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따금 들리는 바(bar)가 있다. 나와 동갑인 남자 주인이 혼자 지키고 있는 지하 1층 바이다. 문을 열면 늘 지하 특유의 퀴퀴한 냄새가 훅 밀려든다. 손님이라 해봤자 언제나 기껏 한 테이블 또는 한 명이 주인과 대작하고 있거나 아니면 주인 혼자 맥주를 홀짝이고 있는 곳이다.
오래간만에 그곳에 들어가면 주인은 오랜만에 왔다는 둥 입에 발린 인사조차도 없이 가볍게 눈인사할 뿐 절대 먼저 말을 거는 법이 없다. 묵묵히 냅킨과 맥주잔을 건넬 뿐이다. 기타, 드럼 등의 악기와 엄청나게 큰 스피커, 수천 장이 될 법한 LP판들이 벽 가득히 꽂혀 있는 것을 보아 소싯적에 음악을 한 사람이라고 짐작을 할 뿐이다.
그러고 보니 그에 대해서는 나랑 동갑이라는 것 정도를 알 뿐 아무런 정보도 없다. 나도 그에게 그도 나에게 어차피 궁금하지도 않은 서로의 신상에 대해 물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삐뚤빼뚤 자른 메모지에 한참을 생각한 곡명을 적어내면 주인은 무심한 듯 쓱 훑어보곤 순식간에 LP판을 턴테이블에 올려놓거나 예전에 TV에서 보았던 뮤직 비디오를 유튜브에서 찾아 틀어놓곤 한다. 신청곡을 써내지 않으면 그는 이전에 신청했던 곡을 귀신같이 기억하고는 다시 틀어준다.
이 바에 들리는 손님들도 주인을 닮았다. 혼자서 일요일 밤 12시에 들려서 냉장고의 San Miguel 한 병 꺼내 들고는 소리 없이 마시고선 일어서는 이, 핸드폰을 꺼내 게임을 하는 이, 리듬에 몸을 맡기며 흡연실에서 담배를 꼬나물고 우아하게 몸을 흔드는 이, 네댓 곡의 음악 리스트를 적어 내고는 조용히 음악과 함께 추억 여행을 즐기는 이...
왁자지껄한 여느 술집이 관계를 치유하고 개선하는 곳이라면 이곳은 고독으로 스스로를 치유하려는 사람들이 있는 장소인 셈이다. 매번 이 곳을 혼자 찾는 나에게 이곳은 고독이 현실이 되는 곳이다. 그저 말없이 있기만 해도 마음이 놓이는 곳 말이다. 이해인 수녀의 시 한 구절처럼.
“홀로 있는 시간은 쓸쓸하지만 아름다운 호수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