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잉 그라운드에 올라 선 해리 바든은 갤러리들을 둘러본다. 그러자 갤러리들의 모습이 희미하게 지워지며 마침내 그에게 심리적 부담을 주던 영국 귀족 네 명만이 남는다. 그가 다시 귀족들을 뚫어지게 바라보자 귀족들마저도 모습이 지워진다. 그의 눈앞에는 오직 공을 보낼 목표 지점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그가 티샷을 하자 그때서야 우레와 같은 갤러리 함성과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영화 “지상 최고의 게임(The Greatest Game Ever Played)” 중에서-
해리 바든(Harry Vardon. 1870-1937)은 디 오픈(브리티시오픈)에서 6차례나 우승하고 US오픈에서도 한 차례 우승한 바 있는 전설적인 골퍼다. 생전에 ‘미스터 골프’로 불리며 전성기 시절 타이거 우즈 부럽지 않은 인기를 누렸었다. 그의 이름은 골퍼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바든 그립(일명 오버래핑 그립)과 PGA 투어의 바든 트로피(시즌 최저 평균타수상)로 지금까지 남아있다.
위에서 바든이 사용한 멘탈 기술은 바로 주의집중이다. 그는 티샷을 하면서 필요한 정보만을 선택하고 나머지는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 이것을 스포츠 심리학자들은 주의(selective attention)라고 한다. 그리고 이렇게 기울인 주의를 티샷이 끝날 때까지 계속 유지하는데 이것이 집중(concentration)이다. 이렇게 학문적으로는 주의와 집중을 엄밀하게 구분하지만, 집중은 주의를 전제로 하는 것이므로 보통 '주의집중'을 한 단어처럼 쓴다. 스포츠 심리학자들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주의집중은 국내 스포츠 코치들이 뽑은 가장 중요한 멘탈기술이다.
인간의 주의 용량은 제한적이다. 따라서 한 번에 여러 가지 일에 전념하는 것과 여러 가지 생각에 몰두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주의집중이 말처럼 쉽지 않은 이유다. 특히 골프는 정지해있는 공을 치는 운동이라 고도의 주의집중을 필요로 하는데 반해 경기시간의 대부분이 다음 샷을 위한 이동시간이기 때문에 이동 중 주의 집중이 깨지기 쉽다.
주의집중이 뛰어나다는 것은 자신이 필요한 정보를 선택하고 불필요한 정보는 무시하는 능력이 출중하다는 뜻도 있지만 주의의 폭을 자유자재로 넓히거나 좁힐 수 있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을 말한다. 만약 내가 단체 팀의 첫 조의 오너라 생각해 보자. 사람들의 시선이 오롯이 나에게 쏟아지고 있다. 또는 내기골프의 배판에서 중요한 퍼팅을 앞두고 동반자들의 야유나 방해공작 등이 난무한다. 이때 외부 자극에 영향을 덜 받기 위해서는 지각적 범위를 최대한 좁혀야만 주의집중 능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다.
이와 달리 티샷이나 페어웨이에서의 샷처럼 바람의 방향이나 속도 등 주변 환경을 분석하고 적절한 클럽을 선택하며 어떤 종류의 샷을 구사할지 결정해야 할 때는 동시에 보다 많은 정보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므로 주의의 폭을 최대한 넓혀야 한다. 주의집중을 잘하는 골퍼는 좁은 폭의 주의에서 넓은 폭의 주의로 혹은 넓은 폭의 주의에서 좁은 폭의 주의로의 변화를 자유자재로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주의집중은 유리처럼 깨지기 쉽고 깨진 주의집중을 원상태로 되돌리는 것은 쉽지 않다. 주의집중과 관련된 많은 문제점은 라운드 중 언제 주의가 산만해지고, 언제 자신이 부적절한 것에 주의를 맞추는가를 잘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주의집중을 가장 방해하는 요인은 무엇일까?
첫째는 자신의 감각을 통해 지각되는 주변 환경 요소들이다. 골프는 작은 소리에도 주의집중이 깨지기 쉽다. 동반자의 소근 거리는 소리, 캐디가 클럽을 정리하다 클럽끼리 부딪치는 소리, 건너편 홀 그린에서 다른 팀이 떠드는 소리 등등. 이 모두가 골퍼의 주의 집중을 방해하는 소음이다. 뿐만 아니라 퍼팅을 하려는데 시야에 들어오는 동반자나 샷을 할 때 내 옆으로 휙 지나가는 카트도 골퍼의 주의를 흐트러뜨릴 가능성이 있다.
둘째는 골퍼의 내부에서 발생하는 생각들이다. 과거와 미래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과 걱정들이 주의집중을 방해한다. 자신에 대한 의심과 우유부단한 생각, 샷에 대한 부정적 사고, 지난 실수에 대한 생각, 앞으로 닥칠 어려움에 대한 걱정, 타인에 대한 의식, 피로 등이 여기에 속한다. 특히 이러한 방해요인들은 셋업을 하고 샷이나 퍼팅을 하기 직전 더욱 극성을 피운다.
그렇다면 이렇게 자신의 주의가 흩뜨려져서 집중하기 힘들어지고 정신이 산만해지기 시작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스포츠 심리학자들은 다음과 같은 주의집중 행동요령을 추천한다.
첫째 주의집중이 깨진 것을 느끼는 순간, 모든 동작을 멈추고 다시 처음부터 자신의 루틴을 시작한다. 원래 루틴이란 행동적인 절차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절차까지도 포함하는 것이므로 내 루틴을 수행하는데 방해가 된 그 무엇이라도 생겼으면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
둘째, 평소보다 느리게 행동한다. 천천히 움직일 뿐만 아니라 말도 느리게 하고, 주위를 천천히 둘러봐야 한다. 그러면 부적절한 정보에 할당했던 주의 용량이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다.
셋째, 단전에 힘을 주고 깊게 호흡을 하면서 페어웨이 먼 곳을 천천히 둘러본다. 기본적인 이완 방법인데 이것을 통해 몸의 각성 수준을 내리면 주의집중에 도움이 된다.
넷째, 동반자가 정신적으로 자신을 동요시키려고 도발을 하는 경우는 대꾸를 하지 말고 무시하며, 이렇게 생각한다. ‘이기기 위해 이런 방법을 쓸 정도면, 네가 갈 때까지 간 상태구나.’
다섯째, 주의가 심하게 흔들리고 혼란스럽다면 구체적인 지점을 선택해서 뚫어지게 쳐다보면서, 긍정적인 혼잣말을 해본다. 이때 혼잣말은 될 수 있으면 짧게, 구체적으로, 긍정적인 내용으로, 자신의 얘기로 내용을 구성해야 한다. 물론 주의집중이 깨질 때를 대비해서 미리 몇 개 준비해놓는 편이 좋다. ‘나는 퍼팅 귀신이야’, ‘이런 벙커샷은 엄청 연습했잖아?’ 등이 좋은 예다.
이런 주의 집중도 평소에 훈련을 하면 당연히 실전에서 큰 힘을 발휘한다. 예를 들어 퍼팅을 할 때 주변의 움직임에 민감한 골퍼라면, 동반자에게 부탁해서 아예 퍼팅을 하는 동안 자신의 시야에서 계속 움직일 것을 주문하는 것도 그 방법에 일환이다. 또 티샷을 할 때 주변에 소음에 지나치게 민감한 골퍼라면 동반자들에게 티샷 하는 동안 내내 큰소리로 대화할 것을 주문할 수도 있겠다. 이런 경험이 반복되면 어느새 방해요인이 나에게 덜 민감하게 영향을 준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타이거 우즈의 아버지 얼 우즈가 타이거 우즈를 훈련시켰던 방법이기도 하다.
가끔씩 조용한 장소를 택해 3미터 정도 앞의 어느 한 곳을 물끄러미 응시하면서 마음을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비워보는 연습도 좋다. 시간이 지날수록 다른 수많은 생각과 외부의 자극들이 침범해올 것이다. 평소에 들리지 않던 소리도 들리고, 몸의 간지러움도 느껴질 것이며 별별 잡생각이 날 것이다. 잡생각이 날 때마다 속으로 ‘잡생각이구나’라고 생각만 하면 된다. 그러면서 다시 3미터 앞의 지점을 응시한다. 처음에는 짧은 시간으로 시작해서 점점 시간을 늘려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