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잡한 업무를 수행하는 데 필요한 탁월성을 얻으려면, 최소한의 연습량을 확보하는 것이 결정적이라는 사실은 수많은 연구를 통해 거듭 확인되고 있다. 사실 연구자들은 진정한 전문가가 되기 위해 필요한 ‘매직넘버’에 수긍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1만 시간이다. … 1만 시간은 대략 하루 세 시간, 일주일에 스무 시간씩 10년간 연습한 것과 같다. … 어느 분야에서든 이보다 적은 시간을 연습해 세계 수준의 전문가가 탄생한 경우를 발견하지는 못했다. 어쩌면 두뇌는 진정한 숙련자의 경지에 접어들기까지 그 정도의 시간을 요구하는지도 모른다.
인기 작가 말콤 글래드웰의 베스트셀러 ‘아웃라이어’의 한 부분이다. 이 책을 통해 그는 ‘1만 시간의 법칙’이라는 말을 유행시킨 바 있다. 어떤 분야에서든 탁월한 수준에 올라서려면 최소한 1만 시간의 연습이 필요하다는 그의 주장은 출간 당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타고난 재능보다는 노력이 중요하다는 의미로 단순하게 받아들일 수도 있으나, 그는 1만 시간의 법칙을 재능보다 노력이 중요하다는 의미로 얘기한 것은 아니다. 키 170cm도 채 안 되는 필자가 과연 몇 십만 시간을 연습한들 세계적인 농구선수가 될 수 있었을까. 1만 시간의 법칙은 단순히 재능만 있다고 세계 최고가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 1만 시간에 달하는 노력이 수반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한 것이다.
몇 년 전에 “노력하면 된다? … 1만 시간의 법칙 틀렸다”라는 자극적인 제목의 기사가 보도된 적이 있었다. 이 기사에서도 마찬가지로 ‘1만 시간의 법칙’을 노력이 재능보다 중요하다는 정도의 의미로 해석하고 있다. 그런 다음 노력보다 타고난 재능이 중요하다는 요지의 데이비드 햄브릭 미시간 주립대학 교수의 논문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하지만 원 논문을 직접 읽어 보면 보도 내용이 논문의 주장을 곡해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논문에서 말하고자 한 것은 노력이 중요하고 전문가가 되는 데 있어서 필요 요소이기는 하나 그 중요성이 너무 과장되어 있었다는 것과 또한 단순한 시간의 경과가 아닌 질적인 연습이 중요함을 강조한 것이다.
어쨌든 우리 골퍼에게도 ‘1만 시간의 법칙’은 유효하다. 우리 몸의 움직임은 뇌가 관장한다. 골프 스윙 동작을 처음 배우게 되면 우리 뇌 속의 운동 피질에 있는 뉴런들 간의 연결과 반응이 변한다. 처음에는 뉴런들의 움직임이 느리고 일관성이 없다가 연습을 통해 뉴런들의 움직임이 빨라지고 일관성이 있게 된다. 이처럼 뇌의 기능을 바꾸는 일인데 당연히 긴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뇌가 필요한 시간에 비하면 우리 골퍼들은 사실 연습을 거의 안 하는 편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선 어쩌다 한번 나간 라운드에서 좋은 스코어를 기대한다.
골퍼가 스윙 기술을 익히는 과정은 스포츠 심리학의 운동학습단계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운동 기술의 학습은 인지-연합-자동화의 세 단계를 거쳐 이루어진다. 먼저 인지 단계는 골퍼가 골프 스윙에 대한 지식을 이해하고 섭렵하는 단계이다. 어떤 동작을 배울 때 몸으로 직접 해보기 전에 먼저 머릿속으로 그려보고 이해하는 과정이 선행되어야 한다. 하지만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 이것을 몸으로 표현하는 것은 서로 별개이기 때문에 올바른 스윙 동작을 완성시키기 위해서는 몸동작 하나하나에 많은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이 단계에서는 동작이 서툴고 따라서 시행착오를 수 없이 반복하게 된다. 또 오류를 수정할 수 있는 능력이 아직 부족하기 때문에 스윙의 일관성도 부족하다. 다음으로 연합 단계란 머릿속으로 이해한 동작과 실제 몸의 움직임이 일치하도록 반복연습을 통해 서로 연합(연결)시키는 단계다. 스윙의 형태가 완벽하지는 않지만, 다양한 기술 요소들을 상호 연관시키고, 상황에 따라서 동작의 형태를 바꾸는 방법을 깨닫기 시작한다. 따라서 인지 단계에서 보다 스윙의 일관성과 그 질이 점차 향상되게 된다. 마지막으로 자동화 단계란 스윙이 거의 자동적으로 이루어지는 단계로 스윙에 대한 의식적인 주의가 크게 요구되지 않는다. 이 단계에 이르면 오류가 적고 없고, 설사 오류가 발생하더라도 오류를 탐지하고 수정할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도 일관된 스윙이 가
능하게 된다.
그렇다면 1만 시간만 연습하면 누구나 자동화 단계에 이를 수 있을까? 1만 시간이란 연습량은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은 아니다. 즉, 1만 시간을 연습한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프로 골퍼들처럼 마음먹은 대로 골프공을 보낼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1만 시간이라는 절대적인 연습량과 함께 연습의 질 역시 중요하다. "1만 시간의 법칙"의 창시자인 안데르스 에릭슨은 이를 ‘의식적인 연습’이라고 부른다. ‘의식적인 연습’이란 경기력을 향상하기 위한 구체적인 목표와 관련된 고도로 구조화된 활동이다. 무작정 단순 반복을 하는 연습과는 거리가 멀다. 그렇다면 ‘의식적인 연습’은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첫째, 연습에 대한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스포츠 심리학자들은 주장한다. 질적인 연습은 기본적으로 재미있는 행위가 아니다. 참고 견뎌야 하는 과정인 것이다. 따라서 질적인 연습을 지속하려면 그것을 지속하려는 동기부여가 필요하다. 자신에게 왜 골프가 필요한지 곰곰이 생각해보기를 바란다. 골프가 좋다면 좋아하는 애인에게 하듯 정성을 쏟아 야할 것이다.
둘째, 현재 자신의 상태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필요하다. 이것은 혼자서도 할 수 있지만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할 것이다. 자신의 골프 스윙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효율적인 개선책이 나올 터인데 아무래도 아마추어의 지식으로는 자신의 문제점을 발견하고 수정할 수 없다.
셋째, 연습을 하는 동안 즉각적인 피드백이 필요하다. 이것은 정말 검증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골프를 잘 치는 프로는 많다. 하지만 이미 자신에게 자동화된 동작을 남에게 설명하며, 남의 잘못된 점을 수정할 수 있는 능력은 별개의 능력이다. 많은 스포츠심리학 연구 결과들이 운동 기술이 자동화될수록 자신이 어떤 식으로 학습했는지 모르며 남에게 설명하는 능력이 떨어진다는 것을 뒷받침하고 있다. 자신을 도와줄 프로를 선택할 때에는 얼마나 그 프로가 골프를 잘 치는지 보지 말고, 얼마나 스윙에 대해 이론적으로 잘 알고 남에게 조리 있게 전달하며 남의 스윙의 문제점을 잘 찾아내며 그 문제점을 고치기 위한 다양한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지 판단한 뒤 선택해야 할 것이다.
넷째, 질적인 연습은 어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동일 행위를 계속해서 반복할 것을 주문한다. 앞서 얘기한 바와 같이 새로운 운동 기술의 학습은 우리의 대뇌의 운동피질의 시스템을 바꾸는 것으로 아주 지루하고 따분한 작업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요한 사실은 우리 모두가 골프를 프로골퍼 수준으로 잘 칠 필요는 없다는 점이다. 1만 시간의 법칙과 ‘의식적인 연습’은 세계 최고 수준의 골퍼가 되기 위해 스포츠심리학이 밝혀낸 과학적인 연습방법이다. 따라서 프로골퍼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단지 취미로 좋은 사람들과 좋은 시간을 즐기려는 골퍼라면 여건이 허락되는 범위에서 적당히 연습하고 적정 스코어에 만족하면서 그 결과에 대해 지나치게 스트레스를 받지 말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