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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마스 Jul 09. 2020

2주간의 기러기 생활(3)

어느새 1주일의 시간이 흘러서 아내와 아들이 한국행  비행기를 타는 날이 되었다. 불과 1주일 전, 비행기 타기 전에 조금이나마 편하게 쉬길 바라는 마음에서 호텔을 예약했다가, 오히려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돈만 날린 경험을 교훈 삼아 이번에는 그냥 새벽에 집에서 출발하기로 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짐들을 먼저 차에 싣고, 토쥬군을 마지막에 차에 태워 바로 출발하는 것으로 계획을 세웠다. 공항에 입고 갈 옷을 전날 밤에 미리 입혀놓고 재운 뒤, 자고 있는 토쥬군을 그대로 안고 카시트에 눕히기만 하면 작전 성공!


미리 계획한 대로, 이불속에서 곤히 잠들어 있는 토쥬군을 이불로 감싼 다음 조심조심 안고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토쥬군이 차에 타기 직전에 깜짝 놀라면서 깬다.

아빠, 우리 지금 어디 가는 거예요?
응, 아들. 한국 가는 비행기 타러 우리 지금 공항으로 가는 거야. 아빠가 운전할 테니깐, 토쥬는 그냥 카시트에 앉아서 계속 코야 하세요


하지만 토쥬군은 공항으로 가는 내내, 뒷좌석에 앉아 말똥말똥 눈을 뜨고 밖에 보이는 도로 표지판들을 구경한다.


공항에 도착하니, 아직 동이 트지 않아 밖은 여전히 어둑어둑하다. 공항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트렁크에서 캐리어를 꺼내 공항 체크인 카운터로 이동했다.  캐리어 바퀴가 드륵드륵 굴러가는 소리가 적막한 새벽을 깨운다.


체크인 카운터에서 아내와 아들의 티켓을 발권하고, 캐리어는 위탁수하물로 보냈다. 그리고 보안검색대로 이동했는데, 그제야 아내와 아이랑 2주 동안 떨어져 있어야 한다는 것이 실감 나기 시작했다. 보안검색대로 들어가는 입구 앞에서 아내와 아들을 한 번씩 꼭 안아줬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아빠가 우는 모습을 보고 토쥬군의 얼굴 표정도 살짝 굳어졌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눈물을 참았어야 했던 것 같다. 어린 아들 마음에는, 그때 아빠를 두고 엄마랑만 한국에 간 게 적지 않은 상처가 되었는지 한국에 있는 내내 "아빠 두고 와서 싫었어요"라고 말했다고 한다. 미국으로 돌아와서도 한동안 "다음에 한국에 갈 때는 꼭 아빠랑도 같이 갈 거예요. 아빠랑 같이 안 가면 한국 안 갈래요"라고 말하는 걸 보니 아빠로서 얼마나 미안하고 고맙던지...


아무튼, 먼발치에서 토쥬맘과 토쥬군이 보안검색대를 통과해서 탑승게이트로 이동하는 걸 바라보고 다시 발걸음을 주차장으로 옮겼다. 그런데 마치 방금 연인과 이별하고 돌아선 사람처럼, 나는 주차장으로 가는 내내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질 것 같았다.


방금 전까지 셋이서 함께 걸었던 이 길을 이제는 혼자가 되어 되돌아가니, 아내와 아이를 한동안 못 본다는 사실이 더욱 절실히 느껴졌다. 자동차에 타자, 참았던 눈물이 터진다. 벌써부터 이렇게 보고 싶은데, 2주를 어떻게 견딜 수 있을까...


새벽 일찍 곤히 잠들어 있던 토쥬군 모습을 생각하니 뭉클했다. 늘 껌딱지처럼 붙어있던 아내와 아이랑 떨어지고 나니, 이제 이곳에 나 혼자만 외톨이가 되어 남겨진 것 같다는 생각에 이 공간이 갑자기 낯설게 느껴졌다.


차를 타고 집으로 오는 내내 기분이 안 좋았는데, 특히 우리가 사는 도시의 경계에 접어들자 지금까지 여기서 함께 만들었던 추억들이 하나씩 하나씩 떠올라서 더욱 슬퍼졌다. 겨우 2주일 동안 떨어져 있는 것도 이렇게 힘든데, 기러기 생활을 하는 분들은 얼마나 힘들지, 그분들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파트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뒷좌석에서 새벽에 토쥬군을 감쌀 때 사용한 이불을 챙겨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현관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오니, 집안 가득 묻어 있는 아내와 아들의 빈자리 때문에 나도 모르게 또 한참을 소리 내서 엉엉 울었다.


이래서는 도저히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아서, 정신을 차리고 바로 집안 청소를 시작했다. 설거지도 하고, 토쥬군 장난감도 정리하고, 청소기도 돌리고, 쓰레기도 버리고. 그렇게 집안을 좀 깨끗하게 정리하고 나니, 그제야 아내와 아들의 '빈자리'보다는 3주 후에 다 같이 돌아왔을 때 아내와 아들에게 보여줄 깨끗한 집 모습이 눈에 들어왔고, 마음이 한결 나아졌다.


그리고 미국에 온 이후 처음으로 온전히 혼자가 된 나의 하루가 시작되었다. 굉장히 몸이 피곤하고 머리도 무거웠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리 노력해도 잠이 오지 않았다. 머릿속에는 온통 '지금쯤 아내와 아이가 어디쯤 가고 있을까' 하는 생각뿐이었다.


다행히도 유나이티드 항공의 웹사이트에 접속해보니 실시간으로 아내와 아들이 탄 항공편의 비행정보를 보여주었다. 나는 틈만 나면 계속 이 화면을 체크했다. 아내와 아들이 탄 비행기가 지금쯤 어디를 날고 있는지를 알 수 있으니 조금은 마음이 놓이기 시작했다.


 

환승 공항인 샌프란시스코에서 이륙한 뒤, 알래스카 부근을 날고 있는 비행기


내가 사는 곳에서 한국까지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 실감할 수 있었다. 내가 공항에서 아내와 아이를 배웅하고 집에 돌아와 아침, 점심, 저녁 세끼를 먹고, 청소를 하고, 숙제를 하고, 멍하니 누워있었던 그 모든 시간들을 다 합쳤음에도, 아내와 아들은 아직 한국에 도착하지 않았다.


혹시 아들이 비행기 안에서 잠투정 부리면서 울진 않았는지, 기내식은 잘 먹었는지, 앞좌석을 발로 차진 않았는지 걱정이 되었다. 그리고 이렇게 긴 시간 동안 아내 혼자서 토쥬군을 케어하는 모습을 떠올리니, 아내가 너무 안쓰럽게 느껴졌다.


밤 10시가 넘어, 다시 사이트를 확인해보니 비행기가 어느덧 익숙한 한반도 상공 위에 떠있는 모습이 보인다. 그리고 자정이 다 되어서 드디어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다. 잘 도착해서 이제 입국심사장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그제야 나는 완전히 마음이 놓이면서, 비로소 두 발 뻗고 잠을 잘 수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2분 뒤면 인천공항에 도착한다는 메시지를 보니 내 마음도 콩닥콩닥


하지만 아내와 아들은 인천공항에 도착하고 난 뒤에도, 마중 나오신 장인어른, 장모님과 함께 다시 처갓집이 있는 D시로 이동해야 했다. 새벽 4시 30분에 집에서 출발한 이후 꼬박 24시간이 걸려 마침내 처갓집에 도착한 토쥬맘과 토쥬군.


아내가 한국에서 보내준, 외갓집 앞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토쥬군 사진


이번의 경험을 통해, 앞으로는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로 세 식구가 떨어지는 일은 만들지 않으리라, 다짐을 했다. 그리고 아내와 아들이 없는 동안, 딴짓 안 하고 더 열심히 살리라, 각오도 새롭게 다졌다.


마침 아내와 아이가 자리를 비운 그 2주간이 딱 나의 기말고사 기간과 겹쳤었다. 써야 할 텀 페이퍼가 3개였고, 시험도 2개를 봐야 했다. 나는 아내와 아이를 생각하며, 그 좋아하는 맥주도 한병 안 마시고 2주 동안 정말 착실하게 공부만 했다.


그 결과, 올 A를 받게 되었다.

덕분에 2주 뒤,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기말고사가 끝나자마자 아내와 아이를 만나러 한국으로 떠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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