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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간호사 Jul 04. 2020

'시끄러운 사주'를 타고난 어린 소녀

'예민함'의 끝판왕

자고로 아침에 마시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은 내 하루가 진정으로 시작될 것이라는 걸 알려주는 일종의 '시작 버튼' 아니겠는가? 


습관처럼, 일상처럼 들린 단골 카페에서 마치 다른 메뉴라도 고를 것처럼 한참동안 메뉴판을 보고 서있었다. 조금은 한량스러워 보일지 몰라도 무엇을 먹을지 고르는 그 시간은 마치 이미 카페인이 내 혈관을 돌고 있는 양 기분이 좋아지는 순간. 어제 산 허리 라인이 강조되어 보이는 블라우스를 제대로 소화하기 위해서는 이 이상 옆구리살을 늘려서는 곤란할 것 같다는 생각에 오늘도 아.아 한 잔을 주문하고 음료 대기쪽 줄로 비켜서서, 이따가 볼 드라마를 넷플릭스 어플을 뒤적거리며 골라보고 있다. 

휴가란 시간만 풍족한 것이 아니라 내 마음에까지 이렇게 커다란 여유를 베풀어 주는구나. 이쯤되니, 까페 창 너머로 보이는 비가 내리는 풍경도 지금 여기에서 흐르는 음악소리와 어우러지면서 뭔가 로맨틱하고 도시적인 느낌. 철퍽거릴 땅을 밟으며 집으로 돌아가는 것도 나름 운치가 있지 않을까 하는 파워긍정의 공기가 날 둘러싸고 있음이 느껴진다. 

때마침 핸드폰에 진동이 부르륵 느껴져 뭔가하고 열어 보았다. 앗차차. 어제 하루종일 장바구니에 넣었다 뺐다를 반복하며 여름에 시그니쳐룩처럼 입을 '인생 블라우스'를 고르고 있는 와중에, 운명처럼 발견하여 장바구니에 담길 새도 없이 바로 결제까지 직행하였던 한눈에 뿅 반한 그 미색 블라우스가 품절이 되었단 슬픈 소식이 아닌가. 아, 좋았던 기분이 한순간에 와르르 무너지면서 마음의 저변에 깔려 있던 진흙바닥 안으로 빠져드는 기분이다. 아니야. 그까짓 블라우스 한 장이 뭐라고, 품절이면 돈 굳은거지 뭐. 이렇게 긍정적으로 생각해보고자 했지만 쉽지 않다. 

이런 사소한 일 하나 하나도 그냥 넘기지 못하고, 신경쓰여하며 그 순간의 기분을 180도 엎어버리는 나는 자타공인 예민한 사람.




"시끄러운 사주"

올해 초, 정치인들도 줄을 서서 기다릴만큼 정말로 용하다며 어찌나 친구가 옆에서 같이 가자고 팔짱을 끼고 놔주질 않던지, 못이기는척 따라간 철학관에서 나더러 '시끄러운 사주'라고 했다. 일상의 '작은 어긋남'도 나에게로 오면 크게 부풀어져서 내 속도 시끄러워지고, 남들한테도 시끄럽게 굴 팔자라며 날 탁 바라보시는데 '맞다!'싶어서 뜨끔했다.

 '과연.. 이 집 꽤 잘보는데? 이런 것도 사주에 나오다니!' 

이쯤되니 사주를 한번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마저 든다. 

다른건 몰라도 '예민함'에 있어서는 상위 1% 정도엔 가뿐히 들 것이라고 생각하는 내가 그럭저럭 털털해 보이는 사회적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소모시키며 고생하고 있는지 살짝 인정받은 느낌. 


어렸을 때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초등학생이던 꼬꼬마 시절의 종례시간, 모두가 앉아있는 교실에서 갑자기 담임 선생님이 우리 반에서 가장 예민한 사람이 누구인지에 대해서 질문을 하시는 것이 아닌가. 워낙 쌩뚱맞은 타이밍이라 뭔가 싶어서 듣는 둥 마는 둥 노트 구석에 좋아하는 만화 그림을 따라 그리며 딴청을 피우고 있었는데 담임선생님께서 갑자기 내 이름을 부르셨다. 

너무 놀라 어찌할 바를 모른 채 얼굴이 새빨개져 당황하는 나를 보시며, 선생님께서는 '예민하다'는 걸 나쁜 뜻으로 말한 것이 아니라고 덧붙이시며 말을 이어가셨다. 00이가 이번에 반을 대표하여 독후감 상을 받게 되었다며, 표현력도 세심하고 여린 부분이 있는 학생이라고 칭찬섞인 말씀을 하셨지만,  모두의 시선이 나에게 확 집중되는 것이 느껴지는 바람에 붉어진 얼굴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아 꽤 애를 먹었었다.


그랬다. 나는 어릴 적부터 누군가가 나를 힐끗 쳐다보는 것 만으로도 놀랍게도 몇 초만에 얼굴이 새빨개지곤 했다. 그리곤 마음의 안정을 되찾더라도 아주 천천히 본래의 낯빛으로 돌아갔다. 나이를 조금 더 먹어 메이크업을 시작하고 나서는 파운데이션을 좀 더 두껍게 발라 포커페이스를 해보겠다며 잔머리도 굴려봤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1cm정도는 피부 위로 덧칠을 해야할 것 같아 포기했다. 

사람의 눈길에는 정말로 기대 이상의 무게가 있었고, 나는 그것을 남들보다 더 예민하게 느끼고, 또 받아들였다. 


어떻게하면 예민함을 벗어던지고 보다 홀가분한 내가 될 수 있을까? 무조건 좋다고도 나쁘다고도 할 수 없는 나란 사람의 대표적인 속성, "예민함". 이제 그것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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