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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간호사 Jul 05. 2020

면접장에 함께 들어간 여섯명이 모두 같은 이름이였다.

나보다 흔한 이름 있으면 나와봐.

내 이름은 흔하다. 이 세상에 태어나던 85년도, 교과서에 실린 '철수','영희'란 이름처럼 당시 수많은 부부들의 심금을 울린 이름이 왜 '이 것' 이였는지는 모를 일이다. 


어찌됐든, 학교든 학원이든 어딜 가도 같은 이름을 가진 친구가 있는 바람에_이름만 같았으면 땡큐였다. 성으로나마 구별할 수 있으니 말이다_이름 뒤에 A나 B를 붙여가며 열심히 구별해서 불러주시는 센스있는 선생님들도 계셨지만, 그저 이름으로만 호명하시는 경우에는 우리 둘 다 누구를 말씀하시는건지 헷갈려서 눈만 동그랗게 뜬 채 동시에 선생님을 바라보았던 기억이 남아있다. 

그런 일이 있을때마다 뾰루퉁거리며 부모님께 '왜 이렇게 내 이름은 흔한 것이냐'며 투덜거렸지만, 아버지께서는 그 이름이 워낙 좋아서 그런거라고 그저 허허 웃고 넘어가셔서, 내 속은 몰라주신다는 생각에 조용히 더 삐진채로 침대 구석에 볼을 비비며 누워있곤 했다. 

학생때부터 '조용한 관종'이였던 나는 굳이 친구들 사이에서 튀고 싶은 마음은 없었지만, 약간은 특별한 이름을 갖고 싶다는 딱 '질풍노도의 청소년기'다운 생각으로 한때 개명을 꿈꾸었다. 하지만 막상 멍석을 깔고보니 딱히 바꾸고 싶은 이름이 떠오르질 않아 결국은 그냥 이 이름을 안고가기로 마음 먹었다.



대학생일때에는 하필이면 공부를 전혀 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했던 친구 하나가 이름은 물론 성까지 똑같았던 터라, 학점이 나올 때만 되면 신경이 바싹 바싹 곤두섰었다. 혹시나 교수님들이 두 사람의 성적을 바꿔서 입력하진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당시에는 지나치게 예민한, 오바스러울 정도로 말도 안되는 고민이라고 주변 친한 친구들의 질타를 받았었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실제로 학부 4년을 통틀어 그 친구와 성적이 바뀌는 바람에 수정이 들어갔던 적이 열 손가락을 넘겼다. 

이런 부분을 보면, 교수님들의 인간미가 느껴지기도 하지 않는가? 지나고보니 이 기억도 추억이 되었지만, 당시에는 성적이 발표될때마다 항상 예민하게 체크를 해야 해서 어찌나 피곤했던지 지금도 그때를 떠올리면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 같다. 그나마 성적차이가 컸으니 망정이지, 아니였으면 내 예민함이 하늘을 찔러 전 성적 OMR을 다 확인했을지도 모른다. 

처음으로 A가 나올 것이라 예상했던 과목에서 C를 받았던 날, 어차피 시험이란건 상대평가이니 다른 친구들에게도 쉬웠나보다며 술이나 몇 잔 위장에 때려 넣으며 아쉬움을 풀려다가 혹시 몰라 교수님께 조심스럽게 메일을 띄우던 날을 기억한다. 그리고 바로 C가 A로 바뀌었다!

참, 그 친구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이건 뭐 줬다 뺐는 것도 아니고 학점이 시시각각으로 바뀌니 그다지 기분 좋은 경험은 아니였을 것 같아 지금 이 자리에서나마 심심한 위로의 말을 전한다. 

사실 사회생활 좀 해봤다는 지금 보자면 '학점'이라는게 학생때 느꼈던 것처럼 절대적인 요소는 아니였던 것 같기는 하지만, 별다른 활동없이 집-학교만 반복했던 나의 일상속에서 성실성을 입증할 수 있을만한 최고의 지표가 '학점'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그러려니 하며 털털하게 넘겼더라면 지금쯤 내 성적표에는 C가 빼곡했을 것이다!


이렇게 어릴 적부터 내 이름이 흔하다는 자각은 꾸준히 있어왔다. 하지만 이름이 같은 통에 벌어진 이벤트 중 화룡점정은 한 면접날이였던 것 같다.

꽤 간절하게 입사하고 싶었던 회사였던터라, 전문 메이크업 업체에까지 맡기진 못했어도 생판 안써보던 고데기로 머리도 말아보고, '면접 메이크업'을 초록창에 검색해가며 최대한 얌전하고 단아해보이도록 평상시의 굵은 아이라인도 포기했다. 여름엔 덥다는 이유로 절대 신지 않는 커피색 스타킹까지 신고는 면접의 정석이란 느낌의 정장을 차려입은 채 떨리는 마음으로 함께 면접장에 들어갈 여섯명의 조원들과 함께 대기장에 앉아 있었다. 면접 진행관님께서 6명 중 가장 앞자리에 앉았던 한 아이에게 '조장'역할을 해달라고 하셨는데 그 아이의 이름이 나와 똑같은 것이였다! 이또한 우연이겠거니, 워낙에 내 이름은 흔하니 그럴 수 있다는 생각에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이 회사는 지원자들을 이름 가나다순으로 정렬하던 곳인 모양이였다. 

처음 면접관들을 마주하여 인사를 드리는데, 그 중 한 분이 면접자들에게 한명씩 간단하게 이름과 학과를 말해달라고 하셔서 한 사람씩 소개를 시작했다. 그런데 6명 모두가 성은 물론 이름까지 똑같은 것이 아닌가! 모두가 당황해하며 신기하다고 웃는 통에 분위기는 유해졌지만, 그때의 민망함을 떠올리자니 지금도 조금 소름이 돋는 것 같다.


이런 흔하디 흔한 내 이름 덕분에 타고난 예민함이 한 스푼 정도는 더 진해졌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이런 '예민함'이 있었기에 피곤한 적도 많았지만 적어도 '학부 성적'은 구해낼 수 있었다! 인생, 하나를 내어주면 하나는 받기 나름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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