100만 원 정도 저축할 수 있는 돈이다. 월 100만 원 적금 부어봐야 1년에 천 2백만 원 조금 더 모은다. 그렇게 10년 모으면 위성도시에 있는 21평짜리 빌라 전세금이다. 참 어이가 없다. 군대 다녀와서 1년간 준비한 끝에 겨우 취직했고, 이직하면서도 6개월은 자격증 공부를 해야 했다. 원래 20대가 다 그런 것 아닌가? 재수해서 스물한 살에 시작한 대학생활, 이런저런 이유로 1년 휴학. 군대에 바친 2년-사실 입대 전, 제대 후 두 학기를 버려야 했기에 근 3년의 시간-을 자신의 미래와 상관없이 보냈고 졸업 후 8개월 후에야 첫 직장을 잡을 수 있었다.

 

첫 직장. 스물여덟 여름이었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났지만 수습기간을 제외하고 온전히 직장 생활을 한 것은 4년이 조금 넘는다. 이 친구를 안 지 10년이 넘었다. 정말로 검소하고 성실한 친구다. 정말 열심히 모았을 것이다. 문제는 이 후배가 직장생활을 시작하고 얼마 가지 않아 금융위기가 찾아온 것이다. 월급 쪼개고 쪼개서 열심히 모았을 텐데 그 절반은 펀드에 들어가 있었다. 세상에 이런 비극은 없다. 금융 관련된 수많은 통계를 보지만 그 통계가 단순한 숫자가 아닌 삶의 스토리가 될 때는 절망이 되기도 한다. 열심히 부었던 펀드가 반 토막이 될 때 아무리 차분한 성격을 가진 이 후배라도 속이 타 들어갔을 것이다. 주식 투자에는 위험이 따른다고 상식적으로 알고 있어도 은행 적금만으로는 인생 견적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 또한 상식 아닌가. 은행 적금만 붓고 있으면 은연중에 비웃던 세상이 아니냔 말이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났다. 

 

대기업 계열사라고 했던 직장은 말이 좋아 대기업이지 계약직-다른 말로 비정규직-일 뿐이다. 기업 사정이 안 좋아지면 사정없이 잘리는 파리 목숨이다. 그러나 비정규직이라는 신분 자체에 크게 영향을 받지는 않았다. 착하디 착한 후배는 비정규직이라는 딱지에 개의치 않아했다. 그렇다고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곳에서는 현재만 존재할 뿐 미래가 없다. 함께 일했던 선배 동료 중에 5년을 넘기는 사람이 없었다. 일의 강도가 세다거나 박봉에 힘겨워서 그런 것이 아니다. 물론 박봉을 즐기는 사람은 없다. 그렇다고 돈이 모든 결정의 기준이 되는 것도 아니다. 직장을 떠날 수밖에 없는 것은 돈 때문이 아니라 그곳에서 미래를 그릴 수 없기 때문이다. 

 

회사도 직원의 미래에 대해서 그다지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그저 몇 년 일해주다가 나가길 바라는 듯, 직원들이 품을만한 비전에 대해서 그 누구도 말해주지 않았다. 그렇게 2년을 다니면 깨닫게 된다. 빨리 그 자리를 떠나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후배는 어려서부터 봉사를 좋아했다. 교회에서 장애인 봉사를 나갈 때 앞뒤에서 뛰어다니는 녀석이다. 주위 사람들이 사회복지사를 권한 적이 몇 번 있다. 본인도 자신의 강점이 봉사라고 생각했는지 어느 날 홀연히 사표를 내고 사회복지사 자격증 시험공부를 하더랬다. 나도 그 친구가 사회복지사에 어울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런저런 우여곡절을 거쳐 집에서 가까운 장애인 복지 시설에 취직했다. 몇 개월 지나고 만났을 때 새로운 일이 즐겁다고 말했다. 다만 얇은 월급봉투의 두께는 앞으로도 그다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애초에 월급 대박은 바라지도 않았다. 정말이지 돈이 전부는 아니니까. 그러나 결혼 앞에 서있는 후배는 자신의 과거가 한탄스럽다고 했다. 그리고 그는 앞으로 닥칠 미래를 원망했다. 누가 이 청년에게 어떤 위로를 줄 수 있을까? 

 

결혼은 참 어렵다. 사랑의 힘으로 헤쳐 나가기에는 집값이 너무 비싸다. 정말 30대를 힘들게 하는 것은 집을 사고, 아이를 낳고, 삶을 꾸려나가는데 어떤 그림도 그려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5, 60대 선배들은 직장에 들어가서 진급을 했다. 진급을 하면 연봉이 올랐다. 그리고 퇴직을 한다. 자녀가 대학을 들어갈 때, 혹은 결혼을 할 때면 퇴직 전인지 후인지를 고민했다. 40대 선배들은 그보다 조금 더 팍팍해 보인다. 40대 후반이면 회사에서 나가라 한다. 명퇴든, 자퇴든 퇴직금을 들고 자영업을 고민한다. 30대는? 퇴직할 직장이 없다. 통계조사를 보면 2010년에 30대가 총 778만 명을 넘는 것으로 나온다. 그중 고용된 30대는 573만 명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비정규직 비율이 35%를 웃돌고 그 조차도 시간강사와 같은 소위 '허울만 전문직'이나 택배기사 등 비정규직과 다름없는 '타이틀만 사장'인 사람들은 포함하지 않으니 대략적으로 400만 명이 넘는 30대가 퇴직할 직장이 없다 봐도 무방하겠다. 

 

정말 엄청난 숫자다. 보통 비정규직에 대한 신문기사나 언론의 보도를 보면 임금 격차가 주요 이슈로 부각된다. 그러나 30대에게 비정규직은 느낌이 조금 다르다. 어쩌면 월급 조금 덜 받는 것은 크게 문제 되지 않는다. 아직까지 인생의 전반전이기 때문이다. 정말 고민되는 것은 도무지 길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규직에 있으면 사정이 다를까? 물론 비정규직이 겪는 고충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40대 중반이면 태반이 회사에서 밀려나는 시대에 고민의 폭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좁은 길이라도 보이면 힘들어도 걸어갈 수 있다. 그런데 지금 대한민국 3,40대 앞에는 길 차제가 없다. 


열심히 자기계발하며 뛰다 보면 치즈를 찾을 것이라는 자본주의적 행복론은 이제 끝났다. 


P.S. 후배는 나중에 한 번 더 등장할 것이다. 그 때는 조금 더 행복해져 있을까...

작가의 이전글 자본주의식 행복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