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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한 Dec 23. 2022

나도 누군가에게 희망일 수 있을까

면접을 보고 있다. 이번주는 벌써 3번이나 면접을 봤다. 나의 쓸모 있음을 끊임없이 증명하려고 간절하게 한마디 한마디 던지면 회사들은 말도 안되는 조건을 내걸거나 우리 회사를 발판으로 도망갈 거 아니냐는 투로 대꾸를 하곤 했다. 어쩔 수 없다. 나의 대답이 틀려먹은 것이니, 이 회사와는 연이 닿지 않는 것이니 다른 회사를 찾아봐야 한다. 아무것도 잘된 일이 없는 한 주를 보내고 있으면서도 나는 멀쩡하게 밥을 잘 먹고 잘 자고 가끔은 헬스장도 가고 그렇게 산다.


머리에 뚜껑이 있다면 이 날씨에 바깥에서 열어제끼고 싶은 기분이다. 한번씩 빽 소리를 지르고도 싶다. 사소한 일에도 눈물이 나고 나를 쉼없이 위로하다가도 현자 타임이 와서 가족들 앞에서 엉엉 소리내서 운 적도 있었다. 내가 나 스스로를 감당하지 못하니 스트레스가 한없이 쌓였고 마음이 아프고 머리가 무거우니 이 한 몸도 감당해내지 못할만큼 무기력증에 빠져서 집 밖으로 나가지 않은 나흘도 있었다.


그 사흘을 이겨내고 바깥으로 나가기로 결심한 것은 어느 곳에서 계약직 면접을 보러 와보라는 소식을 받던 날이었다. 정말 죽어도 두번 다시는 계약직을 하고 싶지 않았는데 연락 오는 곳이 죄다 계약직이어서 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래도 면접이니 좋은 소식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간만에 차려입고 화장도 하고 바깥으로 나갔다. 아무리 눈이 안오는 곳에 살고 있다고 해도 날씨는 많이 추워져있었다.


여느 면접처럼 자기소개를 하고 본인의 장단점을 말하고, 그리고 또 나의 쓸모 있음을 회사에 맞게 얼추 말하는 것으로 면접이 끝이 났다. 역시나 말도 안되는 급여조건과 채용 조건을 들었고 그 모든 것에 동의한다는 의사표시를 했다. 주먹감자를 날리는 마음과는 다르게도. 나이 앞자리가 바뀌면서 달라진 것은 자존심을 꺾을 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면접장에서 그 어떤 말을 들어도 살살 웃으면서 대답할 줄 알게 되었고 어떤 결과가 나와도 받아들이는 게 쉬워졌다는 것이다. 세상은 남탓을 할 필요도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못났다고도 생각할 필요도 없는 곳이다. 나의 노력만큼 성취로 돌아오지 않아도 세상은 잘 굴러가는 곳이라는 걸 깨닫고 있다.


채 10일도 안남은 2022년을 돌아보며, 2022년에 썼던 일기장을 보며 눈이 뻐근해졌다. 이룬 게 하나 없어도 나는 오전에 일어나면 이불 정리를 했고 내가 가고싶었던 회사의 이름을 외치며 아침 운동을 하기도 했고, 상을 받지 못할 글을 브런치에 여러 편 썼다 지우기도 하고 매일 일기를 쓰기도 했다. 올해만 해도 적어도 300개가 넘는 입사지원서를 썼고 50개가 넘는 크고 작은 면접을 봤고 몇 번의 합격 소식을 받기도 했지만 이러저러한 사정과 조건이 안맞아서 입사하지 못했을 뿐, 나는 나만의 성취를 조금씩 쌓아나가고 있었다.


뜻대로 되지 않는 일들에 지쳐 사는 게 의미 없다 생각하고 있었을 때, 그래도 가족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성공과 성취보다는 실패와 좌절이 더 많은 날들을 보내고 있지만 이 하루하루들이 모여 조금은 달라진 내가 되고 거기에서 희망을 얻을 수 있다면 좋겠다. 그렇게 믿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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