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중얼 Mar 06. 2022

[영화] 시라노, 조 라이트

눈과 귀가 호강하는 뮤지컬 영화의 정수

! 스포일러에 주의하세요 !



개봉 전부터 워낙 기대하던 작품이라 개봉하자마자 보러 가려고 했는데, 롯데시네마 단독개봉이라니? ㅠㅠ

메가박스를 주로 이용하는 나로서는 너무나 아쉬울 수밖에..

그래도 생일에 선물 받았던 롯데시네마 관람권이 있어서 행복한 마음으로 보러 다녀올 수 있었다.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번 감사해요♥ 헤헷


그래도 개봉하자마자 보지는 못해서 롯데시네마 Signature Art Card는 놓쳤다... 눙물

3월 2일부터는 엽서 3종 세트를 일부 극장에서 증정한다고 하는데, 시간표도 너무 줄어들고 빨리 영화도 보고 싶어서 그냥 포기했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관심 있는 분들은 롯데시네마 홈페이지나 앱을 통해 진행극장 확인하시고 보러 가시길~



영화를 보고 싶던 가장 큰 이유는 피터 딘클리지였다.


<왕좌의 게임>을 보다가 처음 알게 된 줄 알았는데, 지금 찾아보니 그전에 나온 작품에서도 많이 봐 왔구나.

그래도 확실히 인상이 각인된 건 그때였다.

티리온 라니스터.

뛰어난 능력을 갖추고 태어났지만, 완벽주의자인 그의 아버지에게 왜소증이 있는 아들은 언제나 가리고 싶은 흠이었고, 그렇기에 자신의 능력을 숨기고 방탕하게 산다.

그 안에서 인간적인 고뇌와 재능을 너무나 잘 표현해줬다. 당신은 최고


그리고 <퍼펙트 케어>(2020)에서도 로자먼드 파이크와 아주 멋진 호흡을 보여줬다.

믿고 보는 배우가 바로 이런 때 쓰는 말.




영화를 보고 싶던 두 번째 이유는, 원작인 희곡을 너무나 재밌게 봤기 때문이다.

897년 발표된 에드몽 로스탕의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


고전 작품들은 문체가 어려워 읽기는 힘들지만, 그래도 오랜 기간 사랑받는 데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해서 종종 찾아서 읽어보는 편이다.

그리고 자주 후회한다.

너무 읽기 어려워서.

그래도 펼친 게 억울해 끝까지 읽는데,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는 달랐다.

너~무 흥미진진하고 지금 읽어도 전혀 무리 없는 전개에 이게 바로 고전인가!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감탄하며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인지 시라노는 여러 모습으로 새롭게 만들어지기도 했다.


1950년에 미국에서 제작된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 1990년 프랑스에서 제작된 영화, 1987년에 미국에서 또 제작된 영화, 계속해서 새롭게 탄생했다.

그리고 뮤지컬로 만들어지기도 했고, 우리나라에서는 <시라노; 연애조작단>(2010), tvN 드라마 <연애조작단 ; 시라노>(2013) 등이 원작을 모티브로 하여 새롭게 만들어졌다.


원작과 이번 영화에서 가장 다른 점은 어떤 외모 콤플렉스를 선택했는가인데, 원작에서의 시라노는 아주 크고 괴상하게 생긴 코가 콤플렉스이다.

개인적으로는 이번 영화에서 좋은 선택을 한 것 같다.


희곡도 아주아주 추천한다.

나도 생각난 김에 다시 읽어봐야지.

(밀린 책 너무 많은 것은 문제..)




누가 내게 말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어떤 역경이 찾아와도 떠나지 않겠다고.

시라노(2021) 중 'Someone to say' 



줄거리는 이렇다.

몰락한 귀족의 딸 록산(헤일리 베넷)은 왕국에서 왕 다음으로 가장 높은 공작(벤 멘델슨)의 총애를 받고 있다.

모두 그녀가 공작과 결혼해야 한다고 하지만, 그녀는 진정한 사랑이 찾아오길 기대한다.

어느 날, 공작과 연극을 보러 간 자리에서 보게 된 신입 근위병 크리스티앙(켈빈 해리슨 주니어)과 첫눈에 사랑에 빠지게 되고, 다음 날 그녀는 시라노에게 크리스티앙에 대한 사랑을 고백한다.

어려서부터 그녀를 흠모하고 있던 시라노는 크게 낙심하지만, 사랑하는 그녀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어 그녀를 돕기로 한다.

그녀가 편지를 기다리고 있다는 말을 크리스티앙에게 전하지만, 그는 싸움 밖에 할 줄 모르는 남자였고, 시라노가 그의 편지를 대신 써주게 된다.


늘 그랬듯이 명 받들어야죠.

시라노(2021), 시라노의 대사


이렇게 기대를 하고 보면,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영화들도 많이 있는데 <시라노>는 그렇지 않았다.

시작부터 압도했고, 마지막까지 훌륭했다.

뮤지컬 영화를 만들려면 이렇게 만들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연기와 넘버(뮤지컬에서 나오는 노래를 뜻함)의 전환이 너무나 자연스럽고, 일부 음악은 힙합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읊조리는 톤이나 리듬감이 최고였다. (동생도 같은 감상을 남김. 역시 내 영화 파트너♥)


엔딩크레딧에서 사운드 디자이너가 누구인지 찾아볼 정도로 사운드 디자인이 정말 훌륭했다.

소리의 균형이 정말 압권이었고, 적재적소에서 빛났다.


거기에 왜 아카데미 촬영상에 왜 노미네이트되지 않았는지 이해되지 않을 정도로 아름다운 화면 연출에 감동했다.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의상상 부문,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 의상상, 미술상, 메이크업&헤어 4개 부문에 이름을 올림)

빵집에서의 제빵 장면이나 제식 훈련 중의 안무들은 근래에 본 적 없던 아름다운 안무였다.

배경은 중세지만, 너무나 현대적인 안무가 녹아있어 같이 영화에 녹아들어 감상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말해 뭐해, 매력 넘치는 배우들의 명연기가 영화를 더 빛나게 만들었다.

피터 딘클리지는 원래부터 너무너무 기대하고 봤으니 넘어간다고 쳐도, 헤일리 베넷의 매력에 퐁당 빠져버렸다.

처음 보는 배우인데 왜 이렇게 익숙한 느낌이 들지? 했더니 <스왈로우>의 배우였다.

영화는 보진 않았지만, 포스터가 너무 강렬해 기억에 남았었는데, 왓챠에서 넘기다가 자주 봐서 더 그랬던 것 같다.


시라노에, 공작에, 크리스티앙까지 모두 반할 수밖에 없었겠다 납득하게 만든다.

나도 같이 반해버림~

노래도 너무 잘하고, 작은 포인트들도 잘 살려냈다.



특히 감명 깊었던 부분들은 시라노가 대신 써준 편지를 읽고 크리스티앙에게 더 큰 애정을 느끼게 되는 장면들이었다.

편지와 사랑에 빠지는 것 같은 표현을 너무 잘 해줬다.

연출도 연출이었는데 배우도 정말 잘 살려줘서 그 사랑이 점점 더 커지는 게 느껴졌다.

그냥 애정을 뛰어넘어 성애를 느끼는 수준으로까지 보이게 의도한 것 같은데, 그게 적어도 나에게는 굉장히 잘 와닿았다.

조 라이트 감독은 이미지로의 표현이 정말 강한 감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쟁 장면에서도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가 어떻게 나온 말인지 여실히 느낄 수 있다.)


그저 최고.

조 단역 배우들까지 모든 배우의 합이 참 잘 맞았다.

매번 가는 길이 행복한 촬영이 아니었을까 짐작해본다.


극 중의 모든 인물은 서로를 속이고 이용하며 사랑한다.


록산은 공작의 돈과 지위를 위해 사랑하는 척 속이고, 인지하지는 못했지만, 시라노의 마음을 짓밟고 그에게 자신의 사랑을 도와달라며 부탁까지 한다.

시라노는 대필 편지에서 자신의 마음을 열렬히 표현하고 싶어 크리스티앙이라는 껍데기를 이용하고, 록산 앞에서는 철저히 감춘다.

크리스티앙은 자신의 무지와 섬세하지 않은 모습을 감추기 위해 시라노의 편지를 이용한다.

공작 또한 자신의 돈과 지위 때문에 록산이 어쩌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그 점을 충분히 이용해 그녀를 손안에 두고 흔들려 한다.


'What I Deserve'에서 자신이 마땅히 누려야 할 것들이 있다는 그의 편지와 태도는 오만한 공작의 캐릭터를 아주 잘 보여주는 넘버다.


간혹 누군가의 첫 의도는 좋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내 욕망을 채우기 위해 서로를 기만하는 일에 더 열성적으로 된다.


내가 그녀를, 그를 사랑하는 것인지,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다는 그 사실 자체를 사랑하게 된 것인지 우리는 현실에서도 종종 자신에게 묻는다.

바깥에서 바라보는 우리는 그게 잘 보이지만, 그게 내가 되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녀가 선택하게 해야 해요.

<시라노>(2021), 크리스티앙의 대사



전쟁의 한복판에 던져진 크리스티앙과 시라노.

시라노는 여전히 그녀에게 편지를 보내는 일에 집착하고 있다.

죽음을 목전에 둔 크리스티앙은 오히려 눈뜨게 된다.


크리스티앙이 노래 부르는 것만큼이라도 말할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왜 이렇게 극단적일까.

안타까운 사랑의 화살표들은 갈 길을 잃어버린다.




왜 지금 밝히는 거죠?
- 오늘이 내 마지막 날이니까. 내가 사랑한 건 내 자존심이었어.

<시라노>(2021), 록산과 시라노의 대화


사랑할 때 우리는 자존심을 쉽게 버리지 못한다.

그게 우리가 사랑을 놓치게 되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사랑은 옛날 사람들에게도, 지금의 우리에게도

극 속의 인물들에게도, 나에게도 여전히 너무나 어려운 일이다.

사랑이 쉬워지는 때가 과연 올까?

자존심만 놓는다면 사랑은 계속될까?



나도 편지 받는 걸 굉장히 좋아하는데, 이 이야기에서는 글의 힘을 더 강력하게 느끼게 해준다.


특히 'I Need More'에서 단순한 '사랑해'가 아닌 사랑의 표현들이 록산에게 얼마나 의미 있고 강력한지 보여주며, 글과 편지의 힘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게 해준다.


5가지 사랑의 언어가 있다고 한다.

'인정하는 말,' '함께하는 시간', '선물', '봉사', '스킨십'

나의 사랑의 언어를 상대방에게 아무리 많이 쏟아부어도, 그가 사랑이라 느끼지 못하는 것이라면 그는 사랑받지 않은 것이 된다.


서로의 언어를 이해하고 맞춰가는 것까지가 사랑인 거겠지.

그 어려움을 기꺼이 함께하고 싶은 이가 나타나길.

록산처럼 바라본다.



아이들은 사랑이 필요하고, 어른들은 돈이 필요해요.
사랑은 1, 2년이고, 그 이후는 타협과 현실이에요.

시라노(2021), 유모 마리(모니카 돌란)의 대사








매거진의 이전글 [영화] 우리가 사랑이라고 믿는 것, 윌리엄 니컬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