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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ugo Mar 26. 2022

우울증이 내게 가르쳐 준 것 들...

나의 우울증 이야기 #1

5년이 지났다. 

나는 그동안 적지 않는 나이를 먹게 되었다. 

살도 쪘고 내 몸도 예전 같지 않음을 느끼게 되었다. 

5년은 이런 변화를 체감할 수 있는 꽤 긴 시간이었다. 


5년, 나의 우울증이 지속된 시간이다. 

현재도 우울증은 나와 함께 지낸다. 

약을 복용하지 않아도 사라질 것 만 같았는데 큰 착각이었다. 


주기적으로 들르는 정신건강의학과 

5년 전, 지인의 도움으로 우울증 초기였음을 알게 되었고 우연의 연속이었는지 몰라도 지인이 하필 정신과 전문의라서 나는 그의 도움을 받아 내 인생 처음 정신건강의학과를 방문하게 되었다. 그리고 시간은 벌써 5년이 지났다. 


나는 우울증을 치료 하면서 많은 변화를 겪었다. 적지 않은 변화들 가운데 대표적인 것을 꼽아 보려고 한다. 


1. 우울증이라는 사실 받아들임  

2. 지난 상처, 직면하는 용기 

3. 상담 선입견 제거 

4. 외로운 내 모습에 대한 인정  

5. 화장실 청소의 기쁨


이렇게 대략 5가지 정도가 될 것 같다. 우선 내가 우울증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상담을 받게 되면서 나에 대한 이야기, 지난 상처들을 들추어 볼 수 있었다. 사실 1~3번은 하나의 카테고리일 수 있다. 하지만 즉흥적으로 써 내려가는 브런치라서 양해를 해주길 바란다. 아무튼 나는 상담을 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의 오래된 기억을 들추어 보았고 매 순간 어떤 힘듦이 있었다. 때로는 울기도 하고 때로는 상담 이후에 원인을 알 수 없는 분노에 휩싸이기도 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나는 점차 나아졌다. 나를 인정하게 된 것이다. 나의 부족함도 받아들이고 장점도 재발견하는 과정이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상처를 보듬을 수 있었다. 유년 시절의 내 아픈 기억을 돌아 보면서 수용하고 포용하는 과정을 거치게 되었다. 일종의 트라우마 치료도 병행을 한 것 같은 효과가 있었다. 사랑 받지 못했던 어린 시절의 나, 그래서 생겨 버린 분노와 좌절, 내 아버지에 대한 분노를 스스로 이해하게 되었다. 아마도 상담을 더 빨리 받았더라면 내 인생은 송두리째 바뀔 수도 있었을 거라고도 생각하기에 이를 정도였다. 물론 아직 내 안의 상처에 대해서 직면해서 돌아볼 것들이 많이 남아 있다. 


우울증 치료를 받으면서 상담에 대한 선입견을 제거했다는게 어쩌면 큰 소득인지도 모른다. 타인이 과연 나를 이해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 부터 절대 이해하기 어렵다는 강한 편견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도 사람인데 어떻게 나를 평가한다는 것일까. 그러나 겪어 보니까 철저히 나의 편견이었다. 평가라기 보다는 그들은 굉장히 오래 훈련이 된 전문가였고 그만큼 객관적으로 상황을 바라보는 분들이었다. 그리고 최대한 나의 이야기를 들어 주는 경청이 일상화 되어 있는 전문가였다.


일련의 상담을 이어가면서 인간의 고통은 혼자 풀 수 없는 것들이 있음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평소 항상 나는 내 고민을 혼자서만 풀어 나가고 있음을 깨달았다. 친구와 이야기 하는 횟수도 줄어들고 하다 못해 친한 친구들을 만나기도 어려운 상황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모두들 가정이 생기고 아이도 있다 보니까 예전처럼 이야기를 오래도록 나눌 수 있는 시간이 턱 없이 부족했다. 아마도 나만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세대의 특징이라고 하기 보다 각자의 상황이 우리를 소외되는 상태로 몰아가는 것 같다는, 이런게 아마도 도시의 삶의 특성인가 싶을 때도 있었다. 그만큰 나와 우리는 외로워 지고 있는 것이다. 


우울증 치료를 받으며 내 일상의 큰 변화가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청소의 기쁨, 화장실 청소가 주는 어떤 청량감이었다. 처음에는 이런 주문을 받았을 때는 과연 얼마나 효과가 있길래 힘들어 죽겠는데 청소를 하라는 주문을 하는 것인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그러나 우울증을 겪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얼마나 내 몸 하나 움직이는데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고 그 단순한 행위를 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지를. 하지만 근성은 있다 보니까 반신반의 하면서 실행에 옮겨 보았다. 보일러를 켜고 화장실 청소를 해보았다. 소독 스프레이를 사서 질펀하게 뿌려 놓고서 몇 분을 기다리고 청소용 솔로 바닥을 박박 밀어 보았다. 씻겨 나가는 곰팡이 자국, 물 때 같은 것이 씻기어 나갔다. 그러고 나니 갑자기 기분이 확 좋아지는 것이었다. 이런 일 이후로 나는 화장실 청소를 자주 하게 되었다. 조금만 더러워도 청소용 스프레이를 잔뜩 뿌리고 깨끗한 상태로 만든다. 이런 과정이 되풀이 되다 보니까 더 많은 변화가 찾아왔다. 미니 진공청소기를 구입을 해서 바닥이나 러그도 청소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무엇보다 기상을 하면 내 이불을 잘 접어서 침대 구석에 가지런히 놓아 두기도 했다. 나는 깨닫게 되었다. 작은 변화가 쌓이면 사람이 변하기 시작한다는 단순한 사실을 화장실 청소를 통해서 다시 배우게 되었다. 이렇게 나는 아주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다음 이야기는 상담을 받고 작은 변화를 생활 속에서 실천하는 과정과 약간의 변화를 간략하게 정리해 보려고 한다. 


오늘은 주말이다. 토요일, 단어만 떠올려도 신나고 왠지 푸근해지는 그런 날이 토요일이다. 여러분의 토요일이 여러분만을 위한 시간이기를 바래 본다. 


정말 오랜만에 다시 브런치에 내 생각을 끄적이기로 마음 먹고 끄적여 보았다. 생각 난 김에 화장실 청소를 할 마음을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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