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YOB Kim Sep 20. 2016

잘 나가는 스타트업의 착각

바쁨을 경계하라

꿈만 같았던 연휴가 훅 지나갔다. 사업을 시작한 뒤로 명절에 맘 편하게 쉬어본 적이 언제였던가 싶다. 항상 일에 치이던가 혹은 인맥관리를 통해서 또 다른 일을 준비하는 시간이었다. 마냥 좋은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번 연휴는 일이 없다는 핑계로 맘 편히 쉴 수 있어서 그간 못 만났던 친구들이나 지인들을 만날 수 있었다.



사업은 잘 돼가니?

지인들을 만나면 인사처럼 건네는 말이다. 예전 같으면 "지금 업계 상황이 이렇고 이런 일들이 있어서 그냥 그래.."라고 상세하게 대답했겠지만 이제는 그들의 질문이 마치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언제 밥 한번 먹자"라고 하듯 무심히 던지는 말이라는 걸 알기에 "그럼, 아주 잘 돼가고 있지"라고 대답한다.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어떤 상황이 정말 사업이 잘 되어가고 있는 상황일까 생각해본다. 창업경진대회에서 상을 많이 받고 전문가들에게 인정을 받는 것, 매스컴에 나와서 우리가 하는 일이 널리 알려지고 내가 유명해지는 것, 힘들어도 조금씩 성장하는 팀과 '나'자신을 바라보는 것, 매출이 늘어 돈을 많이 버는 것 등등 사업을 시작한 이유에 따라서 사업이 잘 되어가고 있다는 기준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사무실 한켠에 있던 수많은 상장들. 하지만 상이 밥먹여 주진 않더라.


나도 지금까지 사업을 하면서 적잖이 상도 받아 보았고 매스컴을 타보기도 했다. 그리고 많진 않지만 매출을 내서 팀을 운영할 만큼 돈도 벌어 보았다. 그 과정에서 마치 사업이 잘 되어 가고 있다는 착각에 빠져 한동안 본질에 집중하지 못하고 쓸데없는 일에 시간낭비만 한 적이 있다.  


약 3년전 매일 밤세워 했었던 내부 R&D회의. 긴 회의 끝에 내린 결론이 최악이었던 적도 많다.


처음 스타트업을 시작하는 사람들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열정과 포부를 가지고 있다. 지루한 일상에서 뛰쳐나와 남들과는 다른 길을 개척해 보겠다는 기업가 정신으로 무장한 그들은 마치 전쟁터에 나가는 장수처럼 비장만 마음으로 일을 시작한다.


하지만 생각만큼 스타트업이 낭만적이지 않다는 것을 느끼는 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 시작했지만 하기 싫은 일을 더 많이 하게 되는 것이 부지기수며, 금방이라도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던 아이템은 예상치 못한 벽에 부딪혀 목표에 도달하기가 쉽지 않다. 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머리를 맞대고 서로 고민하는 것뿐. 자본이 부족한 스타트업이 미래에 대한 희망만 가지고 버티는 일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이런 고비를 넘기고 우리가 하려는 일의 윤곽이 드러나게 되면 굉장히 뿌듯하고 일이 잘 풀릴 것만 같은 기대감이 든다. 하지만 이때부터 스타트업을 유혹하는 함정들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시제품제작 중 돈 없으면 가내수공업이 진리. 어렵게 만든 제품일 수록 완성도는 아쉽고 애정은 많이 간다.


스타트업이 잘 나가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기 제일 쉬운 시기가 내부 R&D를 거쳐 만든 시제품을 가지고 외부와 처음 접촉할 때인 것 같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떻게든 빨리 시제품을 만들어서 시장에 선보이고 싶어 한다. 그리고 고객의 피드백을 통해 나온 결과를 토대로 수정해서 완벽에 가까운 제품이 나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잘 나가고 있다는 착각에 빠져 이 과정을 어렵게 만드는 몇 가지 경우가 있다.


첫 번째, 우리가 어떻게 이걸 만들었는데!

시제품을 만들기까지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을 것이다. 밤새워 열띤 토론을 벌이면서 의견이 안 맞아서 싸우기도 하고 아이템에 대한 확신이 없어서 포기할까 생각도 해보고 별 짓 다 해봤을 걸 안다. 그렇기에 처음 만든 시제품이 엉망이어도 자식 같은 마음으로 놓아주지 않으려고 한다. 우리가 틀렸음을 인정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 결과 고객의 피드백 중에서 좋은 것은 더 크게 들리고 안 좋은 것은 무시해 버린다. 고생하면서 끌고 온 사업을 조금이라도 보상받고 싶어 하는 심리적 기제에서 선택적 인지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런 일부분의 칭찬에 객관적인 분석력과 판단력을 잃어버리기 십상이다. 그리고는 스타트업이 잘 나가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게 만든다.


두 번째, 유명한 멘토가 우리를 도와주고 있어!

특히나 경진대회의 심사위원이나 소위 전문가로 불리는 멘토들의 조언도 조심해야 한다. 항상 잘 나간다고 생각될 때 파리가 꼬이기 쉽다. 조금이라도 사업이 알려지면 주위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려고 한다. 업계에서 알려진 신뢰할만한 사람이 말한 대로 하면 마치 우리도 성공적인 비즈니스를 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심지어 멘토 중 VC나 투자와 관련된 사람이 있다면 그들의 말만 듣고 급급하게 수익모델을 만드려고 무리하게 아이템의 정체성을 바꾸기도 한다. 하지만 당신의 사업을 그들이 대신해줄 순 없다. 든든한 지원군을 얻는 것은 좋지만 착각에 빠질 수 있다는 점을 항상 인지해야 한다. 스타트업이 잘 나가는 것과 잘 나가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다. 그리고 이 차이를 전문가 멘토보다는 당신의 고객이 메워 줄 가능성이 더 높다. 피드백을 주는 사람 중 실제로 구매자가 될 사람은 누구인지 파악하고 그들의 소리에 집중해야 한다.  


홍보를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던 전시회 하지만 충분한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전시회 참가는 거의 효과가 없었다.


세 번째, 바쁜 게 좋은 거야!

스타트업이 잘 나가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기 가장 좋은 핑계다. 우리의 사업을 외부에 알려야겠다는 마음이 앞서 물불 안 가리고 외부활동에 전념한다. 그도 그럴 것이 아이템 개발을 위해서 내부에서만 일을 진행해오다 밖을 나갔으니 얼마나 좋을까. 스타트업을 하는 사람들 중 바쁘게 외부에 돌아다니는 것으로 살아있음을 느끼는 사람들도 꽤나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상도 타고 전문가의 인정까지 받으면서 아직 미완성의 사업에 투자 이야기가 오간다면 정말 물 만난 물고기처럼 신이 날 것이다. 이 시기에 대표는 외부 미팅이 많아져 내부적으로 이야기할 시간이 점점 줄어들고 사업을 확장하려고 부단히 애를 쓴다. 대표가 지금 해야 할 일은 어떻게든 투자를 받아서 고생한 직원들을 먹여 살리고 나의 능력을 인정받는 것이라는 생각에 책임감이 생긴다. 직원들은 우리가 지금까지 해왔던 일들이 드디어 빛을 발하는구나 생각하며 회사와 일에 대한 자긍심이 생긴다. 언뜻 보면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시드 투자가 활발해 짐에 따라서 이런 상황에 놓인 스타트업이 굉장히 많아졌고 결과도 천차만별이다.


이럴 때일수록 바쁨을 경계해야 한다. 시장의 관심을 받는다는 것은 "너네가 정말 잘하는 거 같으니까 우리가 도와줄게"의 개념 아니다. "앞으로의 가능성을 보고 도와줘볼 테니까 지금보다 더 잘해봐"의 개념에 더 가깝다. 그러니 지금까지 해왔던 일들을 점검하고 재구조화해서 자금의 추진력으로 급속하게 성장해야 한다. 비즈니스에 대한 깊은 고민이 필요한 시기다. 괜히 이것저것 새로운 시도를 하거나 회사의 외연적인 확장에 초점을 맞춘다면 본질이 흔들릴 수 있다. 그러니 지금 정말 바쁘다면 이 바쁨이 우리의 비즈니스를 위한 바쁨인지 아니면 갑작스러운 시장의 관심과 제안들 속에서 정신 못 차리고 방향성을 잃은 건 아닌지 스스로 점검해 보아야 한다.

작가의 이전글 경험에서 나오는 권위의 힘을 느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