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샤인젠틀리 Oct 03. 2024

확신의 마침표를 찍기 전에 (2)

최악의 아이디어가 최고의 흥행작이 되다


전날의 아쉬움을 달래줄 수 있을까 기대반 걱정반으로 발걸음 한 민스코프 극장. 부동의 인기를 자랑하는 만큼 이때까지 가본 뮤지컬 공연장들의 규모 중에 최고였다.


건물 한 면 전체가 대형 통유리로 되어있어 타임스퀘어 전경이 시원하게 한눈에 들어왔고 높은 층고와 탁 트인 공간은 많은 인원의 관람객들이 적절히 분산되어 기념품 쇼핑도 하고 포토존에서 사진도 찍으며 공연을 대기하는 게 가능하게 해 주었다.


이번 공연은 내가 앞 좌석에 앉고 남편이 내 바로 뒤에 앉기로 했다. 그러지 않길 간절히 바라지만 혹시나 남편이 잠과의 전쟁에서 패배한다면 한 명이라도 즐거운 마음으로 공연을 관람하자는 전략이었다.

우리 좌석은 무대 앞쪽 오른편 통로 쪽에 가까운 오케스트라석이었다.



공연의 시작을 알리는 안내방송이 끝나고 암전 된 상태에서 2층 오른쪽 구석에 작은 불빛이 들어왔다.


"Nants ingonyama bagithi baba."


한국인의 귀엔 "나주~평야~ 발바리 치와와~"로 들리는 마법의 찬트가 공연장을 가득 채웠다.

(실은 남아프리카공화국 원주민 부족 줄루어로 '사자가 나타났다.' 의미한다)


1층 뒤쪽에서부터 통로를 따라 동물 의상과 한 몸이 된 배우들이 무대를 향해 천천히 전진하니 우리가 있는 곳은 어느새 아프리카 사바나로 변신해 있었다. 러닝타임이 흐르기 시작한 지 채 5분도 지나지 않아 나는 완전히 매료되었고 인생뮤지컬로 불릴만한 작품을 만난 게 분명했다.


웃음 포인트마다 들려오는 관객들의 시원한 웃음소리에 남편의 목소리가 섞여있음을 확인한 나는 더욱 평안해진 마음으로 집중해 공연을 즐길 수 있었다.


이전까지 봐온 다른 뮤지컬들에서는 종종 배우들 역량의 차이가 느껴질 때도 있었지만 이 날은 누구 하나 튀거나 모자람 없이 완벽에 가까운 기량과 하모니를 보여주었다.


애니메이션 라이온 킹에서 소개돼  알려진 곡들 외에도 뮤지컬 내용의 전개를 위해 추가로 만들어진 오리지널 넘버들은 이질 감 없이 작품에 잘 녹아들며 귀에 쏙쏙 들어왔다.     


눈 깜짝할 사이에 인터미션에 도달한 우리. 극장 밖으로 나가 남편과 눈을 마주쳤다. "이건 기념품구매각이야!"


기념품샵에 도착하니 우리와 같은 마음의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라이언 킹 프린팅이 새겨진 머그잔, 티셔츠도 있었지만 우리는 미리 봐둔 목각으로 만든 심바 오너먼트를 간택했다. 크리스마스트리에 걸어두고 오늘의 추억을 연말 내내 떠올릴 생각에 마음이 따뜻해졌다.



체력과 집중도가 떨어질 수 있는 뮤지컬 후반부에도 라이언 킹은 관객을 놓치지 않고 흡입력 있게 커튼콜까지 달려가 진한 감동을 선사하며 막을 내렸다.


뮤지컬은 한 번에 하나만 보고 할인부스에 올라온 것 중에 정한다는 오랜 틀을 벗어난 기행이 준 행복에 오래전 읽었던 책에 담긴 한 커플의 데이트 장면이 떠올랐다.


저녁을 야무지게 해치운 커플에게 찾아온 디저트 타임. 초코와 레몬 케이크 사이에서 고민 중인 아내에게 내려준 남편의 유쾌한 솔루션


 "둘 다 먹자!"  

    

삶을 지금까지 지탱시켜 주고 오늘의 나를 만든 규칙들은 소중하다. 하지만 때로는 그 틀 밖에만 존재하는 그 무언가를 탐험해 봐도 된다는 격려가 인상 깊었다.  




쉽게 가시지 않는 뮤지컬의 여운을 간직한 채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들른 쉑쉑버거. 늦은 시간이었지만 식당은 사람들로 북적였고 우리는 햄버거를 포장해 가 숙소에서 먹을 생각이었다.


우리의 주문 차례가 왔고 계산을 하려는데 점원은 너무도 당당하게 팁을 요구했다. 세상에나... 최근 몇 년 사이에 늘어난 미국 팁 횡포에 대한 얘긴 알고는 있었지만 깜빡이도 없이 확 들어오는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약간의 억울함이 담긴 목소리로 "You keep the change. 잔돈 가지세요."를 외치고 말았다.

        

맥없이 팁을 낸 것은 억울했지만 아직 뜨거운 햄버거와 꾸덕한 밀크쉐이크는 맛있어서 다행이다. 바삭한 감자튀김을 밀크쉐이크에 찍어 먹으며 뉴욕 브로드웨이 쇼 관람이 처음인 남편의 고백에 귀를 기울였다.



"솔직히 말하면 어제까지는 좀 실망해서 굳이 큰돈 주고 뉴욕에 다시 오고 싶단 생각을 못했을 거 같아. 근데 오늘 공연을 보니까... 2세가 생기면 같이 다시 오고 싶어 졌어!"


백번 이해가 되었다. 우리 삶에서 눈감고 코끼리를 만지듯 단편적인 정보에 의지해 확신에 찬 결론을 내릴 때 이후에 그 생각이 완전히 뒤집히는 일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래서일까, 언제부터인가 나는 무엇이 되었든 결론을 내리기 전 기회를 더 부여해 찬찬히 살펴보는 걸 좋아하게 되었다.


예로 내가 어떤 영화를 보고 나서 폰을 들어 폭풍검색을 하고 있다면 둘 중 하나다. 작품이 맘에 들어 더 자세히 알고 싶거나 너무 이해가 안 가서 이해를 도울 무언가를 간절히 찾는 거다. 이해가 깊어지면 작품에 대한 내 평가가 달라질 수도 있으니까... 라이온 킹은 그 전자였다. 호감 가는 이 뮤지컬의 비하인드 스토리까지 알고 싶어졌다.

 




대작 라이온 킹의 첫출발은 사실 순탄치 못했다. 라이온 킹은 애니메이션으로 처음 선보였는데 영화 제작을 결정지었을 당시 포카혼타스 제작시기와 맞물리게 된다. 포카혼타스가 성공을 거둘 거란 전망이 지배적이었고 때문에 실력 있고 경험이 풍부한 애니메이터를 비롯한 제작자들이 포카혼타스로 대거 몰리게 된다. 아무도 라이온 킹에 기대를 걸지 않았다.


실패할 거란 예상을 엎고 1994년 세상에 처음 공개된 디즈니 애니메이션 라이온킹은 현재까지 약 45여 개의 언어로 번역될 정도로 전 세계적인 사랑을 받으며 큰 성공을 거둔다.


애니메이션 영화의 성공 직후 디즈니 공연 사업을 담당하는 토머스 슈마허는 디즈니 회장에게 라이온 킹을 뮤지컬로 제작해 보라는 주문을 받게 되고 말도 안 되는 '최악의 아이디어'라고 확신한다.


하지만 그 최악의 아이디어는 많은 연구와 노력을 통해 실현되어 1997년 처음 선보인 후 오페라의 유령, 시카고에 이어 장기 공연 뮤지컬 제3위이자 지금까지 가장 많은 수익을 남긴 뮤지컬 1위로 당당히 자리매김했다.



You've got to fight for every dream
'Cause who's to know
which one you let go
would have made you complete
 
꿈 하나하나를 위해 싸우세요
당신이 놓아버린 그 하나가
당신을 완성했을지도 모르니까요

       -Westlife의 Flying Without Wings 중에서-




[독자분들을 위한 라이온 킹 두배로 즐기기 꿀팁, 첨부자료]


1. 스터디 가이드

뮤지컬 라이온 킹 홈페이지에 들어가 about -> educational materials를 클릭하면 40페이지 분량의 무료 스터디가이드(영어)가 제공된다. 공연전체의 줄거리도 장면 요약이 되어있어 영어공부자료로도 활용해도 좋겠고 공연 내용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겠다. 아이들과 함께 공연을 본다면 관람전후에 부모님과 함께 할 수 있는 교육적이고 창의적인 프로젝트 활동들이 친절하게 안내되어 있다.   


https://lionking.com/education/


 

2. 뮤지컬 넘버

공연에 나오는 노래들을 미리 익히고 가면 공연이 한층 더 즐거워지는 걸 느낄 수 있을 거다.  


https://www.youtube.com/watch?v=5oAe_jy5BUg&list=PLB8184E2908C5916C


 

3. 남극에 간 라이온 킹

만우절 이벤트로 만들어진 Dinsey On Broadway에서 제작된 예고편인데 깜박 속아 티켓팅하러 갈 뻔


https://www.youtube.com/watch?v=M6TDQq5eywg


4. 기념품샵 $5 할인 쿠폰 

라이온 킹 공연장 박스오피스에 가면 구할 수 있는데 공연장 내에 있는 기념품샵들에서 사용가능하다. 15달러 이상 구매 시 적용된다.



작가의 이전글 오프라 윈프리가 25년 만에 알게 된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