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묘 돌봄 일지
이제 고양이는 그만 생각해. 너 자신을 위해 살아. 고양이들과 함께 살기 시작하면서, 지인들은 종종 내게 그렇게 말했다. 웃기는 소리였다. 날 살게 만든 게 고양이인데 그게 무슨 말이야.
우울증을 심하게 앓던 나는 7년 전 충동적으로 첫째 고양이를 들였다. 누군가의 보호자, 라는 타이틀을 태어나서 처음으로 가져봤다. 몇 년 지나지 않아 한 마리는 네 마리로 늘어났다. 오로지 내 손에 달린, 나만 바라보는 존재들. 매일 밥을 주고, 화장실을 치우고, 돌봐준 것뿐인데도,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어두운 터널 속에서 빠져나오게 됐다. 어느 순간부터 병원도, 약도 끊게 됐다. 고양이들 덕분이었다. 나는 결심했다. 적어도 이 아이들의 숨이 붙어있는 날까진 살아내자. 다른 건 없어.
우리 고양이들이 건강하게 오래 살았으면 좋겠어. 나의 유일한 소망은 그뿐이었다. 성질이 더러워도, 애교가 없는 무뚝뚝한 고양이어도 괜찮았다. 바라는 것처럼 고양이와 함께 하는 일상은 순조롭게 흘러가는 듯했다. 정기 검진을 받을 때마다 고양이 넷 모두 모든 수치가 좋았고, 잘 먹고 잘 놀고 잘 잤다.
고양이 두 마리에게서 이상한 느낌을 받은 건 얼마 전부터였다. 숨을 급하게 몰아쉬었고, 구토가 잦았다. 두 마리 모두 심장병과 신부전증이었다. 고작 일곱 살, 네 살짜리가.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눈앞이 암흑처럼 깜깜해졌다.
뭐가 문제였을까요. 제가 뭘 잘못해왔길래 두 마리가 다 그럴까요. 의사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글쎄요, 유전이지 뭐. 원래 품종묘들이 선천적으로 약해. 요새는 한 살 먹은 고양이도 신부전에 심장병인 경우가 많더라고. 게다가 얘네 부모들도 다 펫샵 출신이라면서요. 잘 먹였겠어? 난 아니라고 봐요.
선생님, 저는 우리 애들에게만큼은 부족함 없이 최고로 해줬어요. 저한테 들어가는 돈 아끼겠다고, 육백 오십원짜리 봉지라면으로 두 끼를, 한 번은 면만 먹고 한 번은 남은 국물에 밥 말아 먹는 한이 있어도요. 그랬는데 어떻게 저한테 이래요, 어떻게 이럴 수 있어요.
정말로 그랬다. 여느 책이나 인터넷을 뒤져보더라도 반려동물과 오래 살기 위해서는 무엇을 먹이느냐가 중요하다고 했었다. 요즘 같은 시대엔 사료나 간식 따위가 워낙 잘 나와서 조금만 신경 쓰면 스무 살까지도 거뜬히 산다고. 동네 슈퍼에서 파는 두 번째로 저렴한 사료를 먹였던 초보 집사 시절을 보냈고, 나는 어느 순간부터 큰 깨달음을 얻은 사람처럼 고양이에게 먹이는 것들을 최고급으로 바꿨다. 양육 도서를 사보고, 전문 수의사 채널을 구독했으며, 우리 아이 건강하게 오래 사는 법 같은 주제의 세미나에 참석하며 고양이를 공부했다.
전 세계에서 성분 좋기로 탑 쓰리 안에 든다는 5kg에 8만 원짜리 그레인 프리 사료와 하나에 4,500원짜리 사슴고기 캔, 직수입한 무방부제 동결건조 치킨 142g을 3만 원에 사는 게 아깝지 않았다. 싱크대 위 작은 찬장은 사람용 그릇 대신 고양이를 위한 것들로 늘 가득 차 있었다. 제주도에서 키웠다는 무항생제 닭가슴살 파우치나, 녹용과 6년근 홍삼이 들었다는 츄르, 일반 오메가3보다 흡수가 두 배는 강력하다는 크릴오일, 간에 좋은 밀크시슬, 회복에 좋은 타우린, 장을 위한 프로바이오틱스 같은 것들이었다. 찬장 문을 열어 쌓여있는 걸 보면 마음이 든든해졌다. 애들한테 잘하고 있는 거야. 경제적으로 부담은 좀 되지만, 내 고양이들을 위해서라면 이 정도는 뭐. 가난한 집사 탓에 비좁은 공간에서 사는 건 어쩔 수 없다 쳐도, 먹는 것만큼은 해줄 수 있잖아. 그러니까 최선을 다해 좋은 것들로 챙겨주리라. 어렸을 땐 정말 구질구질하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보이그룹의 가사 -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던 어머니의 마음이 무엇이었는지 조금은 알 것도 같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성분 좋기로 유명하고 비싼 사료나 간식일수록 고양이들은 싫어했다. 무방부제에 보존제 무첨가 고급육으로 만들었다는 습식 종류가 특히 그랬다. 기껏 그릇에 덜어주면 한두 번 냄새 맡고 화장실에서 똥 싼 다음 모래를 덮는 것 같은 – 그러니까 어서 이 더러운 것 치우라는 시늉을 하거나, 고개를 홱 돌리고 가버렸다. 이놈들아 이게 얼마나 비싼 건데, 이 돈이면 신전떡볶이 일 인분과 오뎅 튀김 일 인분을 먹고서도 쿨피스까지 추가로 사 먹을 수 있다고. 주는 대로 무리 없이 잘 먹는 고양이도 많다던데 왜 너희들은 이토록 별나게 구는거야, 나는 아이들이 어쩔 수 없이 야속했다.
고양이들과 실랑이를 벌이는 날들이 많아졌다. 물러설 수는 없었다. 하나뿐인 보호자니까, 마음 단단히 먹자. 장기적인 관점으로 봐야 해. 고양이와의 신경전에서 집사가 성공한 사례는 인터넷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수분 섭취량과 단백질 흡수율을 높인다 해서 건사료에서 생식으로 바꾸고자 했는데, 키우는 고양이가 먹어주질 않아 육 개월 동안 신경전을 벌였다는 이야기, 그러나 결국 성공했다는, 변도 소변도 잘 보고 모질도 좋아졌으며 열다섯 살인데도 어디 하나 아픈데 없이 아주 건강하다는 해피엔딩으로 끝난 이야기 같은 것들.
준비해둔 습식을 고양이들이 거부하는 날이면, 배가 고파 어쩔 수 없이 먹을 때까지 아이들에게 다른 건 일절 주지 않았다. 고양이들의 거부 시위가 하루 이상 길어질 때는 특단의 조치를 했다. 습식을 믹서기에 곱게 갈아 마시기 좋게 만든 뒤, 빈 주사기에 넣어 강제로 급여하는 것. 무릎에 고양이를 앉혀두고 왼손으로 머리를 단단히 고정한 다음, 강제로 벌린 입 안에 주사기를 밀어 넣었다. 고양이들은 마치 사약을 받아먹는다는 듯이 캑캑거리며 괴로워했고 입 밖으로 반 이상을 다시 뱉어내며 몸부림쳤다. 그럴 때마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속이 탔고 여러 번 포기할까 망설이게 됐지만, 건강하게 오래 살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떠올리면 포기할 수 없었다. 게다가 너희는 아직 어리니까. 지금 조금만 고생해서 익숙해지면 앞으론 장밋빛 미래라고. 지금 난 너희를 괴롭히는 게 아니라, 오래오래 건강하게 살라고 이러는 거야. 그러니까 제발 먹어줘. 너희 어렸을 때 멋모르고 사줬던, 성분이 정확히 뭔지도 모르는 거지 같은 간식은 그만 좀 잊으라고.
적당히 무심해야지. 너무 잘해주려고 해서 그래. 보이거든요. 저 사람이 애들을 어느 정도로, 얼마나 끔찍하게 챙기는지가. 근데 이상하게 그런 애들이 더 빨리 아프더라고. 주변에 한번 봐요. 일 년에 한 번 병원에 올까, 말까 하는 집에 사는 고양이들이 더 오래 살아.
우리 아이들에게 시간이 얼마나 남았냐는 내 물음에 의사는 반년이 될지 일 년이 될지는 장담할 수 없다고 했다. 그저 속도에 달린 거라고, 느리게 혹은 빠르게 나빠지는 과정만 남았다고 했다. 혈압약 한 종류와 신장 보조제 네 종류를 처방받았다.
다섯 알씩 아침저녁으로 먹이세요. 피하수액도 해야 하니 50mL 주사기랑 수액 팩 세트도 스무 개 받아 가시고요. 의사가 말했다.
신부전 애들에겐 피하수액이 생명수에요. 망가진 신장 대신 일 하게 하니까. 내가 멍하니 수액 팩 세트를 바라보자, 의사는 그 자리에서 수액 팩 하나를 깠고, 시범을 보이면서 내게도 해보라고 했다. 고양이의 목덜미를 왼쪽 검지와 엄지로 짚은 뒤, 늘어난 피부 사이로 바늘을 찔러 넣었다. 고양이가 움찔, 하며 짧게 울음소리를 뱉었다. 매일 두 번씩 내 새끼를 찔러야 한다. 나는 다리에 힘이 빠졌고, 그대로 자리에 주저앉았다.
뭘 울고 그래요. 앞으로 울 일 천지야. 보호자가 마음 단단히 먹어야지.
집으로 돌아와 찬장을 열어 약을 정리하다가, 일 년 전쯤 고양이용품 박람회에서 사은품으로 받았던 싸구려 캔을 발견했다. 구아검, 잔탄검, 카라기난. 평소 절대 먹이지 않는 증점제 성분이 사용원료에 떡하니 표기되어 있어 치워놨던 것이었다. 유통기한을 보니 앞으로 삼 주 남짓. 쓰레기봉투에 담아 버리려는데 달그락 소리가 났던 걸까. 오랜 진료로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책상 아래 구석으로 기어들어 가, 몇 시간을 웅크리고 있던 고양이들이 하나둘 고개를 내밀었다. 잠깐 고민하다가, 캔 안에 있던 내용물을 그릇에 덜어냈다. 고양이 네 마리가 가까이 다가와 어서 바닥에 내놓으라며 냥 냥 거렸다. 그릇을 내려놓았다. 고양이들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고개를 그릇 안으로 들이밀었다. 나는 그대로 아이들 곁에 웅크리고 앉아, 그릇 안이 깨끗하게 비워지는 걸 지켜보았다. 기분이 좋을 때 아이들이 내는 골골 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