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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0 만유인력의 사랑학

김인육, 「사랑의 물리학」 / 이상, 「최후」

by 고전파

김인육, 「사랑의 물리학」


질량의 크기는 부피와 비례하지 않는다

제비꽃같이 조그마한 그 계집애가

꽃잎같이 하늘거리는 그 계집애가

지구보다 더 큰 질량으로 나를 끌어당긴다.

순간, 나는

뉴턴의 사과처럼

사정없이 그녀에게로 굴러 떨어졌다

쿵 소리를 내며, 쿵쿵 소리를 내며

심장이

하늘에서 땅까지

아찔한 진자운동을 계속하였다

첫사랑이었다.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학생이던 아이작 뉴턴은 유럽에 창궐한 흑사병(페스트)을 피해서 울스소프의 고향 집에 와 있었다. 집 정원의 사과나무에서 사과 하나가 떨어지는 것을 지켜본 뉴턴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떠올린다.


“지구가 사과를 잡아당긴다면, 지구 바깥에 있는 달도 잡아당기고 있는 게 아닐까?”


이 질문의 끝에 뉴턴은 ‘모든 물체는 질량을 가지는 한 서로를 잡아당긴다.’는 결론을 이끌어낸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만유인력의 법칙’과 중력에 대한 정의다. 이를 바탕으로 뉴턴은 ‘고전물리학의 아버지’라고 불렸다. 인류 역사상 최고의 천재 중 하나인 알버트 아인슈타인이 등장하기 전까지 고전물리학은 인류 발전의 근간이 되었다. 현재 우리가 가진 기술 중 최첨단이라고 할 수 있는 로켓 과학에도 고전물리학이 적용된다.

뉴턴의 정리를 범박하게 풀어보자면, 질량의 크기와 인력의 크기가 비례한다는 것이다. 밀도가 유난히 높은 예외적인 물질들을 제외하면, 부피가 큰 물체일수록 질량이 클 것이고 따라서 부피가 크면 인력도 클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시는 이를 단번에 반박하면서 시작된다.


질량의 크기는 부피와 비례하지 않는다



제비꽃 같이 조그맣고, 꽃잎 같이 하늘거리는 계집애. 이 묘사는 이 계집애는 부피도 작고 질량도 작다는 것을 드러낸다. 그렇다면 당연히 인력도 작을 것이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이 아이는 지구보다 더 큰 질량으로, 더 큰 인력으로 화자를 끌어당긴다. 이 아이는 기껏해야 100kg도 되지 않을 것이다. 반면에 지구의 질량은 kg으로 표시하게 된다면, 약 6 × 10²⁴ kg이다. 아무리 중력이 우리가 숨을 쉬는 것처럼 당연한 현상이라고 해도 이성적으로 봤을 때는 말이 되지 않는다.

그 뒤에 따라오는 표현도 살펴보자.


순간, 나는
뉴턴의 사과처럼
사정없이 그녀에게로 굴러 떨어졌다


화자는 자신이 앞에서 부인했던 이론의 근간이 되는 뉴턴의 사과처럼, 굴러떨어진다. 그러나 이 사과는 지구를 향해 떨어지지 않는다. 그녀를 향해 굴러떨어진다, 그것도 사정없이. 논리적으로 설명이 되지 않는 순간을 화자는 경험하고 있다.


쿵 소리를 내며, 쿵쿵 소리를 내며

심장이
하늘에서 땅까지
아찔한 진자운동을 계속하였다



사과는 화자의 심장이었던 것 같다. 심장은 하늘에서부터 땅까지 그 넓은 공간을 끊임없이 왔다갔다 한다. 그녀에게서 멀어지려고 했지만 이내 다시 그녀에게로 향하고, 기어코 멀어지면 그녀의 질량에 이끌리듯 따라간다. 화자의 심장은 그녀와 화자 사이를 끊임없이 오간다. 마지막 문장이 등장하는 순간, 우리는 화자가 경험한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있게 되고 나아가 이 사과가 어디서 멈출 것인지 알 수 있다.


첫사랑이었다.

이성은 힘이 세고 날카롭지만, 이 이성의 무장을 해제시키는 건 역사적으로 사랑의 임무였다. 사랑 앞에서는 그 어떤 논리도, 이론도, 증명도 소용이 없다. 그게 사랑학의 유일한 논리다. 과장을 보탠다면, 우리가 읽어온 숱한 시와 소설, 보아왔던 드라마와 영화 모두 사실은 ‘사랑 때문에 이런 짓까지 해봤다.’고 요약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첫’사랑이라지 않는가. 대체로 첫사랑의 순간은 우리가 어릴 때 찾아오기 마련이고 그때의 우리는 사랑하는 이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무모해지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뉴턴의 고전물리학은 아인슈타인의 일반/특수 상대성 이론으로 보완 및 수정되었다. 그러나 만유인력의 사랑학은 동서고금을 통틀어 변하지 않는다. 어쩌면 그건 우리의 DNA에 새겨진 축복 또는 형벌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사랑 때문에 눈이 멀기를 마다하지 않는 낭만적이고도 멍청한 동물이기 때문이다.







같은 이야기를 가지고 쓴 다른 시를 한 편 더 살펴보고자 한다. 식민지 시기 천재 시인으로 알려진 이상의 유작 「최후」다.


사과한알이떨어졌다. 지구(地球)는부서질정도로아팠다. 최후(最後).
이미여하(如何)한정신도발아(發芽)하지아니한다.

- 이상, 「최후」



원문은 일본어로 되어 있으며, 동경의 병상에서 죽기 직전에 쓴 시라고 알려져 있다. 이 시에서 말하는 최후를 맞이하는 것은 지구 혹은 새로운 사상으로 보인다. 앞서 언급했듯이 뉴턴의 발견으로 인류는 지구 밖 우주까지 나아가는 기틀을 다졌다. 당연히 지구 곳곳을 파헤치는 능력을 얻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또한 아인슈타인의 등장 전까지 뉴턴의 이론은 반박의 여지가 없었다. 그러므로 이상은 뉴턴의 이론을 마치 과학자들이 꿈꾸는 ‘최종 이론’처럼 여겼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시가 쓰여진 시기나 배경을 보면 의미심장하다. 어쩌면 이상 자신을 빗댄 이야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물론 이 추측이 설득력이 있으려면 이상이 예술가로서의 자의식이 굉장히 강한 인물이었다는 근거가 좀 더 있어야 한다.) 일반적으로 낙하는 죽음으로 연상되기 쉽고, 이는 곧 다가올 이상 자신의 죽음을 빗댄 것이라면? 그렇다면 이 시는 조선 문단에 새로운 스타일의 시를 선보였던 이상이 내뱉은 한탄이었을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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