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사이시옷”의 행복배달부 사비노입니다. 오늘은 외로움 장례식에 대해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외로움 장례식을 치른다고요?라는 의문이 드리라 생각합니다. 외로움을 장례를 치러준다는 것이 어떤 것일지 저 역시도 처음엔 그림이 그려지지 않았으니까요. 하지만 아버지의 장례식에 초대되고 나서 저는 그 의미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외로움 장례식은 다른 장례식과는 다른 사이시옷의 처방이 될수 있습니다. 우리는 외로움을 슬프게 떠나보내지 않으려 합니다. 외로움 장례식은 우리 아버지의 장례식처럼 행복한 일이 될 것 같습니다.
2024년 9월 14일 6시 저는 아버지의 장례식에 초대받았습니다. 정말이지 너무나도 놀랍고 당황스러운 초대였습니다. 정말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사이였는데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아버지의 장례식에 대해 사전에 그 어떤 정보도 알려주지 않으셨습니다. 큰아들인 저에게도 또 저보다 더 가까운 어머니에게도 말입니다.
시간은 9월 13일 오전 10시 사이시옷의 글로벌스터디를 위해 영국으로 출발한 지 25시간 조금 넘었을 때였습니다. 아버지가 위독하시다며 빨리 귀국하라는 연락이 저에게 무섭게 그리고 무겁게 날아왔습니다. 위독한 상황인데 받아주는 병원이 없어 지금 수소문 중이라는 동생의 연락에 영국에서의 설레었던 첫날 밤은 사라졌습니다. 소식을 듣고 잠을 이루지 못하고 뜬눈으로 밤을 지샜습니다. 저는 아침 일찍 일어나 한국으로 돌아갈 표를 예매했습니다. 가장 바른 비행기는 영국시간으로 저녁 6시 50분 비행기였습니다. 나는 사이시옷의 멤버들과 이후의 일정과 진행에 대한 상의 후 첫번째 일정인 영국의 외로움 부처인 DCMS(Department,for Culture,Media & Sport) 담당자와의 미팅만을 급하게 마치고 영국 히드로공항으로 향했습니다.
"형 아버지 방금 긴급 수술을 수술 하셨고 수술은 잘 되었데. 근데 아직 의식은 없으셔, 그래서 가족들과 상의해 보았는데 그곳의 일정도 중요하지만 그래도 형이 오는 게 맞는 것 같아." 히드로 공항에 도착했을때 한국으로부터 온 연락은 저에게 돌아갈 힘을 남겨 주었습니다. '아버지 조금 만 기다려주세요. 제가 가고 있어요.'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가는 동안 그래도 희망이 생겼습니다. 영국 히드로 공항에서 출발직전찍은 사진입니다. 그날은 하늘은 왜이리 외롭게 푸르를까요.
9월 14일 5시 공항으로 도착해서 아버지가 계시는 병원으로 택시를 타고 이동했습니다. "저희 큰형이 오기 전까지 아버지가 살아 계실수만 있게 해주세요. 큰형이 아빠 꼭 보고 보내드려야해요. 부탁드립니다." 나중에 들어보니 이미 구급차로 이동하는 도중 심정지가 오셨고 병원에서도 한번 더 심정지가 오셨다고 했다. 하지만 우리들은 모두 기적을 바랐습니다. 병원으로도착하기 10분 전 전화가 왔습니다. 아버지가 기다리시지 못하고 떠나셨다고 열심히 택시는 달렸고 나의 눈에서 눈물도 열심히 흘러내렸습니다. 동생들의 바람처럼 아버지는 기다려 주지않았지만 선한 의사분 덕에 나는 아버지와 인사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와 한마디 말도 못나눈채 그렇게 저는 돌아오자마자 아버지의 장례식에 초대되었습니다.
장례식장이 차려지고 가만히 앉아 아버지를 봅니다. 아버지가 너무 밝게 웃고 계십니다. 그 모습을 보니 얼마 전 텔레비젼에서 기안 84가 외국의 장례식을 갔던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마다가스카르의 전통 장례식인 파마디하나(Famadihana)라는 장례식이었는데 무덤에 묻힌 고인을 다시 모셔와 가족들은 무덤에서 유골을 꺼내 새 천으로 감싸고, 고인의 삶을 기뻐하며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행진을 하던 장면이 생각납니다. 파마디하나는 한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의 장례와는 다르게 슬픔보다는 축제 분위기를 띠며, 삶과 죽음을 모두 축하하는 마다가스카르 문화가 반영되어 있습니다. 마다가스카르는 가톨릭신앙을 바탕으로 조상들과의 연결을 중요시하는 가치관을 가지고 있기에 그런일이 가능하지 않나 싶습니다. 외로움도 연결을 필요로 하고 연결은 외로움을 슬픔 부정적인 것이 아닌 긍정적이고 함께 대화할 수 있도록 합니다.
우리의 장례식은 고인의 생전의 모습과 고인과의 추억들을 이야기하며 함께 슬픔을 나누는 장소인 것 같습니다. 아버지를 알던 사람들은 아버지의 죽음에 황망해 하며 눈물로 아버지를 보내고 슬픔으로 마음을 표현합니다. 하루종일 울음 소리가 끊이질 않습니다. 저는 아버지를 그리워하고 또 아버지의 죽음을 슬퍼하는것이 가장 아름다움 이별일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한국은 일반적으로 유교식 장례를 치루는데 장례는 이 가운데 임종부터 산에 시신을 매장하는 산역(山役)을 행하는 절차를 말한다고 합니다. 과거 한국 사람들은 개인이나 가족에게 슬픈 사건인 장례를 슬픔과 절망이 아닌 위로와 화해와 해학으로 승화시켰다고 합니다. 그러한 내용은 상여에 담긴 해학과 상여소리에 담긴 해학을 통해 표현되었다고 합니다. 상여를 대단히 화려하게 만들고 상여꾼들은 상여소리를 통해 흥을 돋우거나 망자를 위로하며, 망자의 황천길에 두려움과 지루함을 달래주기 위해 노력했다고 합니다. 때로는 재주꾼을 불러 노래를 하고 악기를 연주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저도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어야 하나 고민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아버지의 장례도 즐겁게 치룰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든 것은 생각하기에 달려있습니다. 사람들은 아버지의 장례식에 와서 아버지와의 추억을 이야기하고 아버지와 저의 추억 그리고 이야기를 듣습니다. 사람들이 장례식장 채우고 그렇게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서 이야기하다보니 저는 왠지 슬프지 않고 행복해졌습니다. 그 이유는 아버지의 장례식에 초대받으면서 아버지와의 마지막 추억과 대화를 저만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영국으로 떠나던 날 아침 아버지가 새벽에 저를 데려다 주시겠다고 했습니다. 이제 다 커서 네아이들의 아빠가 된 큰아들을 새벽에 와서 태워다 주시겠다니 아내와 저는 놀랐습니다. 아버지는 평소 그런 성격도 아니시고 또 그런 적도 없으셨기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그날 아버지는 새벽 5시 30분에 어머니를 대동하고 저를 데려다 주러 저희 집으로 오셨습니다. 공항으로 가는 길에 우리는 참 행복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아빠 나는 정말 행복해요. 왜냐하면 이렇게 나이를 먹고도 부모님께 사랑받는 자식이라서. 이 새벽에 나이드신 부모님이 공항에 대려다 주시다니 정말 감사드려요. 정말 행복해요." 저는 이어서 "엄마 아빠 어떻게하면 이렇게 아들 셋을 다 사회에서 존중정
받는 훌륭한 사람을 키워내실수 있어요? 정말 두분은 대단하신 것 같아요. 저도 저도 아빠, 엄마 같은 부모님이 될거에요. 정말 감사드려요. 이렇게 훌륭하게 키워주셔서요. 그래서 이런 좋은 교육도 하게 되는 것같아요. 그리고 영국도 가고요." 어머니가 그 이야기를 들으시고 감동을 받으셨는지 눈물을 훔치십니다. 아버지는 "우리 집 식구들이 사회적으로 레벨이 높지, 아빠 생각에는 그렇다고 생각해 다들 정말 열심히 잘살고 있고 다른 집에 비하면 우리집이 객관적으로 레벨이 좀 높다고 생각해." 라고 농담을 하셨습니다. 어느덧 공항에 도착했고 저는 "아빠, 엄마 정말 감사드리고 저 잘다녀올게요. 사랑해요." 라고 말하고 부모님과 인사했습니다. 그게 사실 아버지와 마지막 대화였습니다. 하지만 동생들은 한 달 전에 가족모임에서 아버지와 만나서 대화를 한게 마지막이었습니다. 동생들은 아버지가 쓰러진 뒤에 와서 아버지와 마지막 인사도 하지 못했습니다. 생각해보니 난 아버지와 마지막 인사를 한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것고 내 마음속의 진심을 담아 감사를 전했고 또 사랑한다고 표현했습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이 이야기를 하고 다녔습니다. 전 행복한 장례를 치루고 있었습니다.
1111DAY를 준비하면서 외로움 장례식이란 아이디어를 내었다. 외로움을 극복하기 위해서 장례를 치뤄주는것이 맞는것인지? 왜 장례식인지에 대한 명확한 이유를 찾지 못했다. '외로움은 죽음처럼 치부하고 떠나보내야하는 것인가? 외로움을 보내버리면 외로움이 사라질까? 외로움은 없애야 하는 것인가? 없앨수 있을까? 결론은 외로움은 없앨 수 없다. 외로움은 우리와 함께 가야한다. 사라지 지지 않는다.' 라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외로움을 부정적 인식이 아닌 긍정적인 인식으로 승화 시켜보면 어떨까?'라고 생각의 전환을 시도했습니다. 우리는 사회적 질병인 외로움을 슬프고 부정적인 감정으로 치부하고 고립으로 이어지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겁니다. 이제 외로움은 개인의 문제가 아닙니다. 사회가 함께 해결해야할 사회적 문제입니다. 우리는 외로움 장례식을 치룹니다. 외로움을 대상으로 행해지는 이 장례는 슬픔과 절망이 아닌 위로와 화해와 해학으로 승화시킬수 있습니다. 아버지의 장례에 초대받으며 외로움 장례식을 웃음으로 승화시켜 외로움을 위로하고 나누고 또 함께 건강하게 친구할 수 있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이제 시작입니다.
아버지를 장례식을 통해 떠나보냈지만 아버지는 저와 계속 함께 하실 겁니다. 아버지에 저에게 남긴 커다란 지혜들이 앞으로 하나 둘씩 들어나게 될것입니다. 우리가 앞으로 외로움과 살아가는 방식도 아버지와 제가 이별하고 또 함께 하는 방식과 같을 겁니다. 앞으로 우리가 마주하게 될 외로움과 그 해결의 과정에 아버지도 함께 있을 것같습니다. 저는 사이시옷과 함께 아버지의 장례식에 초대 받았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와 아름답게 이별했습니다. 아버지와 이별했지만 아버지는 늘 저와 사이시옷과 함께 하실 겁니다.
"아버지 앞으로 저와 사이시옷의 걸음을 지켜봐 주세요. 감사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ps. 다음 글은 11월 11일 외로움 인식 개선의 날을 전해드릴게요. “사이시옷”의 캠페인입니다. 외로움은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의 문제라는인식의 개선을 위한 캠페인닙니다. 많은 관심과 참여를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