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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전파 Mar 04. 2020

이상(李箱)은 여전히 이상(異常)하다.

- 이상의 <이런 시>에 대한 단상

 학부 시절, 공부하기 가장 난해했던 작가들을 고르라고 한다면, 단언컨대 이상(李箱)과 최인훈 선생을 꼽을 수 있다.

 대학교에서 접한 이상의 시들은 중고등학생 시절 교과서나 시험 문제에서 보았을 때처럼, 여전히 충격적이었다. 대체로 그 충격은 그 시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내가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에서 기인했다. 아이들이 달리고, 또 아이들이 달리고, 그 아이들은 무섭다고 하고, 또 그 아이들은 달린다. 도대체 이 아이들은 왜 달리고, 왜 무서운 것인가.

 이상의 시들은 대체로 난해했고, 나는 좀처럼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 나에게도 마음에 쉽게 와닿은 이상의 시가 있었는데, <이런 시>라는 제목의 작품이었다.


 내가 그다지 사랑하던 그대여 내 한평생에 차마 그대를 잊을 수 없소이다. 내 차례에 못 올 사랑인 줄은 알면서도 나 혼자는 꾸준히 생각하리다. 자 그러면 내내 어여쁘소서.

  일상적인 혼잣말 같으면서도 외사랑을 끝내려는 이의 감정을 인상적으로 표현하여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하지만 이 시가 더 인상깊었던 것은 그간 내가 읽어온 이상의 시들과는 그 결이 너무나도 달랐기 때문이다. 마치 이 시와 다른 시들 사이에는 이승과 저승 사이만큼 떨어져 있는 듯 했다.

 그러나 이 시를 알게 된 몇 년 뒤, 다른 책을 읽으며 이 시가 사실은 더 긴 시의 일부분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이상의 시 <이런 시>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역사(役事)를 하노라고 땅을 파다가 커다란 돌을 하나 끄집어 내어놓고 보니 도무지 어디서인가 본 듯한 생각이 들게 모양이 생겼는데 목도들이 그것을 메고 나가더니 어디다 갖다 버리고 온 모양이길래 쫓아나가 보니 위험하기 짝이 없는 큰길가더라.

 그날 밤에 한소나기 하였으니 필시 그 돌이 깨끗이 씻겼을 터인데 그 이튿날 가보니까 변괴로다 간데온데 없더라. 어떤 돌이 와서 그 돌을 업어갔을까 나는 참 이런 처량한 생각에서 아래와 같은 작문을 지었도다.

「내가 그다지 사랑하던 그대여 내 한평생에 차마 그대를 잊을 수 없소이다. 내 차례에 못 올 사랑인 줄은 알면서도 나 혼자는 꾸준히 생각하리다. 자 그러면 내내 어여쁘소서.」

어떤 돌이 내 얼굴을 물끄러미 치어다보는 것만 같아서 이런 시는 그만 찢어버리고 싶더라.


 이 전문을 읽고 나니, 나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내가 아는 이상(李箱)은 여전히 이상(異常)하다고. 하지만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그 이상하다는 단어의 의미만으론 이상(李箱)을 설명하는 데에는 다소 부족함이 있어보였다. 그래서 이상(異常)의 의미를 사전에서 찾아보았다.


  1.    정상적인 상태와 다름.

  2.    지금까지의 경험이나 지식과는 달리 별나거나 색다름.  

  3.    의심스럽거나 알 수 없는 데가 있음.

 

 적어도 나에게 있어 이상(李箱)은 위의 정의들 중 1의 정의보다는, 2와 3에 가깝다. 이상이 활동하던 개화기 그 시대에도 분명 그는 그 시대까지의 경험이나 지식과는 달리 별나거나 색달랐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시가 수없이 읽혀왔던 오늘 날에도, 그는 여전히 별나고, 색다르고, 알 수 없는 데가 있다. 이상은 여전히 이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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