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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마스 Jul 12. 2020

2년 만의 한국 방문(2)

Day 2.


전날, 거의 기절하듯이 침대에 뻗어 잠이 들었는데, 눈을 떠보니 오전 6시다.


옆에서 아내와 아이가 곤히 잠들어 있는 모습을 보니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그려진다. 마침 아내가 뒤척이다가 살짝 잠이 깬 것 같았다. 평소라면 더 자라고 가만히 있었겠지만, 들려줄 이야기들이 너무 많이 쌓였기에 토쥬군이 깨지 않게 아내와 둘이서 소곤소곤 그동안 서로에게 있었던 일들에 대한 썰을 풀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참 수다를 떨다가 본격적인 이야기는 차차 하기로 하고, 아내는 다시 눈을 좀 붙이고 나는 혼자 밖에 나가서 아침을 먹고 오기로 했다. 로비에서 반갑게 아침 인사를 건네주는 호텔 직원분들과 적당히 서늘한 공기 덕분에 서울에서의 첫 번째 아침을 기분 좋게 시작한다. 호텔에서 나와 식당으로 느긋하게 걸어가는 내 모습이, 월요일 아침 걸음을 재촉하는 출근길의 직장인들과 묘한 대비를 이룬다. 서울에서의 첫 아침식사는 하동관 곰탕이었다. 주문한 곰탕이 나오고, 파채를 넉넉히 올려 숟가락으로 국물을 한 모금 먹어보니 역시나 기대했던 그 맛이다.


맛있었던 하동관 곰탕


아침을 먹은 뒤, 본격적인 오전 일정을 시작했다. 우선 토쥬군을 장인어른과 장모님께 잠시 맡기고 아내와 나는 서울역에 있는 공항철도 자동출입국 등록센터를 방문했다. 여기서 미국 자동출입국심사(Global Entry)*를 위한 첫 번째 단계인 한국 쪽 자동출입국심사(Smart Entry Service) 신청을 했다.


그다음, 글로벌 엔트리를 위한 두 번째 단계로 서울역 앞에 있는 남대문경찰서를 방문해 범죄/수사경력 조회서를 발급받았다. 그러고 나서, 아내는 다시 명동으로 가서 장인어른, 장모님과 합류했고, 나는 경찰서에 남아 운전면허증 갱신 신청을 했다.


미국에 오기 전 나름 행정적인 것은 확실히 처리를 했다고 생각했는데, 운전면허증 갱신은 그만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그 결과, 몇 개월 안으로 갱신을 하지 않으면 면허가 취소되고, 과태료까지 물게 생겼다. 경찰서에 방문한 김에 민원실 담당자에게 물어보니, 근처에 마침 지정병원이 있으니 거기서 적성검사를 받고, 증명사진을 제출하면 바로 면허증을 갱신할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오전 내내 여기저기 뛰어다녀 무사히 운전면허증 갱신도 성공했다.


장인어른과 장모님은 다음날 일정이 있으셔서 오후에 호텔에서 체크아웃을 하셨다. 지난 2주 동안 외갓집에 있으면서 정이 많이 들었던지 토쥬군이 할아버지, 할머니와 헤어지면서 한참을 울었다. 다시 호텔룸으로 돌아와, 토쥬군을 달래면서 겸사겸사 다음 일정을 위해 세 식구가 다 같이 낮잠을 좀 잤다.


저녁에는 미국에서 함께 공부한 N누나 부부와 오랜만에 만나서 함께 파이낸스센터에서 식사를 했다. 한참 동안 수다를 떨고 헤어진 우리 세 식구는, 5월 초순의 고즈넉한 서울 도심의 밤 풍경을 즐기며 천천히 호텔로 걸어서 돌아왔다.


저녁으로 먹었던 스키야키



Day 3.

셋째 날은 아침부터 비가 왔다. 이날은 아내가 대학원 지도 교수님과 점심 약속이 있어서, 토쥬군과 단 둘이서 반나절 동안 데이트를 하기로 했다. 비가 안 왔다면 좀 더 선택지가 많았을 텐데, 비가 와서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었다. 우리는 호텔에서 지하도를 통해 걸어서 갈 수 있는 옛 서울시청 본관 건물의 서울도서관에 일단 한번 가보기로 했다.


서울도서관에 앉아 있는 토쥬군 (한글을 못 읽는 게 함정임)


하지만 기대한 것만큼, 아이들이 볼 수 있는 책은 많지 않아서, 그리 오래 있지는 못하고 금방 나왔다. 밖에는 여전히 꽤 많은 비가 내리고 있었다. 토쥬군이 계속 책을 보고 싶어 해서 교보문고나 영풍문고로 갈까 했지만, 토쥬군이 지하철을 타는 것은 싫다고 한다. 미국에서 우리가 사는 곳에는 지하철이 없다 보니, 아마도 지하철 창밖이 어두운 게 무섭게 느껴지는 것 같다. 그럼 버스를 타고 갈까 했지만, 토쥬군이 계속 안아달라고 하는 통에 한 손에 우산을 들고, 다른 한 손에는 토쥬군을 안고 버스를 타는 것은 좀 위험한 것 같았다.


그래서 결국 근처에 보이는 맥도널드에 가서 해피밀을 먹이기로 했다... (응?) 마침 구석 창가 자리에 있는 2인용 좌석이 비어있어서 토쥬군과 느긋하게 이곳에서 점심을 먹었다. (일부러 엿들으려고 한 건 아니지만) 우리 뒷 테이블에서 한창 동료들 험담을 하고 계신 여성분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창밖으로는 점심시간이 되어 어딘가에서 밀물처럼 거리로 빠져나온 근처 직장인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예전 직장 생활했을 때 기억이 새록새록 나기 시작한다.


시청 옆 맥도널드에서 해피밀을 먹고 있는 토쥬군


점심을 먹고 나서도 여전히 비가 그치지 않아서, 할 수 없이 다시 호텔방으로 돌아왔다. 아침에 토쥬맘이 나가면서  "토쥬군 낮잠을 꼭 재우라"는 미션을 내게 줬다. 항상 낮잠은 엄마랑만 자다 보니 지금껏 내가 토쥬군 낮잠을 재운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일단 미션을 받긴 받았으나, 내가 과연 재울 수 있을까, 혹시라도 안 잔다고 떼를 쓰면 어떡하나, 엄청 걱정이 됐다.


호텔 방에서 한창 놀고 있는 토쥬군에게 넌지시 물어본다.


토마스: 토쥬, 낮잠 자지 않을래?
토쥬: 싫어요. 토쥬 안 자고 조금 더 놀 거예요.
토마스: 그래? 그럼 언제 잘까?
토쥬: 음... 2시 45분에 잘 거예요.
토마스: (시계를 가리키며) 그래? 그럼 지금 2시 20분이니깐, 그때까지 놀고 같이 자는 거야, 알았지?
토쥬: 네~


호텔 룸에서 놀고 있는 토쥬군


토쥬군은 과연 약속을 지킬 것인가. 아빠의 불안한 마음은 아는지 모르는지, 토쥬군은 옆에서 잘 놀고 있다. 그리고 드디어 약속한 2시 45분이 되었다.


토마스: 토쥬. 자, 약속했던 2시 45분이야. 이제 자야지?


예상과 달리, 토쥬군이 순순히 침대에 올라와 내 옆에 눕는다. 그리고 조금 뒤척이더니, 바로 꿈나라로! 와, 토쥬 낮잠 재우기를 이렇게 쉽게 성공하다니...


나는 옆에서 천사 같은 모습으로 평화롭게 자고 있는 토쥬군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그리고 침대에서 일어나, 창문 옆 소파에 앉아 유리창 밖으로 비 내리는 서울의 풍경을 바라보며 오랜만에 이런저런 사색에 잠겨본다.


창밖의 비 오는 서울의 풍경을 바라보며 사색에 잠겨있는 토쥬군


한편, 지도교수님과의 점심 식사를 마친 토쥬맘은 차가 많이 밀려서 예상보다 조금 늦게 호텔에 도착했다. 곤히 자고 있는 토쥬군을 보자마자 아내의 눈이 하트 모양으로 바뀐다. 토쥬군이 자는 동안, 우리는 다음 호텔로 이동하기 위해 조심조심 부지런히 짐을 꾸리기 시작했다.



(다음 편에 계속)



* 글로벌 엔트리는 미국에 입국할 때 입국심사장에서 줄을 설 필요 없이 바로 자동 입출국 심사대를 이용해 입국심사를 끝낼 수 있는 아주 편리한 서비스인데, 자세한 사항은 http://www.ses.go.kr 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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