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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류 Feb 16. 2024

실격의 조건

안전거리의 필요성

자격시험에는 실격처리되는 기준이 있다. 기준은 바로 '안전거리'다. 조종자와 비행체 간의 안전거리 15미터를 안으로 침범할 경우 실격 처리가 된다.


안전거리를 침범하는 케이스는 다양하다. 대표적으로 의도하는 경우와 의도하지 않는 경우다. 의도하지 않는 경우는 자연에 의해 발생하는 상황으로 바람이 이에 해당한다. 드론은 바람의 영향을 많이 받는 작은 비행체라 바람에 강도에 따라 원치 않아도 드론이 안전거리를 침범하는 경우가 잦다. 의도하는 경우는 조작 실수를 이야기한다. 물론 본인의 생각은 의도하지 않았을지 몰라도 시험 규정에는 그리 명시가 되어 있는 것이다. 특히 많이 실수하는 2가지는 측풍접근과 원주 비행이다. 측풍 접근은 드론이 오른쪽 방향을 보고 있다가 다시 왼쪽 뒤로 돌아와야 하는데 그때 키를 과도하게 우측 하단으로 밀었을 때 안전거리를 침범할 수 있다. 원주 비행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한 바퀴를 돌고 돌아올 때 안전거리 안쪽으로 침범하는 케이스가 발생한다.


안전거리 내로 들어왔다고 해서 들어오는 즉시 실격처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안전거리 내로 들어왔더라도 수정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조종자는 안전거리 내로 들어온 것이 인지되면 안전거리 밖으로 드론을 조정해서 나가면 된다. 하지만 이런 기회가 주어짐에서 실격처리가 되는 경우가 한 가지 있는데 그건 바로 '정지' 구호를 외치는 순간이다. 정지 구호를 외친다는 건 현재 드론의 위치가 안전거리 내에 있다는 걸 인지하지 못한 케이스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자격시험에서 '안전거리'를 배우면서 일상에서도 우리 자신을 지키기 위해 안전거리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심리학 용어 중 '퍼스널 스페이스(personal space)'라는 말이 있다. 개인이 쾌적하게 있기에 필요한 점유공간이라는 말로, 나라마다 사람들이 적절하다고 생각하는 거리는 다르다. 일본은 1.01미터, 미국은 89센티미터 정도라 한다. 미국인보다 일본인이 안전거리를 더 길게 둔다는 얘긴데 한국인은 아마도 미국인보다 일본인에 가까울 것이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낯선 사람과 가까이 있게 될 때 불편한 이유, 지하철에서 자리가 났을 때 최대한 떨어져 앉으려는 것도 이 퍼스널 스페이스를 지키려는 본능 때문이다. 내 기준에서 퍼스널 거리는 1.5미터다. 드론 안전거리의 1/10 정도. 이 정도가 딱 나의 안전을 지킬 수 있는 퍼스널 스페이스라 생각한다. 


문화인류학자 에드워드 홀은 "퍼스널 스페이스란 단순히 물리적 거리만을 뜻하지 않는다. 마음의 거리다"라고 말한 바 있다. 낯선 사람과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날씨 정도를 화제에 올릴 뿐이지만 친분이 있는 사람과는 가까이 앉아 깊이 있는 주제를 이야기할 수 있는 이유도 마음의 스페이스가 다르기 때문이다. 


'안전거리'는 드론뿐만 아니라 개인에게도 반드시 필요한 거리다. 살다 보면 원치 않는 환경에 자주 노출되어 상처를 입거나 해를 입는 경우가 많다. 나의 공간을 문득문득 침범하는 사람들은 대개 나를 잘 모르고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이다. 그런 이들에게 나의 공간을 열어 보일 필요는 없다. 평정을 유지하면서 나만의 고유한 공간 감각을 고수하기란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만큼 가치 있는 일임은 확실하다. 이는 결국 '나를 지키는 법'과도 관련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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