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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한 Dec 25. 2022

오늘의 성취로 내일을 살아가자

고등학교 시절 나는 친구가 없었다. 대충, 정확히 말해서는 하나의 사건이 있었는데, 갈등을 풀지 못하고 꼬여버렸고 그 뒤로 나는 존재감 없이 2년째 숨만 쉬면서 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더 이상은 학교에 다니지 못하겠다고 부모님 앞에서 울며불며 말했다. 사실 나는 어릴 때부터 대인관계가 너무 어려웠다고, 그리고 이젠 진짜  터져버릴 것 같다고 소리질렀다. 그런 나를 어르고 달래고 설득해서 학교에 보낸 것은 엄마였다. 다른 것 다 못해도 되니까 졸업만 하라고, 졸업하고 나서 뭘 할지 생각해도 늦지 않으니 차근차근 생각해보자며 매일같이 나를 달래서 학교에 보냈다.


밑바닥까지 갔다. 성적도, 인간관계도, 다른 모든 것도. 남들이 자습시간에 눈에 불을 켜고 공부를 하던 때에 나는 불이 꺼진 집에 와서 엄마가 일을 마치고 올 때까지 울거나 누워있었다. 기운이 좀 있는 날은 유일하게 연주할 줄 아는 핑거스타일 기타곡 '황혼'을 연주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고2 때 담임선생님과 자퇴에 대한 상담을 했던 날, 선생님께서 학교를 아무 생각이며 목적 없이 '그냥' 한번 다녀보자는 제안을 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제안이 그 때 마음에 와닿았다. 대학에 갈 필요도 없고, 수능을 잘 봐야할 의무 같은 건 내겐 없으니, 포기하지 말고 다녀보자는 생각으로 자퇴 생각을 접었다. 그 이후로도 고2 때 담임선생님께서 간간히 상담도 해주셨고 위로며 응원도 해주셨기에, 고3 생활도 안정적이진 않지만 버텨낼 수 있었고, 끝까지 친구는 없었지만 졸업장도 받을 수 있었다. 그날, 나는 삶에서 포기하지 않으면 언젠간 끝은 보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십 년도 더 지난 지금, 요즘 자꾸 그때의 깨달음을 잊는 때가 많아진다. 구직기간이 길어질수록 '나는 뭣하러 태어나서 이 고생이지' '이러다 평생 부모님꼐 매달려 사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며 만약에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경우의 수를 떠올리곤 한다. 최악의 경우의 수는 나를 괴롭힌다. 지금 내가 처한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못하게 막아선다. 객관적인 상황 판단이 흐려질때 쯤 나는 하던 일을 손에서 놓고 울어버리거나 좌절해버린다.



실패가 거듭될 수록 내 마음 속에 있는 내 편이 힘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지금 나에게 일어날 수 있는 최고의 경우의 수를 떠올리려 해도 떠오르지 않았다. 직장인이 된다면, 작가가 된다면, 글로 밥벌이를 할 수 있게 된다면 지금보다는 나아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여전히 나는 라이킷의 갯수를 매 시간 체크하는 초짜 작가지망생이었다. 언젠가 내가 떠올렸던 서른 살 백수라는 최악의 경우의 수는 일어났는데 아직 최고의 경우의 수 중 어느 것도 나에게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런 생각들이 또 떠오를 때마다 일기장에, 메모지에, 브런치에 글을 썼다. 언젠가 찢어버릴 글이여도 누군가 읽지 않을 글이어도 한참을 생각해서 글을 썼다. 쓸 수록 나를 찾을 수 있었다.

친구가 없는 나, 존재감이 없는 나, 직업이 없는 나 이런 게 아닌 '그냥 나'로 존재하고자 할 때 부정적인 생각들이 사라졌다. 내가 어떤 존재이든 살아가야 하고, 살아있는 한 뭐든 될 수 있다는 희망적인 생각도 하기 시작했다.



내 마음 속의 내 편이 좀 더 목소리를 내는 날이 올 때, 나는 온갖 최악의 경우의 수와 최고의 경우의 수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이다. 내 편은 내가 어떤 상황에 있어도 내가 버틸 수 있는 힘을 주고 그 힘으로 나는 오늘을 살아간다. 보잘 것 없는 오늘을 보냈다 하더라도, 지금의 내가 좀 쪽팔린다 하더라도 나는 그걸 글로 남긴다. 이렇게 남기면 나의 오늘은 한 가지 성취를 이룬 셈이다. 오늘의 작은 성취는 내일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이 될 것이다.





*. image 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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