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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보래 May 26. 2022

너를 위한 레시피

노묘 돌봄 일지

 

이제 고양이는 그만 생각해.  자신을 위해 살아. 고양이들과 함께 살기 시작하면서, 지인들은 종종 내게 그렇게 말했다. 웃기는 소리였다.  살게 만든  고양이인데 그게 무슨 말이야.


우울증을 심하게 앓던 나는 7  충동적으로 첫째 고양이를 들였다. 누군가의 보호자, 라는 타이틀을 태어나서 처음으로 가져봤다.   지나지 않아  마리는  마리로 늘어났다. 오로지  손에 달린, 나만 바라보는 존재들. 매일 밥을 주고, 화장실을 치우고, 돌봐준 것뿐인데도, 영원히 끝나지 않을  같던 어두운 터널 속에서 빠져나오게 됐다. 어느 순간부터 병원도, 약도 끊게 됐다. 고양이들 덕분이었다. 나는 결심했다. 적어도  아이들의 숨이 붙어있는 날까진 살아내자. 다른  없어.


우리 고양이들이 건강하게 오래 살았으면 좋겠어. 나의 유일한 소망은 그뿐이었다. 성질이 더러워도, 애교가 없는 무뚝뚝한 고양이어도 괜찮았다. 바라는 것처럼 고양이와 함께 하는 일상은 순조롭게 흘러가는 듯했다. 정기 검진을 받을 때마다 고양이 넷 모두 모든 수치가 좋았고, 잘 먹고 잘 놀고 잘 잤다.

고양이  마리에게서 이상한 느낌을 받은  얼마 전부터였다. 숨을 급하게 몰아쉬었고, 구토가 잦았다.  마리 모두 심장병과 신부전증이었다. 고작 일곱 ,  살짜리가. 세상이 무너지는  같았다. 눈앞이 암흑처럼 깜깜해졌다.


뭐가 문제였을까요. 제가  잘못해왔길래  마리가  그럴까요. 의사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글쎄요, 유전이지 . 원래 품종묘들이 선천적으로 약해. 요새는   먹은 고양이도 신부전에 심장병인 경우가 많더라고. 게다가 얘네 부모들도  펫샵 출신이라면서요.  먹였겠어?  아니라고 봐요.


선생님, 저는 우리 애들에게만큼은 부족함 없이 최고로 해줬어요. 저한테 들어가는  아끼겠다고, 육백 오십원짜리 봉지라면으로  끼를,  번은 면만 먹고  번은 남은 국물에  말아 먹는 한이 있어도요. 그랬는데 어떻게 저한테 이래요, 어떻게 이럴  있어요.


정말로 그랬다. 여느 책이나 인터넷을 뒤져보더라도 반려동물과 오래 살기 위해서는 무엇을 먹이느냐가 중요하다고 했었다. 요즘 같은 시대엔 사료나 간식 따위가 워낙  나와서 조금만 신경 쓰면 스무 살까지도 거뜬히 산다고. 동네 슈퍼에서 파는  번째로 저렴한 사료를 먹였던 초보 집사 시절을 보냈고, 나는 어느 순간부터  깨달음을 얻은 사람처럼 고양이에게 먹이는 것들을 최고급으로 바꿨다. 양육 도서를 사보고, 전문 수의사 채널을 구독했으며, 우리 아이 건강하게 오래 사는  같은 주제의 세미나에 참석하며 고양이를 공부했다.


 세계에서 성분 좋기로  쓰리 안에 든다는 5kg 8 원짜리 그레인 프리 사료와 하나에 4,500원짜리 사슴고기 , 직수입한 무방부제 동결건조 치킨 142g 3 원에 사는  아깝지 않았다. 싱크대  작은 찬장은 사람용 그릇 대신 고양이를 위한 것들로  가득  있었다. 제주도에서 키웠다는 무항생제 닭가슴살 파우치나, 녹용과 6년근 홍삼이 들었다는 츄르, 일반 오메가3보다 흡수가  배는 강력하다는 크릴오일, 간에 좋은 밀크시슬, 회복에 좋은 타우린, 장을 위한 프로바이오틱스 같은 것들이었다. 찬장 문을 열어 쌓여있는  보면 마음이 든든해졌다. 애들한테 잘하고 있는 거야. 경제적으로 부담은  되지만,  고양이들을 위해서라면  정도는 . 가난한 집사 탓에 비좁은 공간에서 사는  어쩔  없다 쳐도, 먹는 것만큼은 해줄  있잖아. 그러니까 최선을 다해 좋은 것들로 챙겨주리라. 어렸을  정말 구질구질하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보이그룹의 가사 -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던 어머니의 마음이 무엇이었는지 조금은  것도 같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성분 좋기로 유명하고 비싼 사료나 간식일수록 고양이들은 싫어했다. 무방부제에 보존제 무첨가 고급육으로 만들었다는 습식 종류가 특히 그랬다. 기껏 그릇에 덜어주면 한두  냄새 맡고 화장실에서   다음 모래를 덮는  같은 – 그러니까 어서  더러운  치우라는 시늉을 하거나, 고개를  돌리고 가버렸다. 이놈들아 이게 얼마나 비싼 건데,  돈이면 신전떡볶이  인분과 오뎅 튀김  인분을 먹고서도 쿨피스까지 추가로  먹을  있다고. 주는 대로 무리 없이  먹는 고양이도 많다던데  너희들은 이토록 별나게 구는거야, 나는 아이들이 어쩔  없이 야속했다.


고양이들과 실랑이를 벌이는 날들이 많아졌다. 물러설 수는 없었다. 하나뿐인 보호자니까, 마음 단단히 먹자. 장기적인 관점으로 봐야 . 고양이와의 신경전에서 집사가 성공한 사례는 인터넷에서 쉽게 찾아볼  있었다. 수분 섭취량과 단백질 흡수율을 높인다 해서 건사료에서 생식으로 바꾸고자 했는데, 키우는 고양이가 먹어주질 않아  개월 동안 신경전을 벌였다는 이야기, 그러나 결국 성공했다는, 변도 소변도  보고 모질도 좋아졌으며 열다섯 살인데도 어디 하나 아픈데 없이 아주 건강하다는 해피엔딩으로 끝난 이야기 같은 것들.


준비해둔 습식을 고양이들이 거부하는 날이면, 배가 고파 어쩔  없이 먹을 때까지 아이들에게 다른  일절 주지 않았다. 고양이들의 거부 시위가 하루 이상 길어질 때는 특단의 조치를 했다. 습식을 믹서기에 곱게 갈아 마시기 좋게 만든 ,  주사기에 넣어 강제로 급여하는 . 무릎에 고양이를 앉혀두고 왼손으로 머리를 단단히 고정한 다음, 강제로 벌린  안에 주사기를 밀어 넣었다. 고양이들은 마치 사약을 받아먹는다는 듯이 캑캑거리며 괴로워했고  밖으로  이상을 다시 뱉어내며 몸부림쳤다. 그럴 때마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속이 탔고 여러  포기할까 망설이게 됐지만, 건강하게 오래 살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떠올리면 포기할  없었다. 게다가 너희는 아직 어리니까. 지금 조금만 고생해서 익숙해지면 앞으론 장밋빛 미래라고. 지금  너희를 괴롭히는  아니라, 오래오래 건강하게 살라고 이러는 거야. 그러니까 제발 먹어줘. 너희 어렸을  멋모르고 사줬던, 성분이 정확히 뭔지도 모르는 거지 같은 간식은 그만  잊으라고.


적당히 무심해야지. 너무 잘해주려고 해서 그래. 보이거든요.  사람이 애들을 어느 정도로, 얼마나 끔찍하게 챙기는지가. 근데 이상하게 그런 애들이  빨리 아프더라고. 주변에 한번 봐요.  년에   병원에 올까, 말까 하는 집에 사는 고양이들이  오래 살아.


우리 아이들에게 시간이 얼마나 남았냐는  물음에 의사는 반년이 될지  년이 될지는 장담할  없다고 했다. 그저 속도에 달린 거라고, 느리게 혹은 빠르게 나빠지는 과정만 남았다고 했다. 혈압약  종류와 신장 보조제  종류를 처방받았다.


다섯 알씩 아침저녁으로 먹이세요. 피하수액도 해야 하니 50mL 주사기랑 수액  세트도 스무  받아 가시고요. 의사가 말했다.


신부전 애들에겐 피하수액이 생명수에요. 망가진 신장 대신  하게 하니까. 내가 멍하니 수액  세트를 바라보자, 의사는  자리에서 수액  하나를 깠고, 시범을 보이면서 내게도 해보라고 했다. 고양이의 목덜미를 왼쪽 검지와 엄지로 짚은 , 늘어난 피부 사이로 바늘을 찔러 넣었다. 고양이가 움찔, 하며 짧게 울음소리를 뱉었다. 매일  번씩  새끼를 찔러야 한다. 나는 다리에 힘이 빠졌고, 그대로 자리에 주저앉았다.


 울고 그래요. 앞으로   천지야. 보호자가 마음 단단히 먹어야지.


집으로 돌아와 찬장을 열어 약을 정리하다가,   전쯤 고양이용품 박람회에서 사은품으로 받았던 싸구려 캔을 발견했다. 구아검, 잔탄검, 카라기난. 평소 절대 먹이지 않는 증점제 성분이 사용원료에 떡하니 표기되어 있어 치워놨던 것이었다. 유통기한을 보니 앞으로   남짓. 쓰레기봉투에 담아 버리려는데 달그락 소리가 났던 걸까. 오랜 진료로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책상 아래 구석으로 기어들어 ,  시간을 웅크리고 있던 고양이들이 하나둘 고개를 내밀었다. 잠깐 고민하다가,  안에 있던 내용물을 그릇에 덜어냈다. 고양이  마리가 가까이 다가와 어서 바닥에 내놓으라며   거렸다. 그릇을 내려놓았다. 고양이들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고개를 그릇 안으로 들이밀었다. 나는 그대로 아이들 곁에 웅크리고 앉아, 그릇 안이 깨끗하게 비워지는  지켜보았다. 기분이 좋을  아이들이 내는 골골 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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