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여자 연애 고백사 1
프로필 :
나이 서른
키 148cm
몸무게 40.3kg
귀염상
이 정도면 나를 충분히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나를 모르는 사람도 나를 충분히 상상할 수 있으니. 그만큼 솔직하고 싶었다. 이야기 사이에 나를 숨기고 싶지 않아서.
사실 서른이 아니다. 서른 하나다. 만 나이로 바뀐 뒤 9월 10일 생일 전까지는 29살이라고 바득바득 이야기하고 다니다가 생일이 돼서야 서른 이라고 인정했다. 20대 끝자락이나 서른이나 한 살 차이인데 뭐 그렇게 차이나는 척 이야기 했는지. 서른이 주는 의미는 싱그럽지 않음, 세월의 흔적이 쌓여가고 있음, 순수하지만은 않음 등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어서 일까. 이제는 사람들 앞에서 애교 섞인 말투도 유치하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나의 습성과 습관들을 바꿔야 한다는 말처럼 들렸다.
서른 한 살이 무슨 노처녀인가. 요즘 시대에 서른은 옛날로 치면 20대 중반이라고 한다. 그래도 생각해본다. 시대가 아무리 흘러 겉모습은 점점 젊어진다고 해도 자궁은 옛날과 똑같은 속도로 늙는다. 30대에 들어서고 난 뒤 가장 많이 바뀐 것은 결혼에 대한 생각이다. 비혼이나 아니냐를 두고 한 가지 생각을 굳혔다기 보다는 하루에도 수십번씩 마음이 왔다갔다 한다는 점이 20대와는 확연히 달라진 점이다. 결혼을 해야 할까? 난 아직 결혼 준비도 생각도 없는데. 서른 중반 전에는 가야 한다던데. 아이는? 내가 결혼까지 하고 싶은 사랑하는 남자가 아이를 원하면 나는 낳아야 하는 걸까? 모든 것에 확신이 없었다. 스물과 마흔 사이의 서른은 말 그대로 ’설익다’에서 유래했고, 고대 이집트어로는 완성으로 가는 문턱을 의미한다고 한다. 옛말이 이러니 내가 이렇게 고민하는 것도 당연한 듯 하다.
그렇지만 나이와는 별개로 하늘은, 신은 나에게 큰 고민 거리를 던져준 게 맞다. 이번 생일은 사실 큰 의미가 있다. 이마트 트레이더스 케익 코너에서 냉장고 앞에 서성이는 나를 보며 엄마는 말했다.
“내가 딱 올해 니 나이 9월 10일날 니를 낳았다는 거 아니가.”
그렇다. 엄마와 딱 30년 차이 나는 오늘, 엄마는 몇 시간 동안의 긴 진통 끝에 나를 낳았다. 그렇게 큰 일을 하고 있던 엄마와는 달리 나는 아직 사회에서 자리도 완벽하게 잡지 않았고, 매달 프리랜서 월급은 요동치며 남자친구와는 헤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아 깊은 상실감에 빠져 케이크 냉동고 앞에서 살까 말까를 고민하며 그 하나도 완벽하게 선택하지 못한 채 서 있었다.
“엄마, 케익 살까 말까.”
“사지마. 새모이 만큼 먹고 냉장고에 쳐박아 놓으면 니 동생 살만 찌운다.”
엄마는 언제부터 저렇게 똑부러졌을까.
나는 원래부터 이런 성격은 아니었다.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을 확실히 알았다. 뭐가 되고 싶은지도 항상 알고 있었고, 과감하게 도전했으며, 빠른 판단으로 포기도 빨랐다. 무언가를 이렇게 오랜시간동안 좋아하는 대상을 멀리 보내면서까지 고민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내가 이렇게까지 고민하는 이유는 단 한가지다. 나에게는 가임 가능 시기를 고민하는 순간이 남들보다 10년은 앞당겨져 있기 때문이다.
물론 20대에 결혼해서 아기 낳고 열심히 사는 부부들도 있겠지만 요즘 추세는 30대 중반에 결혼해서 30대 후반에 아이를 낳는다. 그리고 물론 내 주위에도 아직 아기를 낳은 여자인 친구가 한 명 있을까 말까다. 결혼한 사람도 손에 꼽는다. 그런데 나는 병원에서 아이를 낳지 못할 수도 있다는 말을 들었다. 못 낳으면 못 낳는 거지 고민할 게 뭐가 있냐 싶겠지만 작년 남자친구를 만나기 전 의사가 한 가지 선택지를 줬기 때문이다.
“수술하기 전에 난자 채취를 해놓는 게 어때요?”
의사의 이 말 한마디에 나는 선택을 할 수 있는 입장에 놓인 듯 했다. 그렇지만 나는 인생을 살면서 출산을 위해 미리 무언가를 어린 나이에 준비한다는 개념 자체가 없었다. 그래서 마음이 거부했다. 그리고 이내 못 낳으면 못 낳는 거지 뭘 그렇게 노력하냐는 생각으로 빠졌고, 또 매일 바쁜 일상을 살다 보니 난자 채취에 대한 생각을 잊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누군가를 좋아하게 됐고, 그 사람은 아이가 없는 삶은 생각해본 적도 없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나와 헤어지고 싶은 건 아니었다. 그 사실이 더 나를 미치게 만들었다. 차라리 나는 애 못 낳는 건 싫으니까 헤어지자고 말하면 마음은 아프지만 깔끔하게 놓을 수 있다. 그런데 마치 의사의 말처럼 그는 자꾸 나를 선택하는 입장에 놓이게 만들었다.
긴 시간을 함께한 건 아니었지만 분명 즐거웠고, 일상을 살면서 소소한 이벤트가 생긴 것 같아 행복했다. 나는 그 사람이 필요한 능력을 제공해줄 수 있었고, 그는 집에 있기 좋아하는 집순이를 밖으로 나가고 싶게 만들었다. 이렇게 계속 서로를 채워줄 수 있다면, 그래서 몇 년 더 사귀다 보면, 언젠가 결혼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작은 불씨가 마음 속에 생겼었다. 한 번도 결혼 생각은 해 본 적도 없는 내가. 그런데 신은 나에게 그 불씨를 꺼트리라 말했다.
그는 계속 사귀면서 생각해보자고 했지만 나에게는 이미 끝이 보였다. 나 때문에 아이를 포기하는 삶을 살게 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내 몸 때문이기에 받아들일 수 있지만 상대에게까지 그런 생각을 바라면 안 된다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나 또한 원하는 건 항상 가져야 하는 성격이기 때문이다. 그에게 나에 대한 사랑이 그것밖에 안 되냐고 질타할 수도 없었다. 지금의 선택은 먼 30년간의 긴 세월 자신의 선택을 매일 책임져야 하는 일이기에.
나는 집에 오자마자 금새 케익에 대한 존재를 잊었다. 결국 이번에도 엄마 말이 맞았다. 나는 케익을 먹고 싶은 게 아니었던 것이다. 눈 앞에 있어서 고민했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