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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마스 Nov 25. 2018

점심 도시락

나에게 도시락은 학창 시절의 기억들을 떠올리게 한다. 유치원부터 시작된 점심 도시락은 초등학교, 중학교를 거쳐 고등학교까지 이어졌다. 특히 그 가운데서도 점심과 저녁을 위해 두 개의 도시락을 싸갔던 고등학교 시절이 가장 강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친구들과 쉬는 시간 동안 5-7분 만에 도시락을 다 먹어치웠던 그 시절). 대학에 들어가며 도시락과는 자연스레 이별을 했고, 이후부터 도시락이라고 하면 자연스레 한솥도시락이나 편의점 도시락처럼 시중에서 판매되는 것들을 떠올리게 되었다.


하지만 서른이 넘어 미국에 공부를 하러 오게 된 이후, 한동안 잊고 지냈던 도시락이 나의 생활 한가운데로 들어오게 되었다. 일단, 박사과정 입학 동기들 가운데 점심 도시락을 싸오는 아이들이 많았다. 플라스틱 반찬통에 샐러드나 파스타, 치킨 등을 넣어오거나 지퍼락에 샌드위치를 싸온 뒤, 교실이나 오피스 책상, 벤치, 잔디밭 같은데 앉아서 혼자서 먹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학생들 뿐만 아니라 교수님들도 도시락을 싸오는 경우가 많았다. 20대 이후 점심은 항상 밖에서 사 먹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내게, 이런 미국의 도시락 문화는 신선하게 다가왔다.

그럼 다들 왜 이렇게 도시락을 싸오는 것일까? 무엇보다 집에서 도시락을 싸오면 외식비를 많이 줄일 수 있다. 가령 점심 한 끼를 식당의 테이블에 앉아서 먹을 경우 서버한테 주는 팁까지 합해 적지 않은 비용이 들어간다. 그래서 밖에서 점심을 먹게 되더라도 보통은 팁을 줄 필요가 없는 테이크 아웃 메뉴를 선택하는 아이들이 많고, 음식 메뉴도 일단 큰 사이즈를 시켜서 절반은 점심때 먹고, 나머지 절반은 저녁으로 먹는 경우가 많았다.


또 하나의 이유는 시간을 아낄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시절을 떠올려보면, 점심시간에 동료들과 식당에서 점심을 먹은 뒤 커피를 한잔 들고 수다를 떨며 산책을 하는 것이 큰 즐거움이었다. 그러나 미국에 온 이후로는 점심을 먹으러 오며 가며 뺏기는 시간뿐만 아니라, 주문한 음식을 기다리는 시간도 아깝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반면, 도시락을 싸오면 오피스 책상에 앉아서 하던 일을 하다가 배가 고플 때 도시락을 꺼내서 바로 먹을 수 있었다. 밥을 먹으면서 하던 일을 계속하고, 다 먹고 나서도 도시락을 가방에 넣은 뒤 다시 하던 일을 하는 것이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박사과정에 있는 대부분의 아이들이 이런 식으로 점심을 먹었다. 결과적으로 도시락 덕분에 돈도 시간도 많이 절약되었다.


미국에 온 이후, 혼자서 신문을 보며 도시락을 먹는 것이 자연스러운 모습이 되었다


한국에서의 점심식사가 단조로운 직장 생활의 탈출구 같은 것이었다면, 미국에서의 점심식사는 최소의 시간을 들여 배고픔을 해결하는 단순한 행위가 되었다. 근데 이런 변화가 생각보다 크게 나쁘지 않았다. 아니, 생각해보면 이건 좋고 싫음의 문제가 아니라, 그저 문화의 차이인 것이다. 한 가지 분명한 점은, 미국에 있는 동안만큼은 계속 지금처럼 도시락을 먹을 생각이지만, 한국에 돌아가면 다시 도시락을 쌀 일은 없을 것이라는 것이다. 한국에서의 점심 문화는 그 나름의 매력이 있고 미국에서의 점심 도시락은 또 나름의 장점이 있으니, 나는 그저 그 장소의 고유한 문화를 따르면 되는 것이다.


사실 내가 이렇게 점심으로 도시락을 먹을 수 있게 된 데는 아내의 영향이 컸다. 육아 때문에 힘든 와중에도, 토쥬맘이 늘 기꺼이 아침마다 남편을 위해 도시락을 싸주었다. 아내가 정성껏 만들어준 도시락을 학교에서 꺼낼 때마다 얼마나 고맙고, 또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돌이켜보면 유학생활의 큰 소득 가운데 하나로 도시락 덕분에 아내와의 사랑이 더 깊어졌다는 것을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지금까지 남편을 위해 열심히 도시락을 싸준 아내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하며 이번 글을 마무리 짓고자 한다. (너무 자랑해서 죄송!)


보온 도시락에 아내가 싸준 점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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