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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ugo Jan 29. 2017

요통 환자, 병원을 떠 돌다.

             지난 4월에 시작된 허리 통증-2편 by 수습기자

2017년의 해가 뜨고 민족의 명절이라는 '설'이 다가왔다. 설이라는 명절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기억으로 다가오는 것일까. 대부분의 남성은 온 가족과 친지와 만나서 화투를 치거나 갖은 음식으로 즐거운 만담을 늘어놓는다고 기억할는지, 낑낑거리며 줄 지은 고속도로 교통체증 속에서 가장의 의무와 부담을 떠올리는 것인지. 여성에게 명절은 부엌에서 익숙하지 않은 손기술로 전을 부치면서 시댁에서 온갖 스트레스를 받는 날로 기억할 것인지. 아마도 우리는 이 두 가지 사실이 틀리지 않았음을 잘 안다. 


그럼에도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명절은 우리의 허리를 고통 속에서 허우적거리게 할 것이라는 사실은 놓치고 살아간다. 밀리는 자동차 안에서 운전대를 잡은 사람의 허리나 전을 부치는 사람의 허리나 멀쩡하길 바라는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오늘은 1편에 이어서 각 병원을 떠 돌았던 흔적을 살펴보기로 했다. 참고로 동네만을 쓰되 병원이나 의원 명칭은 생략한다. 논란의 여지가 많기 때문이고 이 또한 내 개인의 주관된 판단이기 때문이다.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00 의원을 찾아가다"


그랬다... 나는 아침을 상큼하게 맞이했고 화장실을 가려던 찰나에 찾아온 급성요통, 그것은 나를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국가대표급 트레이너를 소개를 받았음에도 나의 통증은 멈추질 않았다. 지인 의사를 통해서 나는 응급실을 향해 걸었다. 나는 죽을 것 같다는 공포와 두려움을 다시 느끼게 됐다. (과거에 A형 급성간염으로 입원한 바 있다. 그 고통은 임산부의 고통과 맞먹는다고 했다) 


진통제를 맞은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살아날 수 있다는 느낌이라고 적는 것이 더 정확하겠다. 그날 하루는 그냥 누워만 있었다. 소위 허리 병신이라는 말이 무엇인지 허리가 부러지면 어떤 인생을 살 것인지 예측하기는 쉬웠다. 뭐랄까. 그냥 느낌이 온다. 이러다가 불구가 될 수 있다는 그런 직감이. 평소 나는 밖에서 있기를 좋아하고 사람을 만나는 것이 좋고 거절을 잘 모르는 사람이다. 당일 약속이 있는지도 몰랐다. 그럼에도 나는 거절이 매우 쉬웠다. 이보다 더 쉬울 수가 있을까. 약속 장소로 나오라는 지인의 꼬드김에도 단호해졌다. 


"00야~ 오늘 저녁에 나오는 거지? 뭘 먹을까? 오래간만에 맛집 가서 회포나 풀자! 오늘 사람들 많이 나온 댄다 야." 나는 단호했다. 판단은 명료했으며 내가 뱉어낸 문장은 깔끔하고 또 깔끔했다. 

"안됩니다! 아~ 저 지금 죽을 것 같아서요. 절대 못 나갑니다!"  


다행히도 욕은 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났으니까 말이지. 솔직히 죽이고 싶을 정도로 화가 나는 것이었다. 아니 사람이 죽어가는데 술 마시고 마취가 된다는 말을 어째 할 수가 있는 것일까 싶어서다. (사실 지금도 우리는 이렇게 살고 있다...) 순간 머리 속으로 떠 올렸다. 나의 세포분열 속도는 얼마나 될까. 재활을 위해서 내 몸의 세포가 활성화되려면 어느 정도의 약과 치료가 필요할 것인지를 말이다. 어둠이었다. 머리 속은 곧 깜깜해지고 다른 대안은  떠 오르지도 않았다. 오른쪽으로 돌고 왼쪽으로 돌고 나는 마치 양꼬치가 된 기분이었다. 


하루가 지났다. 

그날 밤 나는 자세를 바꾸지도 못했다. 에로영화 주인공이 된 것도 아닌데 신음만 나왔다. 가족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밖을 쏘다니며 운동도 곧잘 하는 녀석이 하루 만에 밤새 소리를 질러대니 이상하다는 반응과 평소에 운동을 과하게 했냐는 질타가 쏟아졌다. 통증은 이렇게 한강의 '세빛 둥둥섬'같은 외딴섬이 되는 환경을 만든다. 이것은 외로움인지 무심한 것인지 분간이 안될 정도로 미치고 팔짝 뛰는 그런 감정인 것이다. 처량하게 방바닥에 누워서 핸드폰으로 '요통 치료'라는 키워드와 '통증 전문의'를 검색했다. 마음도 급해서인지 눈에 들어오는 곳이 없었다. 모든 병원, 모든 의원이 전문가였기 때문이었고 민간요법은 덜컥 겁이 나서 몇 개의 블로그를 읽다가 관두고 말았다. 다시 양꼬치가 된 내 몸은 독일산 보이러 전기 매트에 의지한 채 구워지기 시작했다. 


인간은 위기가 닥치면 빠른 길을 찾으려 한다. 행동 심리학에서 인간은 대개 익숙하고 편한 길을 선택한다고 한다. 마치 눈보라가 빗발치는 극한의 장소에서 태양의 흔적을 기준점으로 걸어가면 살 것 같다는 믿음을 가지는 것과 같다. 실제로는 자신의 그룹에서 멀어짐으로 구조될 가능성은 현저히 떨어지는 것처럼 말이다. 나도 이런 인간이다. 일단 내 몸은 통증으로 뒤덮이고 온 몸에는 통증의 냄새가 난다. 지독한 고통이 밀려온다. 방법은 국가공인 자격을 가진 '의사'를 찾아가는 것이다. 평상시에 길을 걷다가 보았던 그야말로 얼핏 기억나는 병원이나 의원의 기억을 찾기 위해 내 머리는 열심히 돌고 돌았다. 


앞서 말한 대로 인간은 익숙하고 편한 선택을 한다는 말이 맞았다. 의사 친구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바쁜 사람들 괴롭히기 싫어서 무작정 카카오 택시를 불렀다. 순간 떠오른 여의도 정형외과 00 의원을 찾았다. 허리 통증을 줄이기 위해서 호흡은 최소한으로 조절을 했고 택시를 탈 때도 손잡이를 타고 자리에 앉아야만 오른쪽 궁둥이 좌골 신경이 그나마 통증이 줄었다. 내 엉덩이가 두 개인지, 하나인지 느낌은 잘 없었다. 누군가 블랙홀이 어떤 것이냐고 초등학생이 묻는다면 이런 느낌이라고 말해줄 것 같았다. 00 택시 기사님의 맨스 플레인이 시작되었다. 평소에는 이러한 성향의 기사를 만나면 따지는 편인데도 참을 수밖에 없었다. 아프니까 청춘이 아니라, 아프니까 무슨 말을 하는지 안 들리더라. 


나는 잽싸게 수속을 마쳤고 의사의 확실한 처방으로 걸을 수 있기를 고대했다. 드디어 원장과 마주한 나는 비록 통증이 몰려왔지만 희망을 바라보고 있었다. 몇 마디가 오고 갔다. 고개를 갸우뚱 거리던 의사는 나의 척추를 맞추기 시작했다. 


두두둑... 뚜둑... 뭔가 맞춰지는 느낌이다. "아... 드디어 걷는 거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어서라길래 기쁜 마음으로 일어섰다. 의사를 마주한 채로 잔뜩 희망을 부여잡고 몸을 일으켜 보았다. 그러나 이내 오른쪽 허리가 펴지지 않는다는 사실은 쉽게 알 수 있었다. 다시 두두둑... 뚜둑... 의사는 어떠냐고 물었다. 턱관절을 만지고 손가락을 떼었다 놓았다를 반복하였다. 돌아온 말은 "00님은 골반이 틀어져 있습니다. 저기로 가서 초음파 치료받으세요." 


아프지만 말할 수 없었다. 내가 골반이 틀어졌다는 사실을 알기 위해서 택시를 타고 여기까지 왔냐는 말을 하고 싶을 정도로 짜증이 넘쳤다. 통증은 사람을 평소보다 4-5배 정도 예민하게 만든다. 그러나 어쩌겠나. 나는 착한 환자가 되기로 했다. 온몸에 힘을 주고 손가락이 가리키는 장소로 걸음을 옮겼다. 레이저 초음파란다. 뭔가 딱딱 소리를 내면서 내 둔부를 때린다. 눈에 눈물이 맺힐 정도로 따끔하고 아프기까지 했다. 간호사는 강도가 적당하냐고 물었다. 속으로 말했다. 강도가 어떤 정도가 알맞은지 내가 어떻게 알아요라고 말이다. 매정한 간호사는 다시 적당하냐고 물었다. 


"아픕니다... 이거 원래 아픈 건가요?" 

간호사는 레벨을 조금 낮추고 알람을 설정하고 사라졌다. 나는 프라이팬 한 마리의 생선이 되었다. 한번 뒤집고 다시 한번 뒤집고 그렇게 치료는 끝났고 진통제를 처방받았다. 의원에서 나온 나는 구석으로 가서 담배 하나를 물었다. 자기 몸은 어느 정도 자신이 안다. 시쳇말로 "아... 0 됐다..."라는 느낌이. 순화해서 말하면 '망했다'라고 생각했다. 할 수 있는 것은 통증이 없는 손가락을 이용한 담배 피우기, 숟가락을 들어서 밥을 먹을 수 있고, 내 주둥이는 아직도 쉴 새 없이 떠들 수 있고, 내 눈은 아직 멀쩡해서 책과 영화를 볼 수 있고, 사랑하는 사람과 증오하는 사람을 뚫어지게 쳐다볼 수 있다는 것 정도였다. 아프면 갑작스레 긍정의 화신이 되기도 한다는 말은 맞다. 괜한 고마움을 새삼 느끼게도 된다.


담배 하나, 둘... 

조금 나아졌다. 오늘 내 할 일은 마쳤음을 알았다. 다시 생각을 했다. 진통제를 처방받으며 약사에게 물어보니 허리 보조대를 착용하라 신다. 순간적으로 내 눈에는 불빛이 튀었다. 이런 것을 유레카 기쁨에 비할 수 있는 전율이라고 할까. 걸린 제품 사이로 나는 가장 비싼 것을 골랐다. 왜? 나 님은 소중하니까... 


약국 건물 화장실로 가서 미친 듯이 포장지를 뜯었다. 소변을 보고 있던 중년의 남성은 나를 보고 위아래를 훑고 사라졌다. 상의를 탈의할 정신도 없다. 말아 올린 옷을 이빨로 물고 나는 복대를 찼다. 왜 그랬을까... 왜 나는 어찌하여 옷 위에 복대를 착용하지 않았을까. 택시를 타고 돌아온 나는 옷을 벗고서 깨달았다. 복대 자국 하나하나가 예술이었다. 배에 새겨진 스파이더맨 줄무늬. 대락 두 시간은 족히 더 걸려서 사라졌다. 이런 황당한 모습, 논리적 의사 결정 능력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내 모습에서 헛웃음이 났다. 


진통제를 털어 넣었다. 약은 정말이지 쓰고 강렬했다. 무슨 약으로 구성되었는지는 모른다. 정신은 약간 멍해지면서 통증은 많이 잦아들었다. 이래서 약을 복용하는 것일까... 물론 진통제의 효능에 대해서 알게 된 것은 몇 개월이 지나고 난 후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약에 대한 잘못된 상식, 일반적 선입견을 나도 지니고 있었다. 기억이 났다. 개인이 지닌 상식은 이제껏 살아온 그 사람의 편견이라던 어느 고명한 철학자의 말도 맞다는 사실을 깨닫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깨달음 하나

진통제는 통증만 줄여 주는 것이 아니라 통증의 원인이라는 염증도 제거해준다. 이런 과정을 통해 우리의 통증은 줄어드는 것이다. 당시에 나는 잘 몰랐다. 진통제가 워낙 독하다 보니 덜 먹어야만 내 몸은 빨리 회복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픈 분들은 약을 의사가 진료하고 처방하면 약사의 약을 주어진 기간만큼은 잘 복용하는 것이 환자의 의무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의사들이 자주 말하듯이 "착하고 성실한 환자가 빨리 낫는다"는 조언은 진리다.


깨달음 둘

허리 보호대, 일명 복대라고 불린다. 허리의 통증이 생기면 가장 먼저 구입해야 할 아이템이다. 어떤 원인으로든 급성 요통이 발생하면 먼저 환자 스스로가 자신의 허리를 보호해야 한다. 그 첫 번째 파트너가 가족이 아닌 바로 '허리 보호대'이다. 개인적으로는 허리 뒤를 받치는 지지대가 있는 것이면 좋고, 다만 보호대도 사이즈가 있다. 약사에게 물어보거나 자신의 허리 사이즈(사실 배가 나온 정도까지 포함)를 알아두는 것이 좋은 방법이겠다. 허리 보호대로 급성요통을 만성질환으로 전환시키지 않는 방법이 우선임을 잊지 마시길 당부드린다. 



*다음 이야기는 또 다른 병원을 방문한 이야기다. 지난 9개월 간 찾아다닌 병원과 의원이 워낙 많아서 넘어가려고 했지만 각 의원마다 겪은 체험이 지금도 요통에 고통받는 분들이 접하면 공감을 많이 할 것 같아서 이어가려고 한다.


 설 명절, 복된 시간 가지시길 바라옵고 새해에 모든 일이 술술 풀리는 해가 되기를 진심을 다해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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